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묘하다는 말 외에 뭐라 표현할 방법이…”
29년 만에 정상에 오른 LG의 한국시리즈 우승을 보면서 채은성(33·한화)은 묘한 감정을 느꼈다. 바로 지난해까지 14년이나 몸담은 팀을 떠나자마자 우승을 했으니 그 기분은 뭔가 말로 표현하기가 어렵다.
“LG 입단 동기인 (오)지환이, (정)주현이, (최)동환이가 너무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 친구로서 좋았다. 그 자리를 가장 오래 지켰던 친구들이다. 지환이가 그림 좋게 MVP를 받아서 더 멋지더라. LG에서 같이 오래한 코치님들과 프런트 분들까지 축하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우승을 진심으로 축하하고 좋긴 한데…”라고 말하며 웃은 채은성은 “그 자리에 없으니 뭔가 기분이 묘했다. LG를 같이 떠난 (유)강남이, (이)형종이와도 통화하면서 그런 얘기를 많이 했는데 기분이 이상하더라. 묘하다는 말 외에 뭐라 표현할 방법이 없다”고 돌아봤다. 사람인 이상 누구나 싱숭생숭한 마음이었을 것이다.
LG를 추억으로 묻어둔 채은성은 이제 한화의 우승을 꿈꾼다. 지난겨울 LG에서 한화로 FA 옮기면서 6년 초대 90억원 특급 대우를 받은 채은성은 이적 첫 시즌 137경기 타율 2할6푼3리(521타수 137안타) 23홈런 84타점 OPS .779로 활약했다. 홈런 공동 3위, 타점 10위에 오르며 노시환과 함께 한화 중심타선을 이끌었다.
‘FA 모범생’으로 평가받은 채은성은 “이적 첫 해라 부담이 없었다면 거짓말이다. 나를 바라보는 기대치가 전보다 커졌다”며 “잘된 부분도 있었지만 성공적이라고 하기엔 창피하다. 아쉬움이 더 크다. 무엇보다 부상 관리를 못했다. 다들 조금씩 통증을 안고 뛰는데 안 좋을 때 제대로 못 헤쳐나갔다”고 자책했다.
6월까지 67경기 타율 2할9푼9리(261타수 78안타) 10홈런 44타점 OPS .834로 좋은 페이스를 보인 채은성은 그러나 7월 이후 70경기 타율 2할2푼7리(260타수 59안타) 13홈런 40타점 OPS .723으로 페이스가 꺾였다. 홈런은 늘었지만 전반적인 타격 생산력이 시즌 후반에 떨어졌다. 7월부터 오른쪽 햄스트링 통증이 왔지만 전력이 약한 팀 사정상 제대로 쉬어갈 여유가 없었다. 통증이 갈수록 악화됐고, 공수에서 100% 경기력을 발휘하기 어려웠다.
채은성은 “좋은 대우를 받고 팀에 왔으니 경기에 최대한 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경기를 좋을 때만 나가고, 안 좋을 때 안 나가고 그럴 순 없다. 모든 선수들이 시즌 내내 베스트 컨디션으로 나가는 게 아니다. 아파서 못했다는 건 핑계밖에 안 된다”며 “내년에는 몸 관리를 잘해서 부상 없는 시즌을 보내도록 할 것이다”고 말했다.
새 시즌에는 주장이라는 중책도 맡았다. 최원호 한화 감독이 일찌감치 내년 주장으로 채은성을 점찍어뒀고, 마무리캠프를 마친 뒤 직접 부탁을 했다. 팀을 옮긴 지 2년째이지만 올 한 해 보여준 리더십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노시환을 비롯해 경험이 부족한 젊은 선수들에게 많은 것을 알려주고 소통했다. 노시환은 “채은성 선배님에게 웨이트 루틴뿐만 아니라 야구에 대해 배웠다”며 “밥도 워낙 많이 사주셔서 아마 몇 천 만원은 쓰셨을 것이다”고 고마워했다.
“그 정도는 아니다”고 손사래를 친 채은성은 “후배들이 너무 좋게 말해준 것이다. 내가 그 나이대에 경험하며 느끼고 아쉬웠던 것을 알려준 정도”라며 “주장은 고등학교(순천효천고) 때 한 번 해본 뒤로 처음이다. 프로에서 주장은 아직 겪어보지 않아서 잘 모르겠지만 우리 팀은 젊은 선수들이 많다. 진짜 안 좋은 모습이 나올 때는 쓴소리도 하겠지만 최대한 야구를 편하게 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고 주장으로서 지향점도 드러냈다.
LG의 우승을 한 발짝 떨어져 바라본 채은성은 한화에서 꼭 우승하고 싶은 의지가 더 커졌다. 그는 “한화도 충분히 우승할 수 있다. 어린 친구들과 같이 가을야구부터 경험을 쌓으면 우승할 날이 올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냉정하게 말해 지금 당장은 아니다. 밑에서부터 차근차근 단단하게 해서 올라가야 한다. LG에서도 밑에서 시작해 경험을 쌓으면서 올라간 것이다. 내년에는 5강이 현실적인 목표다. 말로는 우승을 할 수 있어도 자기 위치를 잘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허황된 꿈은 너무 멀어 보인다. 경험 없이 한 번에 그렇게 올라가기 어렵다. 내년에 5강부터 해서 단계적으로 우승까지 갔으면 좋겠다”고 바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