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 이승엽 감독이 지난해 투수 친화적인 잠실구장을 홈으로 쓰면서 19홈런을 친 호세 로하스(31)의 재계약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속사정을 전했다.
두산 베어스는 지난해 12월 21일 총액 70만 달러(약 9억 원)에 새 외국인타자 헨리 라모스를 영입했다. 계약금 5만 달러, 연봉 55만 달러, 인센티브 10만 달러의 조건으로 우투양타 외야수를 품었다. 당시 두산 구단은 “라모스는 183cm-97kg의 다부진 체격을 갖췄다. 좌우타석에서 모두 힘 있는 스윙이 가능하며 강한 어깨와 선구안까지 두루 갖췄다”라고 한껏 기대를 드러냈다.
이에 앞서 총액 100만 달러(약 13억 원)에 두산맨이 된 로하스는 “뛰어난 컨택 능력과 선구안을 바탕으로 한 스프레이 히터”라는 평가와 달리 상당히 긴 시간 동안 리그 적응에 애를 먹었다. 외국인타자임에도 줄곧 6, 7번 하위타선을 맡았고, 타율마저 1할대 후반에 머무르며 한때 방출 위기에 몰렸다. 6월 말까지 그의 성적은 55경기 타율 1할9푼2리 10홈런 27타점 OPS .678에 머물렀다.
로하스는 이영수 타격코치의 특별 멘탈 관리가 시작된 7월부터 마침내 기량을 뽐내기 시작했다. 1할대 후반에서 2할대 초반에 머물렀던 월간 타율이 7월 2할8푼2리까지 상승했고, 기세를 이어 8월 한 달 동안 3할5리 3홈런 15타점 맹타를 휘둘렀다. 이후 꾸준히 감을 유지하며 1할2푼5리까지 떨어졌던 시즌 타율을 2할5푼3리까지 끌어올리는 데 성공했다.
두산은 당초 로하스를 컨택이 좋은 중장거리 타자로 평가했지만 의외로 홈런이 19개에 달했다. 홈런타자 양석환(21개)에 이어 팀 내 두 번째로 많은 홈런을 때려냈다. 개막전 연장 끝내기 홈런, 와일드카드 결정전 솔로홈런 등 홈런의 임팩트 또한 강렬했다. 로하스는 전반기 10홈런, 후반기 9홈런을 치며 기복 없이 꾸준히 장타를 날렸다. 로하스는 122경기 타율 2할5푼3리 19홈런 65타점 52득점 OPS .819로 KBO리그 첫해를 마쳤다.
그럼에도 두산은 왜 로하스와의 재계약을 포기한 것일까. 최근 잠실구장에서 만난 이승엽 감독은 “로하스가 굉장히 아까웠다. 지난 시즌 후반기와 마지막 창원에서 너무 좋은 모습을 보여줬는데 아무래도 부진할 때와 좋았을 때의 차이가 너무 명확했다”라며 “타격을 보면 아깝기도 하다. 잠실구장에서 19홈런은 적은 숫자가 아니다. 그래서 고민이 많았는데 팀 내 좌타자가 많아서 좌우 비율을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라고 속사정을 전했다.
두산이 로하스를 포기하고 데려온 선수는 과거 KT 위즈에서 제2의 멜 로하스 주니어로 주목을 받았던 라모스다. 라모스는 1992년 푸에르토리코에서 태어나 2010 메이저리그 드래프트에서 보스턴 5라운드 지명을 받았다. 이후 마이너리그에서만 12년을 보낸 뒤 2021년 마침내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에서 빅리그에 데뷔해 18경기 타율 2할 1홈런 8타점을 기록했다.
라모스는 2022년 총액 100만 달러에 KT와 계약하며 KBO리그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그러나 4월 말 NC 다이노스전에서 우측 발에 공을 맞아 우측 5번째 발가락 기절골 골절 진단을 받았고, 재활을 하던 도중 KT가 대체 외국인타자 앤서니 알포드를 데려오며 18경기 타율 2할5푼 3홈런 11타점을 남기고 짐을 쌌다.
라모스는 2023년 투수 친화적인 미국 마이너리그 트리플A 인터내셔널리그에서 76경기 타율 3할1푼8리 13홈런 55타점 OPS .954로 활약했다. 신시내티 레즈에서 다시 메이저리그 무대를 밟고 23경기 타율 2할4푼3리 5타점을 남기기도 했다.
이 감독은 “KBO리그는 에이스 대부분이 왼손투수다. 외국인 좌완투수도 있다. 그래서 강력한 우타자가 필요했다”라며 “라모스는 스위치히터에, 트리플A에서 출루율, 장타율이 다 좋았다. KT에서 KBO리그 경험도 했다. 여러 가지 면을 고려했을 때 좌타자보다는 우타자, 좌우 타석에 다 설 수 있는 타자가 팀 성적을 올리는 데 도움이 될 거라 판단했다. 양의지, 김재환, 양석환과 함께 폭발력 있는 역할을 기대한다”라고 전했다.
라모스는 KT 시절 기량과 더불어 인성과 훈련량에서도 합격점을 받은 바 있다. KT 이강철 감독은 2022년 2월 기장 스프링캠프 당시 “타격 훈련량이 많다. 스스로 찾아서 친다. 적극성, 배트 스피드, 운동량 전부 괜찮다”라며 “평소에는 웃으면서 긍정적으로 생활하지만 승부욕도 있는 모습이다”라고 평가한 바 있다.
두산은 2019년부터 2022년까지 4년 동안 효자 외인으로 활약한 호세 페르난데스 이후 외국인타자 덕을 보지 못했다. 엄밀히 말하면 2022년에도 타율을 3할9리였으나 홈런 6개에 병살타 34개를 치며 ‘페르난데스 딜레마’에 빠졌던 두산이다. 라모스가 2022년부터 시작된 두산의 외국인타자 갈증을 해소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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