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레이드 거부권을 갖고 있었지만 쓰지 않았다. 대형 계약 후 기대에 미치지 못한 것에 양심의 가책을 느꼈다. 애틀랜타 브레이브스로 트레이드된 좌완 투수 크리스 세일(35)이 전 소속팀 보스턴 레드삭스에 대해 미안함을 전했다.
세일은 지난 5일(이하 한국시간) 애틀랜타와 2년 3800만 달러 연장 계약을 체결했다. 올해 연봉 1600만 달러, 내년 연봉 2200만 달러에 2026년 연봉 1800만 달러 구단 옵션이 포함된 2+1년 계약으로 최대 5600만 달러 조건.
세일은 지난달 31일 내야 유망주 본 그리섬과 트레이드돼 보스턴에서 애틀랜타로 옮겼다. 2024년 세일의 연봉 2750만 달러 중 1700만 달러를 보스턴이 부담하는 조건이었다. 이에 따라 애틀랜타의 2년 3800만 달러 연장 계약 중 실질적인 부담 금액은 2100만 달러. 부상 리스크가 있지만 애틀랜타로선 부담이 크지 않은 투자다.
이날 ‘디애슬레틱’을 비롯해 현지 언론과 인터뷰에 나선 세일은 “애틀랜타가 내게 믿음과 신뢰를 보여줬다. 덕분에 앞으로 더 자신감을 갖고 스프링 트레이닝부터 한 해를 보내는 데 큰 힘이 될 것 같다. 몇 년간 이곳에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조금 더 편안함이 느껴진다. 이리저리 흔들리지 않고 적응할 수 있게 됐다”고 반겼다.
전 소속팀 보스턴에 대한 미안함도 표했다. 2010년 시카고 화이트삭스에서 데뷔한 세일은 2017년 트레이드로 보스턴에 합류한 뒤 지난해까지 6시즌을 뛰었다. 2017년 아메리칸리그(AL) 탈삼진 1위(308개)에 사이영상 2위로 강렬한 시즌을 보냈고, 2018년에는 보스턴의 월드시리즈 우승 순간을 장식하기도 했다.
이어 2019년 3월 보스턴과 5년 1억4500만 달러 대형 계약으로 큰돈까지 쥐었다. 그러나 그해 8월 팔꿈치 부상으로 시즌이 끝났고, 2020년 3월 토미 존 수술을 받으면서 연장 계약이 시작된 첫 해부터 시즌 아웃됐다. 2021년 8월 복귀했지만 2022년 시즌 전부터 갈비뼈 피로 골절로 장기 이탈했다. 7월에야 시즌을 시작했지만 2경기 만에 강습 타구에 맞아 새끼손가락이 골절되는 불운을 겪었고, 8월에는 재활 중 오토바이 사고로 손목이 부러져 시즌이 끝났다.
올해도 6월초 어깨 염증으로 두 달 넘게 이탈하는 등 정상적인 풀타임 시즌을 보내지 못했다. 보스턴에서 연장 계약 후 4년간 고작 31경기에서 151이닝 투구에 그치며 11승7패 평균자책점 3.93의 기대 이하 성적을 남겼다. ‘먹튀’ 소리를 들어도 할 말 없는 ‘유리몸’ 투수로 전락했고, 보스턴도 결국 연봉 보전까지 하면서 세일을 정리했다.
세일에겐 트레이드 거부권이 있었다. 메이저리그 서비스타임이 10년 이상 베테랑 선수 중 5년 이상 현 소속팀에 몸담은 선수에게 주어지는 ’10-5’ 트레이드 거부권을 행사하면 보스턴에 남을 수 있었다.
계약 마지막 해 보스턴에서 명예 회복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지만 세일은 구단의 결정을 받아들였다. 그는 “보스턴을 떠나는 게 쉽지 않았다. 오랫동안 그곳에 있었고, 내게는 제2의 고향이었다. 아이들이 좋아했고, 우리 가족을 최고로 대우해준 곳이었다. 정말 힘든 시기를 보낼 때도 항상 내 편이 되어줬다. 지난 몇 년간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면서 보스턴에 마음의 빚을 진 것 같았다. 팀을 위해서라도 빨리 결정해야 했다”고 밝혔다. 세일을 보내면서 2년차 유망주 그리섬을 받은 보스턴은 팀의 약점인 2루를 메웠다.
이어 세일은 “인생에는 오르내림이 있다. 내 인생 최고의 날들도, 최악의 날들도 보스턴에서 있었다. 하지만 팀 동료들과 프런트 오피스, 트레이닝 스태프 등 모든 사람들이 나를 존중해준 것에 대해 영원히 감사할 것이다. 보스턴에 영원한 빚을 졌다. 정말 감사했다. 보스턴에서 맺은 인연과 2018년 세계 챔피언으로 트로피를 들어올린 2018시즌을 결코 잊지 못할 것이다”고 작별 인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