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 선수에게 워라밸은 없습니다."
박용택(45) KBS N 스포츠 야구 해설위원이 9일 대전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2024 KBO 신인 오리엔테이션에 강연자로 참석했다. 신인 선수, 육성 선수 등 KBO리그 출발선에 선 10개 구단 132명의 새내기들 앞에서 선수단 소양 교육에 나섰다. 프로야구 선수로서의 관리, 세부적으로는 몸·사람·멘탈·돈 관리의 중요성에 대해 자신의 경험담과 조언을 진솔하게 전했다.
지난해에 이어 2년 연속 신인 오리엔테이션에 초청된 박 위원은 “냉정하게 말씀드리면 프로야구 선수는 유니폼을 입고 있을 때까지, 은퇴하고 나서도 (지도자로) 현장에 있을 때까지 워라밸이 없다. 워라밸 잘 맞는 선수치고 야구로 성공한 사람은 단 한 명도 보지 못했다. 구단에서 선수들에게 돈을 주는 것은 팀을 위해 당신의 라이프를 조금 희생주라는 의미가 있다”며 예능 프로그램 ‘최강야구’에서 몬스터즈를 이끄는 김성근 감독과의 일화를 전했다.
박 위원은 “은퇴 후에도 최강야구에서 계속 야구를 하고 있다. 물론 진지하게 하고 있었지만 (프로에서) 단 한 번도 좋아하는 야구를 즐기지 못했다. 20~30% 정도 즐기면서 하겠다는 생각이 있었는데 김성근 감독님이 오셔서 따끔하게 ‘돈 받고 있지 않느냐’고 말씀하셨다. ‘너희들에게 웃겨 달라고 방송하는 것 아니다. 야구 잘하라고 돈 주는 것이다. 은퇴 선수가 아니라 프로야구 선수라는 생각을 갖고 야구하라’고 하시는데 뒤통수를 한 대 맞은 기분이었다. 감독님 말대로 적지 않은 돈을 받으면서 은퇴 후에도 야구하고 있다. 지금도 난 프로야구 선수라는 생각으로 한다”며 “신인 여러분들도 기본적으로 그런 마음가짐이 깔려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 최강야구는 진짜 야구를 표방하며 은퇴 선수들과 아마추어 선수들의 리얼한 승부를 담아 팬들로부터 지속적인 사랑을 받고 있다.
현실적인 조언도 아끼지 않았다. 박 위원은 “아픈데 참고 하는 것은 절대 도움이 되지 않는다. 개인적으로 프로 생활에서 아쉬운 부분이 있었다면 해외 진출이나 국가대표에 대한 것이다. (외야 수비에서) 공 던지는 것에 대한 문제가 있었다”고 돌아보며 “2~3년차 어깨가 상당히 아팠지만 스스로 고집 부리며 뛰었다. 그렇게 몇 년 흐르면서 수술과 재활 시기를 놓쳤다. (좋지 않은) 그런 어깨 상태로 15년 이상 더 선수 생활했다. 많은 선수들이 그렇게 병을 키우는데 아프면 언젠가 터지게 돼 있다. 트레이닝 코치들에게 열린 마음으로 다가가 몸 관리를 잘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그라운드 밖 사생활과 팬서비스의 중요성도 강조한 박 위원은 “후회 없이 유니폼을 벗기 위해선 계속해서 포기하지 않고 도전해야 한다. 내가 기대하는 성장은 (우상향으로) 계속 올라가는 것인데 실제 성장은 그렇지 이뤄지지 않는다. 떨어지기도 하고, 살짝 올라갔다가 더 깊게 떨어지기도 한다. 그러다 어느 날 한순간에 갑자기 팍 하고 튀어오른다. 보통은 그 직전에 포기하는 선수들이 너무 많다. 처음 시작부터 포기해선 안 된다. 한 번 떨어져도 다시 올라가면 된다. 결과는 내는 게 아니라 나오는 것이다”고 강조했다.
끝으로 박 위원은 “거센 바람에 흔들리고, 세찬 비에 흠뻑 젖고, 뜨거운 햇살을 견뎌야만 싹이 트고, 꽃이 피고, 열매가 맺는다. 앞으로 여러분들은 프로야구 선수로서 정말 많은 비바람을 맞을 것이고, 뜨거운 햇살이 있을 것이며 아주 추운 겨울도 있을 것이다. 앞이 잘 보이지 않을 것 같은 껌껌한 어둠도, 끝이 어딘가 싶은 터널 속에 들어갈 때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모든 시간들을 수많은 선배들이 다 겪고 그 자리에까지 올라갔다. 정말 지치지 않는, 열정적인 한국프로야구 선수들이 되길 바란다”고 응원했다.
박 위원의 피와 살이 되는 강연에 선수들도 경청하며 각자 노트에 메모를 빽빽하게 했다. 전체 1순위 신인 투수 황준서(한화)는 “박용택 선배님께서 몸 관리, 멘탈 관리에 대해 좋은 말씀을 해주셔서 수첩에 잘 적었다”고 했다. 2순위 투수 김택연(두산)도 “실패도 하고, 힘든 시기가 있을 텐데 조금 더 견디지 못해 그만둔 선수들이 많다는 이야기가 와닿았다”고 말했다. 3순위 투타겸업 전미르(롯데) 역시 “박용택 선배님이 엄청나게 많은 노하우를 가르쳐주셔서 메모 열심히 했다. 거센 바람과 폭풍이 지나간 곳에 꽃이 핀다는 얘기가 가장 기억난다”고 말했다.
지난 2002년 LG에서 프로 데뷔 후 2020년을 끝으로 은퇴한 좌타 외야수 출신 박용택 위원은 2022년 은퇴 경기 포함 통산 2237경기 타율 3할8리 2504안타 213홈런 1192타점 1259득점 793볼넷 1392삼진 313도루 출루율 .370 장타율 .451 OPS .821을 기록했다.
KBO리그 역대 통산 최다 안타의 주인공으로 2005년 득점(90)·도루(45) 1위에 올랐고, 2009년에는 타율 1위(.372)로 타격왕에 등극했다. 2009·2012·2013년 외야수, 2017년 지명타자로 총 4번의 골든글러브를 수상하면서 김용수(41), 이병규(9)에 이어 LG의 구단 역대 3번째 영구결번(33) 영예를 누렸다. 2022년 KBO리그 40주년을 기념해 전문가와 팬들이 함께 선정한 40인 레전드에도 15위에 이름을 올렸다.
선수 은퇴 후 2021년부터 해설위원으로 변신해 뛰어난 언변과 분석력으로 호평을 받고 있는 박 위원은 야구 예능 프로그램 ‘최강야구’에서도 몬스터즈 주장을 맡는 등 야구계에서 활발하게 활동 중이다.
한편 이날 오리엔테이션은 박용택 위원의 선수단 소양 교육 외에도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이뤄졌다. 박희진 스포츠윤리센터 강사의 부정행위 및 품위손상행위 금지 교육, 오효주 KBS N 스포츠 아나운서의 미디어 인터뷰 및 팬서비스 교육, 지난해 신인이었던 문현빈(한화), 김동헌(키움)이 참석한 선배와의 마남, 한국도핑방지위원회의 반도핑 교육, KBO리그 타이틀 스폰서 신한은행에서 진행하는 신인선수 맞춤형 재무설계 강연, KBO 연금 설명회 등으로 오리엔테이션이 마무리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