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백종인 객원기자] FA 투수 트레버 바우어(33) 때문에 일본이 시끌시끌하다. 이번에는 미국과 일본 간의 민감한 외교적 사안에 대한 SNS 멘션이 문제다.
바우어는 최근 주일 미군 기지에서 근무하던 해군 중위 릿지 알코니스가 미국으로 송환된 소식을 포스팅하고 “웰컴 홈 릿지(Welcome Home Ridge!)”라는 댓글을 달아 일본인들을 자극했다. 이를 비난하는 일본의 X(예전 트위터)는 조회수가 85만 건을 넘겼다. 알코니스 중위는 일본 국민들의 분노를 일으킨 사건의 장본인이기 때문이다.
사건이 발생한 것은 2021년 5월이다. 가족과 함께 후지산 트래킹을 마치고 귀가하던 알코니스 중위가 사고를 일으켰다. 운전하던 차가 갑자기 돌진하며 주차된 차량과 사람들을 들이받은 것이다. 이 사고로 가족 모임을 끝내고 차에 탑승하려던 80대 여성과 50대 남성이 사망했다.
시즈오카 지방 검찰은 운전 중 과실 치사 혐의를 적용해 기소했고, 법원은 3년 징역형의 실형을 선고했다. 이에 피고 측은 항소했지만, 도쿄 고등재판소가 이를 기각했다. 이로써 형이 확정되며, 알코니스 중위는 법정 구속됐다(2022년 9월).
재판의 쟁점은 사고 원인이었다. 알코니스는 갑작스러운 고산병으로 인해 순간적으로 정신을 잃었고, 그것 때문에 사고가 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법원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알코니스는 사고에 앞서 고도 2000미터가 넘는 후지산을 등반할 때도 별문제가 없었다는 점을 들었다. 게다가 사고는 하산한 이후 고도 300미터 지점에서 일어났기 때문에 연관성을 인정할 수 없다고 판결했다.
상황은 이후 복잡해진다. 알코니스의 부모와 아내 등 가족들이 “일본에서의 재판이 공정하게 이뤄지지 않았다”며 여론에 호소했다. 고산병에 대한 적극적인 검토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주장이다. 또 운전 중 과실 치사 혐의에 실형이 선고된 경우는 6.5%(1071명 중 70명)에 불과하다는 일본 법무성의 통계도 제시했다.
이런 뉴스가 전해지자 미국 의회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특히 공화당의 대표적인 강경파 마이크 리 상원의원(유타)이 주도적으로 나섰다. 미일 안전보장조약을 거론하면 기시다 후미오 총리를 압박했다. SNS를 통해 “미군 중위 1명을 풀어주면, 항공모함과 잠수함, 전투기, 주일미군 5만 5000명을 계속 제공하겠다”는 식의 트윗을 올리기도 했다.
참다못한 일본 외무성이 미국 정부에 직접 항의하기도 했다. 그러나 마이크 리를 비롯한 의원 20명이 송환을 요구하는 서명에 참여했고, 결국 일본 정부가 알코니스 중위를 미국으로 인도하게 됐다. 크리스마스 직전인 지난해 12월 15일이었다.
양국 정부는 송환에 앞서 알코니스가 캘리포니아 연방 교도소에서 남은 형기를 마칠 것이라고 했지만, 미국으로 간 지 한달도 안된 지난 13일(한국시간) 알코니스는 가석방 조치를 받아 가족의 품으로 돌아갔다.
무척 민감한 정치ㆍ외교적인 이슈였다. 때문에 미국과 일본의 여론은 극명하게 갈렸다. 특히 피해자 쪽인 일본은 격앙될 수밖에 없다. 한참 미국에 대한 분노를 쏟아내고 있는 와중이다. 여기에 기름을 부은 것이 트레버 바우어의 멘션 “웰컴 홈 릿지(Welcome Home Ridge!)”였다.
일본 팬들이 더욱 배신감을 느끼는 지점이 있다. 알코니스 중위가 복무하던 곳이다. 요코하마 인근의 요코스카 기지다. 자동차로 30분도 안 걸리는 곳이다. 바우어의 직전 소속팀 DeNA 베이스타즈의 본거지나 다름없다. 송환을 앞두고도 반대 시위가 벌어지던 곳이다.
적어도 일본 팬들 입장에서는 그렇다. 메이저리그에서 쫓겨나 오도 가도 못하는 신세였다. 그런 선수를 거둬준 곳이 일본(NPB)이고, 베이스타즈다. 그래서 이번 일을 겪으며 ‘은혜도 모르는, 사려 깊지 못한 언사’였다는 느낌을 받았을 것 같다.
바우어는 현재 FA 신분이다. 메이저리그 복귀를 강하게 원하고 있다. 하지만 여의치 않다. 호의적인 팀이 쉽게 나타나지 않는다. 그렇다면 다시 태평양을 건너야 할 지도 모른다. 요코하마가 아닌 다른 곳이라도 알아봐야 한다. 그런데 지금 같아서는 녹록지 않다. 이번 일로 여론은 싸늘하게 식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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