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백종인 객원기자] 기억의 출발은 2022년 4월이다. 개막 한 달도 안 됐다. 히어로즈가 조금 어수선하다. 팀 내 의견 차이 탓이다. 이슈는 주전 포수의 기용 문제였다.
박동원은 더 자주 마스크를 쓰고 싶어 했다. FA를 1년 앞둔 시점이다. 자신의 가치를 올리는 데 필요한 일이다. 반면 코칭스태프는 생각이 다르다. 체력 안배를 위해 지명타자로 많이 쓰겠다는 계획이다. 고질적인 무릎 문제도 신경 쓰인다.
고민이 깊어지던 때다. 마침 얘기 상대가 나타났다. 타이거즈 단장(당시 장정석)이다. 한때 고척돔 감독실의 주인 아니었나. 누구보다 사정을 뻔히 안다. 게다가 그쪽도 아쉬운 게 있다. 공격형 포수가 절실하던 시점이다.
사실 겨울에 시작된 흥정이다. 이러쿵저러쿵 말이 많아 미뤄졌을 뿐이다. 결국 거래가 성사됐다. 타이거즈는 김태진과 2라운드 지명권을 넘겼다. 현금 10억 원도 이체하기로 했다. 박동원은 기쁜 마음으로 광주행 KTX를 타게 됐다. 일주일에 4회 이상, 포수 출장권도 보장받았다.
# 파장이 컸던 트레이드
그리고 시간이 흘렀다. 관련된 일이 많다. 트레이드를 성사시킨 타이거즈의 전임 단장은 당국의 수사를 받고 있다. FA 협상 과정에 선수에게 뒷돈을 요구했다는 혐의다.
의혹은 당사자에 의해 폭로됐다. 7개월의 고민 끝에 제보를 마음먹었다는 후문이다. 본인은 이후 승승장구했다. 트윈스로 이적해 우승 반지를 끼게 됐다. 29년 묵은 숙원을 이루는 데 결정적인 공을 세웠다. 커리어의 정점을 찍은 셈이다.
여파는 또 있다. 히어로즈의 세대교체가 가능해졌다. 트레이드 당시 타이거즈로부터 받은 대가 덕분이다. 드래프트 지명권(2라운드)으로 이듬해 충암고 출신의 포수를 뽑았다. 김동헌이다.
애리조나 캠프부터 동행했다. 개막전 엔트리에도 포함시켰다. 4월부터 간간이 출전 기회를 잡더니, 8월부터는 아예 주전 역할을 맡았다. 19세 포수의 파격적인 기용이었다. 아무래도 육성에 주안점을 둔 것 아니냐는 말들이었다.
그러나 당장의 실력도 만만치 않았다. 괜찮은 성적으로 시즌을 치러냈다. 102경기에서 211타수 51안타(타율 0.242), 2홈런, 17타점, 22득점을 기록했다. 데이터도 나쁘지 않다. OPS 0.631, wRC+ 80.4, WAR 0.74를 마크했다.
덕분에 아시안게임, APBC에도 국가대표로 뽑혔다. 병역특례 해당자다.
# 박동원 트레이드, 그로부터 21개월 후…
얘기는 이어진다. 이틀 전(12일)이다.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오피셜이 떴다. 포수 한 명의 이적 발표다. 랜더스가 이지영을 영입한 것이다. 사인 앤 트레이드 방식이다. 히어로즈가 계약하고, 이를 양도했다. 2년간 총액은 4억 원이다. 연봉 3억 5000만 원에 옵션 5000만 원이 별도다.
키움이 얻는 것은 2가지다. 현금 2억 5000만 원에 2025년 드래프트 지명권(3라운드)이다. 이지영도 흡족하다. 38세 시즌에 얻은 기회다. 더 많은 출전이 가능해 보인다.
반면 심각해진 쪽이 있다. 김민식이다. 랜더스와 줄다리기 중에 벌어진 일이다. FA 협상이 멈칫거리자 구단 쪽에서 비장의 카드를 꺼낸 셈이다. 이지영이면 당장 실전에 무리가 없다. 1, 2년 버텨주면 세대교체(조형우)도 가능하다.
이로 인해 김민식의 협상력은 상당히 떨어질 것이라는 시장의 분석이다. 밖을 둘러봐도 큰 차이 없다. 포수 자리가 아쉬운 곳은 별로 보이지 않는다.
이게 다 2년 전 일에서 비롯됐다. 박동원 트레이드의 연쇄 작용인 셈이다. 히어로즈는 그때 얻은 지명권으로 김동헌을 얻었고, 그 덕분에 이지영을 팔 수 있었다.
키움 히어로즈는 최근 3년간 5건의 트레이드를 성사시켰다. 박동원, 주효상(이상 2022년), 김태훈, 최원태(이상 2023년), 그리고 이번 이지영 건이다.
눈여겨볼 지점이 있다. 이 중 4개는 대가에 신인 지명권이 포함됐다. 누군가 성장하면, 누군가는 기회를 잃는다. 세대교체의 필연적인 과정이다. 게다가 그 팀은 유독 이런 변화에 적극적이다. 트레이드의 집중적인 표적이 되기도 한다.
명심하시라. 도미노는 혼자 쓰러지지 않는다. 앞으로 또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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