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야구의 본고장’ 미국 메이저리그에 한국 선수가 무려 8명이 뛰던 시절이 있었다. KBO리그, 일본프로야구에서의 엄청난 활약을 발판 삼아 너도나도 미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고, 꿈의 무대인 빅리그 마운드와 타석을 밟으며 한국 야구의 위상을 높였다.
지난 2016년 국내 야구팬들은 1년 내내 밤잠을 설치느라 수면 부족에 시달렸다. 지금으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무려 8명의 한국 선수가 메이저리그에 진출해 밤낮을 가리지 않고 야구팬들을 설레게 만들었기 때문.
2005년 메이저리그에 데뷔한 ‘맏형’ 추신수, 2013년 LA 다저스, 2015년 피츠버그 파이어리츠에 각각 입단한 류현진과 강정호를 비롯해 김현수, 박병호가 KBO리그 평정과 함께 메이저리그 도전에 나섰고, 2015년 일본시리즈 MVP를 거머쥔 이대호, 2년 연속 일본 센트럴리그 구원왕을 차지한 오승환 또한 태평양을 건너기로 결심했다. 고교 졸업 후 곧바로 미국으로 향해 마이너리그 생활을 오래 한 최지만도 있었다.
가장 큰 주목을 받은 건 도전자들이었다. 한국의 타격기계로 불린 김현수가 2년 총액 700만 달러에 볼티모어 오리올스와 계약했고, 홈런왕 박병호는 4+1년 1200만 달러에 미네소타 트윈스로 향했다.
일본프로야구 소프트뱅크 호크스의 간판이었던 이대호는 시애틀 매리너스와 마이너리그 스플릿 계약을 체결하며 안정보다 꿈을 택했다. 역시 일본 한신 타이거스에서 2년 연속(2014, 2015) 일본 센트럴리그 구원왕에 오른 오승환은 1+1년 최대 750만 달러에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로 향했다.
2016년을 되돌아보면 기존 코리안리거들의 활약은 저조했다. 추신수는 텍사스 레인저스 3년차를 맞아 부상자명단을 자주 오가며 48경기 타율 2할4푼2리 7홈런 17타점 먹튀 논란에 시달렸다. 류현진 또한 2015년 어깨 수술 여파로 1경기 등판에 그쳤던 터.
강정호는 2015년 9월 크리스 코글란의 살인 태클에 정강이뼈가 골절되면서 2016년 5월이 돼서야 복귀가 이뤄졌는데 103경기 타율 2할5푼5리 21홈런 62타점의 장타력을 선보였다. 다만 강정호는 그해 12월 초 음주운전 적발로 커리어의 치명상을 입었다.
신참들의 활약은 인상적이었다. 김현수는 철저한 플래툰 시스템 속에서 95경기 타율 3할2리 6홈런 22타점 OPS .801의 경쟁력을 뽐냈고, 박병호는 62경기에서 홈런 12방을 터트렸다. 오승환은 빅리그에서도 파이널 보스로 불리며 76경기 6승 3패 19세이브 평균자책점 1.92의 강렬한 임팩트를 남겼다.
이대호는 마이너 계약의 반전을 이뤄내며 빅리그 무대에서 104경기 타율 2할5푼3리 14홈런 49타점 OPS .740을 기록했다.
여기에 최지만 또한 오랜 마이너리그 생활을 끝내고 LA 에인절스에서 빅리그에 데뷔해 54경기 타율 1할7푼 5홈런 12타점을 남겼다.
그 때와 달리 오는 2024시즌은 김하성(샌디에이고 파드리스), 배지환(피츠버그 파이어리츠), 이정후(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등 3명만이 메이저리그 출전이 예상된다. FA 자격을 얻은 류현진은 메이저리그 잔류와 국내 복귀 사이에서 고민을 거듭하는 것으로 알려졌고, 또 다른 FA 최지만도 아직 소속팀을 찾지 못했다.
한동안 미국 진출 러시가 끊겼던 KBO리그는 최근 이정후의 1억 달러가 넘는 초대형 계약으로 다시 메이저리그의 주목을 받고 있다. '20승 에이스' 에릭 페디의 역수출, LG 마무리 고우석의 메이저리그 도전 등 모처럼 오프시즌 KBO리그가 빅리그와 자주 연결되고 있다.
한국인 최초 내셔널리그 골드글러브 수상에 성공한 김하성은 2016년처럼 코리안 메이저리거가 많아지기 위해선 유망주들이 어릴 때부터 목표를 미국 무대로 잡아야한다고 말했다.
김하성은 “많은 한국 선수들이 목표를 크게 가졌으면 한다. 어릴 때부터 메이저리그라는 꿈을 갖고 열심히 했으면 좋겠다”라는 바람을 남겼다.
운 좋게도 내년 3월에는 사상 최초로 국내에서 메이저리그 개막전이 열린다. 김하성이 속한 샌디에이고와 오타니, 야마모토 요시노부를 품은 다저스의 맞대결이다.
김하성은 “한국에서 메이저리그 경기하는 게 최초라서 큰 의미가 있다. 아마추어 선수들이 많이 와서 봤으면 좋겠다. 어린 선수들에게 꿈을 심어줄 수 있다. 당연히 한국 팬들도 좋아할 거라고 생각한다. 나도 처음 하는 경기에 나갈 수 있어서 큰 영광이다”라고 밝혔다.
김하성 마찬가지로 KBO리그에서 빅리거의 꿈을 이룬 이정후의 의견도 같았다. 그는 “이번 계약을 따내면서 나랑 비슷한 친구들이나 후배들이 꿈을 키울 수 있다고 본다. 나보다 재능이 좋고 뛰어난 선수들이 많기 때문에 지금에 안주하지 않고 더 열심히 해야 한다는 말을 해주고 싶다. 열심히 하면 기회는 온다. 목표를 크게 가졌으면 좋겠다”라고 강조했다.
이정후는 “나 같은 경우 (김)하성이 형이 작년부터 너무 잘해주셔서 덕을 봤다. 형이 잘 해놓은 걸 내가 망칠 수 없다”라며 “나도 열심히 해서 한국야구 선수들에 대한 인식을 좋게 만들고 싶다. 그래야 많은 선수들이 도전할 수 있다. 책임감을 갖고 열심히 하겠다”라고 남다른 각오를 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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