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이런 생각을 늦게 했을까 생각이 든다.”
한화 마무리투수 박상원(29)은 올 겨울 엄정욱(42) 감독이 운영하는 인천의 야구 아카데미에서 몸을 만들고 있다. 윤희상(38) 코치도 함께하는 이곳과는 인연이 꽤 오래 됐다. 두 사람과 SK 시절 함께한 팀 선배 정우람(38)의 소개를 받아 2020년 12월부터 인천에서 사회복무요원으로 근무하며 퇴근 후 매일 이곳을 드나들었다. 2022년 서산으로 근무지를 옮기기 전까지 15개월을 땀 흘린 곳이다.
박상원은 “내 직구의 장점을 잘 몰랐는데 엄정욱 감독님과 윤희상 코치님이 직구에 대한 자신감을 많이 심어주셨다. 운동하는 방법도 많이 배웠고, 긴가민가했던 투구 메카니즘이 확실하게 정립되면서 스피드업이 됐다. 군대 가기 전에는 그 정도 스피드만 던져도 팀에서 조금 빠른 편이었다. 왜 스스로 만족을 했을까 생각이 든다”고 되돌아봤다.
2017년 데뷔 후 2018년부터 한화 불펜 필승조로 올라선 박상원은 최고 152km에 평균 145km 직구를 뿌린 강속구 투수였다. 빠른 공 투수로서 이미지가 강하지만 의외로 군입대 전 직구 구사 비율이 50%를 넘기지 않았다. 포크볼, 슬라이더 등 변화구를 더 많이 던졌다.
하지만 ‘원조 파이어볼러’ 엄정욱 감독과 투수 분석에 능한 윤희상 코치를 만난 뒤 생각이 바뀌었다. 특히 엄정욱 감독은 SK 소속이었던 2003년 4월27일 문학 한화전, 같은 해 6월29일 문학 KIA전에서 최고 158km 강속구를 두 번이나 던졌다. 전광판에 160km로 표기되는 등 비공인 최초 160km 투수로 2000년대 초반 KBO리그를 대표하는 파이어볼러였다.
팔꿈치 3번, 어깨 1번으로 수술만 4번이나 받으며 기대만큼 재능을 꽃피우지 못한 엄정욱 감독이지만 은퇴 후 인천 송도에 유소년 야구단과 아카데미를 운영하고 있다. 이곳에서 박상원은 직구 장점을 극대화하는 데 집중했고, 2022년 8월 한화로 돌아왔을 때는 공이 더 빨라졌다. 2년 실전 공백을 딛고 복귀전에서부터 최고 152km를 뿌렸다. 구위를 인정받아 2023년 시즌 전 일찌감치 마무리로 내정됐다.
스프링캠프 때 팔에 멍이 드는 증세로 시즌 출발이 늦어지만 4월 중순 1군 합류 후 5월말부터 마무리 자리를 꿰찼다. 빨라진 직구가 마무리 자리에서 빛을 발했다. 지난해 직구 평균 구속 147.2km, 직구 구사 비율 54.9% 모두 커리어 하이 수치. 직구로 위기 상황을 돌파하며 55경기(61⅔이닝) 5승3패16세이브 평균자책점 3.65 탈삼진 57개를 기록했다. 블론세이브가 6개 있었지만 2이닝 8경기, 1⅔이닝 3경기, 1⅓이닝 4경기로 멀티 이닝을 꾸준하게 소화하며 한화 뒷문을 책임졌다.
마무리투수가 되는 꿈을 이룬 해였지만 시즌 마무리가 아쉬웠다. 9월18일까지 2점대(2.44) 평균자책점으로 안정감을 보였지만 마지막 9경기에서 6⅓이닝 15실점(10자책)으로 무너졌다. 박상원은 “시즌 막판에 왜 안 좋았는지 고민했다. 안 좋은 것을 바꾸고, 보완하려다 보니 더 안 좋아졌다. 전반기에는 내 장점을 극대화해 타자와 승부한 게 주효했지만 후반기에는 너무 막으려고, 방어하려고만 했다”고 돌아보면서 “마무리는 마무리답게 던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첫 타자부터 바로바로 승부를 들어가야 하지만 어렵게 해야 할 때는 확실하게 빼야 한다. 이제 나이도 있는데 그런 상황을 제대로 읽지 못하면 야구 잘못 배운 것이다”며 지난해 마무리 경험을 통해 운영적인 측면에서도 신경을 쓸 것이라고 밝혔다.
새 시즌에는 ABS(자동볼판정시스템) 도입으로 포크볼이나 커브 같은 아래로 떨어지는 구종이 득세할 것으로 예상된다. 포크볼이 좋은 박상원이지만 직구가 먼저라는 생각은 변함없다. 그는 “투수의 기본은 직구다. 직구 구속이 더 나오고, 제구가 되면 타자가 포크볼에 속을 확률이 더 높아진다. 포크볼 좋은 투수들은 어느 정도 구속이나 구위가 유지된 상황에서 타자 히팅 포인트를 앞으로 가져다 놓았을 때 포크볼이 더 위력을 발휘한다. 포크볼 투수라도 직구가 첫 번째라고 생각한다”며 직구의 중요성을 재차 강조한 뒤 “팀에 공 빠른 선수들이 많아지면서 뒤처지면 안 된다는 생각도 계속한다. 구속을 더 높이고 싶은 생각도 있다. 160km를 던질 순 없겠지만 경기에 영향이 가지 않는 선에서 컨디션 좋은 날에는 조금 데 세게 던져볼 생각이다”고 말했다.
풀타임 마무리로는 첫 해가 될 2024년, 박상원은 유종의 미도 거두고 싶다. 2025년 대전 신구장 개장에 앞서 한화생명이글스파크에서 보내는 마지막 시즌이기도 하다. 2018년 한화의 가을야구를 경험한 몇 안 되는 선수 중 한 명인 박상원은 “그때는 멋모르고 했는데 야구장에 팬들이 가득가득한 게 당연한 줄 알았다. 이후 팀이 하위권에 있으면서 ‘그때가 행복하게 야구한 거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올해 이글스파크에서 마지막 시즌인 만큼 그때처럼 좋은 성적을 내고 싶다”며 “가을야구가 벌써 6년 전이다. 이제 다시 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우리가 잘해야 프로야구가 또 재미있어진다”고 기대했다. 2018년 한화는 구단 최다 20번의 홈경기 매진과 함께 총 관중 73만4110명을 끌어모았다. 구단 최초 홈경기 평균 관중 1만명(1만196명)을 넘긴 역사적인 시즌으로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