비슷한 옵션으로 류현진(36)이 있었다. 하지만 LA 다저스의 선택은 제임스 팩스턴(35)이었다. 메이저리그 10시즌 경력에도 규정이닝 한 번 소화하지 못한 ‘유리몸’ 투수를 택한 이유가 무엇일까.
‘LA타임스’를 비롯해 미국 언론들은 지난 23일(이하 한국시간) 다저스가 FA 좌완 투수 팩스턴과 계약이 임박했다고 전했다. 계약 조건은 1년 1200만 달러 수준으로 선발등판 횟수에 따른 퍼포먼스 보너스가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팩스턴은 새해를 넘겨 FA 시장에서 남은 투수 중 류현진, 마이클 로렌젠, 마이크 클레빈저와 함께 2티어 선발로 묶인 선수였다. 1살 차이 베테랑 좌완 투수로 내구성에 물음표가 있고, 스캇 보라스를 에이전트로 뒀다는 공통 분모를 갖고 있는 두 선수는 비슷한 상황에 처해 있었다.
‘뉴욕포스트’ 존 헤이먼 기자가 지난 18일 “2티어 선발 시장이 7~10일 이내로 활발해질 것이다”고 예상했는데 그로부터 5일의 시간이 흘러 팩스턴이 먼저 움직였다. 4~5선발 보강을 원한 다저스가 류현진이라는 카드를 두고 팩스턴을 선택한 이유가 궁금증을 낳는다.
다저스는 류현진의 행선지 중 하나로 꼽혔다. 2013년 데뷔 후 2019년까지 7년을 몸담은 다저스에서 메이저리그 커리어를 마무리하는 것도 류현진에겐 좋은 그림이었다. 4년 사이 선수 구성에 변화가 있었지만 구단 프런트 수뇌부와 감독은 그대로다. 류현진으로선 따로 적응할 게 없는 팀이었다.
하지만 팩스턴 영입으로 류현진의 친정 복귀 시나리오는 무산됐다. 류현진과 같은 2013년 빅리그에 데뷔한 팩스턴은 10시즌 통산 156경기 선발등판했지만 규정이닝이 한 번도 없다. 류현진은 코로나19 단축 시즌 포함 규정이닝이 4시즌이다. 류현진도 부상 리스크가 존재하지만 팩스턴에 비할 바는 아니다.
특히 최근 4년간 허리, 팔꿈치, 광배근, 햄스트링 부상으로 25경기 117⅔이닝 투구에 그칠 만큼 심각한 인저리 프론이다. 나이도 류현진보다 1살 어린 35세. 통산 평균자책점(류현진 3.27, 팩스턴 3.69), bWAR(류현진 20.1, 팩스턴 13.6) 등 전체 커리어나 부상 이력을 볼 때 팩스턴은 류현진보다 나을 게 없다.
하지만 팩스턴이 류현진보다 확실하게 나은 것 한 가지가 있으니 다름 아닌 구속이다. 3년 연속 두 자릿수 승수를 거뒀던 2017~2019년 평균 95.4마일(153.5km) 포심 패스트볼을 구사한 팩스턴은 부상으로 구속 하락세를 보였으나 지난해 보스턴 레드삭스에서 다시 95.2마일(153.2km)로 끌어올렸다.
LA타임스는 ‘팩스턴은 지난해에도 평균 95마일 포심 패스트볼을 던져 메이저리그 투수 백분위수 71%에 속했다’며 리그 상위 30%에 속하는 강속구를 던졌다는 점을 강조했다. 반면 류현진은 지난해 토미 존 수술에서 돌아온 뒤 포심 패스트볼 평균 구속이 88.6마일(142.6km)로 커리어 최저치로 떨어졌다.
구위가 좋은 강속구 투수는 단기전에서 확실한 카드가 될 수 있다. 다저스는 지난해 디비전시리즈에서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에 3전 전패로 스윕을 당한 아픔이 있다. 1차전 클레이튼 커쇼(⅓이닝 6실점), 2차전 바비 밀러(1⅔이닝 3실점), 3차전 랜스 린(2⅔이닝 4실점)이 줄줄이 난타를 당하면서 조기 강판됐다. 신인 밀러는 제구 난조로 흔들렸지만 전성기가 지난 커쇼와 린의 구위는 가을에 전혀 통하지 않았다.
정규시즌보다 포스트시즌이 훨씬 더 중요한 다저스로선 같은 값이라면 공 빠른 팩스턴이 류현진보다 더 끌릴 만하다. 팩스턴이 정규시즌을 풀로 소화하지 못해도 가을야구에서 잘 던지면 그것만으로 충분히 투자 가치를 뽑을 수 있다는 판단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팩스턴은 2019년 뉴욕 양키스 시절 가을야구에 3경기 선발등판했다. 1승을 거두며 평균자책점 3.46으로 괜찮았다. 특히 휴스턴 애스트로스와의 ALCS 5차전에서 6이닝 4피안타 4볼넷 9탈삼진 1실점 승리로 벼랑 끝에 몰린 팀을 구했다. 다저스가 팩스턴에게 기대하는 모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