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중후반을 향하는 시기에 150억을 투자했다. KIA 입장에서는 확실한 선수라는 판단이 섰겠지만 자칫 모험으로도 볼 수 있었다. 현재까지는 이 150억에 대한 투자 효과는 확실했다. KIA 타이거즈 나성범은 150억 FA 계약 이후에도 스텝업을 했다. 하지만 맹수도 건강해야 위엄을 지킬 수 있다는 교훈을 얻기도 했다.
2021년 겨울, KIA는 FA 시장 역사에에 남을 투자를 다시 한 번 단행했다. NC 다이노스의 프랜차이즈 스타 성격이 강했던 나성범을 6년 150억 원에 데려오면서 화끈하게 지갑을 열었다. 타선 강화가 절실했던 KIA 입장에서는 나성범이라는 타자가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광주 출신이라는 영입에 작은 명분일 수도 있었다.
KIA는 지난 2016시즌이 끝나고 최형우를 4년 100억 원에 영입하면서 공식적으로 'FA 100억 시대'를 열어 젖히기도 했다. 그리고 앞서 이대호가 4년 150억 원으로 첫 150억 계약을 맺었지만 일본과 미국을 거쳐서 맺은 FA 계약이었다. 국내에서만 뛴 FA 선수로는 나성범이 최초로 150억을 받았다. KIA는 다시 한 번 FA 역사에 새로운 장을 열었다.
KIA의 선택은 틀리지 않았다.150억 원이라는 거액의 몸값을 받았기에 어떻게든 몸값에 대한 얘기가 나올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FA로 이적해도 나성범은 달라지지 않았다. 운동을 게을리 하지 않았고 노력은 배신하지 않았다. 나성범은 또 한 번 스텝업했다. 몸값에 대한 얘기가 쏙 들어갔다.
이적 첫 해, 144경기 타율 3할2푼(563타수 180안타) 21홈런 97타점 출루율 4할2리 장타율 5할8리, OPS .910의 특급 성적을 거뒀다. NC 시절을 포함해서도 커리어하이급 성적이었다. '스탯티즈' 기준 조정득점생산력(wRC+)은 157.4를 기록했다. 풀타임 시즌 기준 최고 수치였다. 대체선수대비승리기여도(WAR)도 6.50으로 역대 최고치를 찍었다.
무엇보다 점점 약점이 되어가던 선구안을 개선했다. 십자인대 부상을 당하며 조기에 시즌아웃을 당한 2019년 0.46(12볼넷/26삼진)의 볼넷/삼진 비율을 기록한 뒤, 2020년 0.33(49볼넷/148삼진), 2021년 0.25(38볼넷/155삼진)로 점점 하락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적 첫 시즌인 지난해 0.47(64볼넷/137삼진)로 획기적으로 개선됐다. 나성범이 괴물로 진화할 수 있었던 포인트였다.
나성범의 활약으로 KIA는 2021년 최하위였던 팀 OPS(.673)을 2022년 최고의 팀 OPS(.747)을 기록한 팀으로 변신했다. 주포 최형우가 부진했지만 외국인 타자 소크라테스의 활약, 박동원의 영입, 이우성, 이창진의 성장 등 다양한 요인이 KIA 타선의 발전을 이끌었지만 나성범의 존재감을 빼놓고 얘기할 수는 없었다.
이러한 활약은 올해 나성범에 대한 기대감을 더 높였다. 그런데 부상으로 시즌을 늦게 시작해서 부상으로 빨리 마감했다.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당시 종아리 부상으로 고전했는데 검진 결과, 근막 파열로 드러나면서 6월 말까지 전열을 이탈했다. 6월23일이 나성범의 2023년 첫 경기였다. 그리고 9월19일이 마지막 경기였다. 우측 햄스트링 손상으로 10~12주 가량 재활이 소요된다고 진단을 받았다. 시즌 아웃이었다.
나성범이 활약한 기간은 3달이 채 되지 않았다. 그런데 나성범은 지난해 그 이상의 '몬스터 시즌'을 향해가고 있었다. 3달 남짓한 기간 동안 나성범은 58경기 타율 3할6푼5리(222타수 81안타) 18홈런 57타점 출루율 4할2푼7리 장타율 .671 OPS 1.098의 성적을 기록했다.
부상으로 몸을 더욱 탄탄하게 만들고 돌아온 나성범은 앞서 결장한 기간들을 만회하겠다는 의지로 리그를 폭격했다. 나성범이 복귀한 시점부터 타격 성적을 줄세우면 모든 타자들이 나성범 밑에 머문다. 타격왕 손아섭(NC)도 나성범의 아래에 있고 홈런과 타점 2관왕의 노시환(한화)과 이 기간 홈런 공동 1위였다. 나성범이 조기에 시즌 아웃을 당한 것을 감안하면 어쩌면 홈런 숫자가 더 높을 수도 있었다.
나성범의 부상은 5강 경쟁을 치열하게 펼쳐 나가던 KIA의 동력을 잃게 했다. 나성범이 복귀한 뒤 팀은 32승25패 1무를 기록했다. 그러나 나성범이 시즌 아웃된 이후, KIA는 선전했지만 13승12패로 힘이 떨어졌다. 박찬호 최형우 최원준 등이 차례대로 부상을 당한 것도 KIA의 2023년을 더욱 아쉽게 만든 요인이었다.
'건강한' 나성범, 그리고 한 번 더 스텝업을 한 나성범의 괴력을 이제 확인했다. 계약 3년차에 접어드는 2023년, 나성범은 다시 한 번 팀을 이끌어야 한다. 캡틴의 중책도 맡았다. 종아리와 햄스트링 등 운동 능력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부상을 연거푸 당했다. 2019년 십자인대 파열 부상을 당한 바 있었지만 운동 능력이 떨어지는 모습 없이 2020시즌 건강하게 복귀했다.
물론 나이의 영향을 무시할 수 없기에 이번 부상이 어떤 영향을 끼칠지는 알 수 없다. 분명한 것은 건강한 나성범의 괴력이 KIA에는 반드시 필요하다는 점이다. 2024년 KIA의 소망은 나성범이 건강한 맹수로 포효하는 것이 아닐까. /jhrae@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