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시작입니다. 내년에도, 내후년에도 달릴 수 있도록…”
지난해 무려 29년 만에 LG를 한국시리즈 우승으로 이끈 염경엽 감독은 마이크를 잡고 잠실구장을 가득 메운 팬들을 향해 이렇게 소리쳤다. 29년 만의 우승 한풀이로 만족하지 않고 2020년대를 ‘LG 시대’로 만들겠다는 선언. 2024년 갑진년 새해가 왕조로 가는 중요한 길목이다.
2000년대 깊은 암흑기를 보낸 LG는 2010년대 중반부터 젊은 선수들을 전면에 내세워 포스트시즌 단골 손님으로 탈바꿈했다. 2014년 이천에 최신식 2군 훈련장 LG챔피언스파크가 개장하고, 스카우트 파트 역량을 강화하면서 아래에서부터 단단한 육성 시스템을 구축했다. 김현수, 박해민, 박동원 등 굵직굵직한 FA 선수들을 적절한 시기에 영입, 전력을 극대화한 끝에 우승이라는 열매를 맺었다.
투타에서 리그 최고 전력을 구축한 LG는 2024녀에도 기세를 밀어붙여 구단 최초 2년 연속 우승에 도전한다. LG는 앞서 1990년, 1994년 우승 이후 이듬해 각각 6위, 3위로 떨어지면서 2연패(連覇)에 실패했다. 정상에 오르는 것보다 지키는 게 힘들다는 표현이 들어맞았다.
KBO리그 역사상 연속 우승에 성공한 팀으로는 1986~1989년 해태(4년), 1996~1997년 해태(2년), 2003~2004년 현대(2년), 2005~2006년 삼성(2년), 2007~2008년 SK(2년), 2011~2014년 삼성(4년), 2015~2016년 두산(2년) 등 5개 팀이 모두 7번 달성했다. 수년간 리그를 지배한 ‘왕조’ 계보를 잇는 팀들이기도 하다.
최근 KBO리그에선 갈수록 연속 우승이 어려워지고 있다. 2017년 KIA, 2018년 SK, 2019년 두산, 2020년 NC, 2021년 KT, 2022년 SSG가 이듬해 우승 실패했다. 2020년 두산을 제외하면 한국시리즈에 오른 팀도 없었다. 우승 후유증이라는 것을 무시할 수 없다.
신규 외국인 선수 100만 달러 상한액, 신인 1차 지명이 폐지와 전면 드래프트 전환, 팀 연봉 총액 상한제 샐러리캡 제도 도입 등 리그 평준화 정책으로 특정팀이 독식하기 힘든 구조가 되어가고 있다. 과거에 비해 왕조가 탄생하기 어려운 시대 환경 속에 LG가 도전한다. 쉽지 않은 과제이지만 신구 조화가 잘 어우러진 LG의 구성을 본다면 왕조가 불가능하지 않다.
왕조가 되기 위해선 연속 우승이 필수이고, 2024년이 LG 왕조 건설을 좌우할 중요한 해다. 오프시즌 행보는 안정적이다. 외국인 투수 케이시 켈리, 타자 오스틴 딘과 재계약하면서 일본 경력 투수 디트릭 엔스를 영입했다. 내부 FA로 선발 임찬규, 구원 함덕주 등 우승 공신들과도 재계약에 성공했다. 마무리 고우석이 포스팅으로 메이저리그 진출을 추진 중이지만 유영찬이나 백승현 같은 대안이 마련됐다.
하지만 방심할 수 없다. LG에 도전할 대항마가 있다. 지난해 한국시리즈에서 붙은 KT가 가장 위협적이다. 2020년 MVP를 차지한 외국인 타자 멜 로하스 주니어가 복귀한 KT는 강백호가 부활하면 타선의 힘이 몰라보게 좋아질 수 있다. 마무리 김재윤이 삼성으로 FA 이적했지만 대체자로 박영현이 준비돼 있다. 토미 존 수술 이후 재활하고 있는 투수 소형준, 상무에서 군복무 중인 내야수 심우준이 6~7월에 돌아오면 투타에 걸쳐 큰 전력 상승이 기대된다.
KT 외에는 LG에 대적할 만한 팀이 딱히 보이지 않는다. 지난해 가을야구 돌풍을 일으킨 NC는 메이저리그로 떠난 MVP 에릭 페디의 공백이 너무 커 보인다. 또 다른 5강팀 SSG, 두산도 전력 상승 요인이 없다. 5강 탈락팀 중에선 한화와 삼성이 전력 보강을 했지만 아직 팀을 만들어나가야 하는 단계다. 롯데도 눈에 띄는 보강이 없고, 최하위 키움은 이정후와 안우진까지 빠져나갔다. 지난해 6위 KIA가 외국인 투수 2명만 잘 데려온다면 강력한 타선의 힘으로 다크호스가 될 가능성이 있다. 물론 외국인 투수 2명을 잘 뽑는다는 보장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