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전에 미국에 처음 왔을 때만 하더라도 카페에서 이름을 물어봐도 못 알아 들었다. 그래서 'YES'만 반복했다."
말 그대로 '맨땅에 헤딩'을 했다. 혈혈단신으로 태평양을 건너서 밑바닥부터 경험을 쌓았다. 그런데 2년 만에 동양인이 한 번도 밟아보지 못한 길에서 개척자가 되려고 한다. 롯데 자이언츠 출신 허일(31) 코치는 지도자로서 아무도 이룩하지 못한 '아메리칸드림'을 일구어 나가고 있다.
허일 코치는 광주일고를 졸업하고 지난 2011년 KBO리그 롯데 자이언츠에 2라운드 전체 12순위로 지명을 받고 프로에 입단했다. 프로에서는 빛을 제대로 보지 못했다. 통산 142경기 타율 2할3푼1리(251타수 58안타) 2홈런 23타점의 성적을 기록했고 2020시즌이 끝나고 방출 통보를 받았다.
이후 과거 호주프로야구 질롱코리아에서 활약했던 인연을 바탕으로 호주에서 현역을 연장하려고 했다. 자비로라도 호주로 떠날 각오를 했다. 그러나 코로나19 등 주변 환경이 따라주지 않으면서 호주리그 도전은 무산됐다.
국내에서도 '선수' 허일을 더 이상 찾지 않았다. 결국 젊은 몸만 믿고 미국으로 향했다. 영어는 한 마디도 못했지만 처음부터 새로 배우면서 제2의 인생을 준비했다.
여기서 허 코치는 롯데에서 함께했던 행크 콩거(한국명 최현, 현 미네소타 트윈스 코치)의 도움을 받았다. 콩거 코치는 자신의 모교인 헌팅턴 비치 고등학교에 허일을 추천했다. 직함은 코치였지만 역할은 훈련 보조와 비슷했다. 그러나 허일 코치는 이방인의 한계를 스스로 깨뜨리기 위해 맨땅에서 굴렀다. 조카뻘의 어린 선수들과 호흡하고 소통하면서 역량을 쌓아갔고 인정을 받았다.
허 코치는 "2년 전에 미국에 처음 왔을 때만 하더라도 카페에서 이름을 물어봐도 못 알아 들었다. 그래서 'YES'만 반복했다"라면서 "콩거에게 너무 고맙다. 저는 미국을 한 번 가보자고 해서 왔고 어떤 것을 해야할지 몰랐는데, 제가 코치를 할 수 있게 길을 열어줬다. 근데 내가 어떻게 할지 걱정이 많이 됐을 것이다"라면서 2년 전 처음 코치를 시작했을 때를 되돌아봤다.
그러면서 "콩거는 '네가 여기서 하는 게 너무 어려울 것이다'라고 걱정을 해주면서도 조언도 많이 해줬다"라면서 "사실 걱정 아닌 걱정을 했을 것이다. 도와준다고는 했지만 아무 것도 모르는 애가 여기서 뭘 하겠냐 싶었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마음이 놓인다고 하더라"라고 웃었다.
2021년부터 2022년은 헌팅턴 비치 고등학교에서 타격 보조 코치를 맡은 뒤 2022년 가을학기부터 아주사 퍼시픽 대학교의 메인 타격 코치 및 외야 수비 코치로 부임했다. 아주사 퍼시픽 대학교 야구팀은 NCAA(전미대학체육협회) 디비전2에 소속된 팀.
메이저리거들을 많이 배출하지는 못했지만 이 대학 출신의 대표적인 빅리거는 지난 11월, 테리 프랑코나 감독의 후임으로 클리블랜드 가디언스 사령탑에 오른 스티븐 보트가 있다. 보트는 탬파베이 레이스,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등 6개 팀에서 10년 간 794경기에 나선 수비형 포수였다.
피부색도 다르고 말도 잘 안통했을 동양인 코치가 어떻게 야구의 본고장에서 타격코치를 할 수 있었을까. 그는 "사실 미국이나 한국이나 타격의 큰 틀은 같다. 어떻게 하면 강한 타구를 생산해낼 수 있을까라는 주제로 통일이 된다"라고 운을 뗐다.
그러면서 "사람이 10명 모이면 5명은 좋아하고 3명은 아무런 생각이 없고 2명은 나를 싫어한다는 말도 있지 않나. 아마 우리 팀 선수들 중에서도 '동양인 쟤가 뭘 안다고 타격 코치를 하고 있지'라는 애들이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제가 팀 타격을 발전시키려면 이 선수들까지 컨트롤할 수 있고 관리할 수 있어야 했다"라면서 "나는 좋은 타격 코치가 아니라 그냥 좋은 코치가 되고 싶었다"라고 설명했다.
다만 추상적으로 '좋다'라는 이미지를 구체적으로 알기 위해 선수들에게 일일이 물었다. 그는 "선수들에게 '어떤 코치가 좋았냐'라고 물었는데 선수마다 제각각이었다. 안 좋을 때는 안 좋다고 진실되게 말하는 코치가 좋았다는 선수도 있고, 어떤 애는 코치가 재밌어서 좋았다고 한 선수들도 있었다"라면서 "그래서 좋은 코치가 되기 위해서 선수들 내면의 마음을 알아가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아무리 좋은 타격 이론을 갖고 있다고 하더라도 제가 제대로 가르쳐주지 못하고 받아들이지 못하면 좋은 코치가 될 수 없다"라고 강조했다.
이렇게 스스로 역량을 증명해 나가더니 지난 가을에는 더 큰 기회도 찾아왔다. 매년 가을, 메이저리그 30개 구단의 유망주들이 모이는 애리조나 교육리그에서 클리블랜드 가디언스 구단의 초청 코치로서 경험을 쌓기도 했다.
허 코치에게는 생소하면서도 특별한 경험이었다. 그는 "클리블랜드만 하더라도 선수 육성팀에 타격 코디네이터 2명, 타격 코치 2명, 바디 사이언스 파트 2명, 스윙 비디오 분석가 2명 등 타격 파트에만 10명 가까운 인원들이 있다. 마이너리그 선수 1명을 육성시키기 위해 많은 인적 자원들이 투자된다. 모든 측면에서 관점을 확인하고 아이디어를 종합해보는 과정을 거친다"라며 선수 한 명을 육성하기 위한 메이저리그 구단의 방법을 예로 들었다. 그러면서 "타격은 무궁무진하다. 그리고 정말 나 혼자서 어떻게 할 수 없는 어려운 과정이라는 것을 다시 깨달았다"라고 혀를 내둘렀다.
그는 "선수로서 느껴보지 못한 즐거움을 많이 느끼고 있다. 너무너무 재밌다"라고 웃으면서 "사실 지도자의 책임감을 짊어지기는 싫었다. 하지만 내가 힘들었을 때 나한테 도움을 줬던 코치님들처럼 선수들에게도 도움을 주는 코치가 되고 싶은 마음이 생기더라"라고 전했다. 앞서 언급한 '좋은 코치'의 의미다.
한국에서도 코치 제안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미국에 정착한 이후 한 번도 귀국한 적이 없을 정도로 허일은 독하게 마음 먹고 지도자로서 아무도 밟지 못한 길을 개척해나가려고 한다. 여전히 "아직 한국으로 돌아갈 생각은 없다. 아직 많이 부족하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이 아직 있다"라고 했다.
고등학교 코치부터 시작해 대학교 코치까지 이룩한 순수 아시아 출신 야구인은 찾아보기 힘들다. 허일 코치도 "일본인 2세, 3세는 많이 봤는데 나처럼 순수 아시아인은 없는 것 같다"라고 했다. 동양인이 미국 무대에서 지도자를 하는 경우는 대부분 마이너리그 코치 연수 과정이었다. 과거 시카고 화이트삭스에서 불펜 코치 계약을 했던 이만수 헐크파운데이션 이사장의 사례가 있긴 하지만 아마추어부터 시작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허일 코치는 아마추어부터 시작해 메이저리그 구단의 코치까지 할 수 있는 커리어를 만들어 가고 있다. 동양인으로서 야구의 본고장에서 유리천장을 깨고 메이저리그 구단에서 빅리거들을 지도하는 허일 코치의 모습을 볼 수 있을까. 어쩌면 그 시간은 머지 않을 수도 있다. /jhrae@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