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배 더 많은 돈을 제시한 팀도 있었지만 시카고 컵스를 택했다. 일본에서 ‘마운드의 철학자’로 불린 좌완 투수 이마나가 쇼타(31)가 컵스에서 성공을 다짐했다.
이마나가는 13일(이하 한국시간) 미국 일리노이주 시카고의 한 호텔에서 입단식을 가졌다. 이마나가는 컵스와 4년 보장 5300만 달러에 계약했다. 2025~2026년 시즌 후 컵스 구단이 계약을 2028년까지 총 5년 8000만 달러로 연장할 수 있는 옵션을 갖고 있다. 컵스가 옵션을 실행하지 않으면 이마나가는 옵트 아웃으로 FA가 될 수 있다.
‘MLB.com’ 등 현지 언론에 따르면 이마나가는 이날 입단식에서 영어로 자기 소개를 했다. “헤이 시카고, 어떻게 생각하나? 오늘 컵스가 이길 것이다”라고 힘차게 말하며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은 이마나가는 컵스의 응원가 “고 컵스 고”를 외치며 분위기를 띄웠다. 옆자리에 앉은 제드 호이어 컵스 야구운영사장을 비롯해 입단식에 참석한 팬들이 박수를 보냈다.
‘뉴욕포스트’ 존 헤이먼 기자는 이마나가가 두 배 더 좋은 조건을 뿌리치고 컵스를 택했다고 전했다. 보스턴 레드삭스가 더 좋은 조건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이마나가의 선택은 컵스였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이마나가는 컵스에 온 이유에 대해 “호이어 사장, 카터 호킨스 단장과 대화하면서 좋은 말을 들었다. 내 자신의 가능성이 무한대로 넓어지는 팀을 원했다. 컵스에 입단하는 것이 나의 성장으로 이어질 것 같아 결정했다”고 밝혔다.
“너의 잠재력을 믿고 과감하게 던져라”는 말이 와닿았다고 말한 이마나가는 “아직 난 완성품이 아니다. 컵스에서 투수코치 이야기를 듣고, 동료들의 투구를 보면서 컵스와 함께 성장해 완성품이 되고 싶다”고 기대했다.
일본 시절 붙은 ‘마운드의 철학자’라는 별명에 대한 물음도 나왔다. “이기고 지는 것이 행운이라면 더 이상 성장은 없다”, “득점 지원이 없다는 것은 0점대 평균자책점 투수가 말하는 것이다” 등 여러 명언을 남겼던 이마나가는 “나를 더 높은 곳으로 끌어올리기 위해 매일 공부한다. 야구뿐만 아니라 외적인 부분, 미국에서의 생활도 매일 공부하고 있다. 항상 향상심을 가지려고 노력한 것이 그런 별명으로 이어진 것 같다”고 대답했다.
등번호 18번도 눈길을 끌었다. 일본에선 에이스 투수를 상징하는 번호인데 이마나가에겐 또 다른 의미가 있었다. 그는 “컵스의 나름대로 역사를 알아봤는데 2016년 월드시리즈 우승을 할 때 MVP 벤 조브리스트가 이 번호를 쓰고 있었다. 나도 비슷한 활약을 하고 싶어 18번을 택했다”고 설명했다.
컵스에는 같은 일본인 선수로 외야수 스즈키 세이야가 있어 적응에 도움을 받을 듯하다. 이마나가는 “스즈키와는 고교 시절부터 많은 교류가 있었고, 여러 이야기를 나눴다. 컵스 입단이 결정된 뒤 연락했더니 자기 일처럼 기뻐하며 흥분했다. 그와 함께 컵스를 만들어나갈 수 있다면 영광이다”고 반겼다.
컵스는 이마나가를 핵심 선발로 기대하고 있다. 호이어 사장은 “우리는 이마나가를 광범위하게 스카우트했다. 그는 매우 호기심이 많고, 더 나아지길 원한다. 컵스 팀에 딱 맞는 선수”라고 말했다. 이마나가도 “리글리필드에서 투구하게 돼 흥분된다. 팬들을 만나게 될 날이 기대된다. 월드시리즈 우승에 기여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178cm, 79kg 좌완 투수 이마나가는 2015년 드래프트 1순위로 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스에 지명된 뒤 2016년 1군에 데뷔했다. 지난해까지 8시즌 통산 165경기(1002⅔이닝) 64승50패 평균자책점 3.18 탈삼진 1021개로 활약했다. 2017년(11승), 2019년(13승), 2022년(11승) 3차례 두 자릿수 승수를 거둔 이마나가는 2022년 6월7일 니혼햄 파이터스전에서 노히터 게임을 했고, 지난해에는 22경기(148이닝) 7승4패 평균자책점 2.80 탈삼진 173개로 퍼시픽리그 탈삼진 1위에 올랐다.
국제 무대에도 자주 나갔다. 2017년 아시아프로야구챔피언십(APBC), 2019년 WBSC 프리미어12, 2023년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 일본대표팀을 지냈다. 특히 WBC에서 존재감이 돋보였다. 3경기(1선발·6이닝) 1승 평균자책점 3.00 탈삼진 7개로 호투하며 일본의 7전 전승 우승에 기여했다. 조별리그 한국전에서 4회 두 번째 투수로 등판, 박건우(NC)에게 홈런 하나를 맞았지만 3이닝 3피안타 무사사구 3탈삼진 1실점 호투로 한국의 추격 의지를 꺾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