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이 빨라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FA 계약으로 한화에 잔류한 우완 투수 장민재(34)는 공이 느린 투수로 잘 알려져 있다. 광주 화정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일찍 야구를 시작한 그는 프로 입단 전부터 두 번의 팔꿈치 수술을 받으면서 구속이 더 늘지 않았다. 프로 4년차 때 또 팔꿈치 수술을 하면서 직구 평균 구속이 140km를 넘지 못했다.
2021년부터 최근 3년간 직구 평균 구속은 135.4km, 136.0km 135.3km에 그치고 있다. 최고 구속도 140km를 넘는 게 얼마 없을 정도로 공이 느리지만 장민재는 자신만의 장점이 확고하다. 정교한 제구와 공격적인 몸쪽 승부, 주무기 포크볼을 앞세워 1군에서 보직을 가리지 않고 전천후 투수로 롱런하고 있다. 지난 21일 한화와 2+1년 최대 8억원의 FA 계약으로 가치를 인정받았다.
‘느림의 미학’으로 버텨온 장민재이지만 마음 속에는 늘 빠른 공에 대한 갈망이 있었다. 투수라면 누구나 강속구를 던지고 싶어 한다. 장민재도 다르지 않았고, 그 실마리를 올 겨울에 찾고 있다. 시즌 후 FA 자격을 얻은 장민재는 한화 소속으로 함께했던 투수 출신 김진영 도슨트베이스볼 대표를 찾았다. 2017~2021년 한화 투수였던 김진영 대표는 선수 은퇴 후 한화 외국인 스카우트를 거쳐 지난해 대전에 야구 아카데미를 차렸다.
김 대표와 함께 비시즌 훈련에 나선 장민재는 “같이 운동하면서 내가 부족한 게 뭔지 공부를 많이 하고 있다. 새로운 방법으로 운동을 하면서 몸이 좋아지고, 그동안 왜 스피드가 안 나왔는지 알 것 같다. 몸 전체를 이용해 던지는 방법인데 공이 확 빨라질 것 같은 기대감이 든다. 마음에 와닿게 도와주는 진영이에게 고맙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트레이닝과 기술 파트를 결합한 투수 전문 퍼포먼스 운동을 장민재와 함께하고 있다. 평지에서 하는 트레이닝이 아니라 마운드 경사를 활용해 디테일을 살렸다. 메디신볼과 월볼을 이용해 몸의 회전력을 향상시키고, 투구 메커니즘에서 순간적인 스피드가 필요한 요소들을 채우는 데 집중하고 있다.
미국 야구에서 보편화된 퍼포먼스 트레이닝이지만 우리나라 프로에선 쉽게 뿌리내리기가 어렵다. 각 팀마다 트레이닝과 기술 파트가 분리돼 있다 보니 즉각적인 피드백이 쉽지 않다. 비시즌이 아니면 새로운 시도를 하기가 어려운 환경인데 장민재는 올 겨울 김 대표와 의기투합해 구속 상승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선수 시절 시카고 컵스 마이너리그에서 미국 야구를 경험했고, 은퇴 후에도 미국 야구와 교류하며 훈련 방법을 꾸준히 공부해온 김 대표는 “구속 증가에 확실한 정답은 없지만 미국에서 여러 연구 끝에 퍼포먼스 트레이닝을 발전시켰다. 기술과 트레이닝을 합해 전체적인 가동 범위를 넓히면 퍼포먼스가 좋아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김 대표는 “민재 형은 내가 감히 어떻게 말할 수 있는 선수가 아니다”며 “사람들은 왜 이제서야 스피드에 집중하냐고 말할 수 있지만 그동안 계속 해왔다. 민재 형만큼 스피드를 생각하고 고민한 선수가 없다. 누구보다 그것에 스트레스를 받고, 간절했다. 제한적인 환경이었지만 이렇게 새로운 도전을 한다는 것 자체가 굉장한 것이다. 그런 의지가 좋은 결과로 나올 것이다”고 기대했다.
지난 2009년 한화에 입단한 뒤 올해로 프로 16년차가 된 장민재는 팀에 가장 오래 몸담은 베테랑이다. 대전 홈경기 때마다 투수 중 가장 먼저 야구장에 출근해 개인 도구를 정리하고, 훈련을 준비하는 등 성실한 자세와 친화력으로 후배들의 모범이 되는 선수이기도 하다. 34세의 적잖은 나이에 구속 상승을 노리는 장민재의 도전이 FA 계약 첫 해부터 ‘모범생’ 활약으로 이어질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