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O리그 외국인 투수 구하기가 어느 때보다 어려운 시장이다. 6년째 신규 외국인 100만 달러 상한액에 묶여 특급 투수에게 경쟁적인 제안을 할 수 없는 환경에서 여러 팀들이 애를 먹고 있다. 지난 22일까지 10명의 외국인 투수가 재계약했고, 신규 영입 투수는 6명밖에 되지 않는다.
1선발급 외국인 투수를 찾던 한화도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고 있다. 올해 1선발 역할을 했던 펠릭스 페냐와 지난 9일 최대 105만 달러(계약금 20만 달러, 연봉 65만 달러, 인센티브 20만 달러)에 재계약한 뒤 남은 한 자리에 새로운 투수를 봤다. 몇몇 점찍어둔 투수들이 있었지만 미국 잔류를 택하면서 아쉬움을 삼켜야 했다.
무엇보다 투수 풀이 좁다.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마이너리그가 취소·축소 운영되면서 육성 체계가 흔들린 메이저리그 팀들도 투수난을 겪고 있다. 여기에 한화는 부상 리스크가 있거나 약물 전력이 있는 선수들을 영입 대상에서 제외하다 보니 투수 찾기가 더 힘들었다.
한화는 올해 1선발로 기대했던 버치 스미스가 개막전 어깨 부상으로 조기 방출되면서 큰 어려움을 겪었다.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인저리 프론’은 아무리 좋은 투수라도 고려하지 않는다. 모험보다 안정을 기할 때이고, 페냐부터 먼저 잡아둔 것도 위험 부담을 줄이기 위한 결정이었다.
시장 상황을 주시하고 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보험용’으로 보류선수명단에 넣어둔 좌완 리카르도 산체스(26)와의 재계약으로 가닥이 잡혔다. 시장에 워낙 투수 매물이 없다 보니 KBO리그 다른 팀에서도 산체스에게 관심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화와 재계약이 불발되면 보류권 해제를 요청해 영입할 수도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번 주까지 새 투수 영입에 뚜렷한 진척이 없으면 한화는 산체스와 재계약할 예정이다. 내년 2월 호주 멜버른에서 열리는 스프링캠프에 합류하기 위해선 비자 발급이 필요한데 중남미 국가 선수에겐 한 달가량 시간이 소요된다. 베네수엘라 출신 산체스와 재계약한다면 연내로 마무리를 해야 호주 캠프에 정상적 합류가 가능하다.
안정성 측면에서 보면 산체스도 나쁘지 않은 카드다. 올해 5월 한화에 합류한 산체스는 24경기(126이닝) 7승8패 평균자책점 3.79 탈삼진 99개로 대체 선수로는 준수한 성적을 거뒀다. 좌완으로 150km대 강속구를 던지는 산체스는 좌투수로 드물게 좌타자 몸쪽 공략을 잘한다. 빠른 템포로 공격적인 투구를 펼치며 첫 9경기(48⅔이닝)에서 5승 무패 평균자책점 1.48로 활약했다. 이 기간 한화는 8승1무로 한 번도 패하지 않았다. 전반기 막판 한화의 8연승 돌풍에 산체스가 있었다.
그러나 이후 15경기(77⅓이닝)에서 2승8패 평균자책점 5.24로 고전했다. 투구 동작에서 몇 가지 습관이 노출되면서 수정 작업을 거쳤지만, 확실한 결정구 부재에 따른 단조로운 패턴으로 타자들에게 공략당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내년에도 27세로 나이가 젊어 성장 가능성이 있고, 한국식 지도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인성과 친화력도 높게 평가된다. 스스로도 “한국에서 오랫동안 야구하고 싶다”는 동기 부여를 갖고 있다. 지난 10월9일 창원 NC전에서 옆구리 통증으로 강판되면서 시즌이 끝났지만 큰 부상이 아니라 이 부분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한화 코칭스태프도 내년 시즌 동행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산체스가 출국하기 전 비시즌에 같은 팔 높이에서의 체인지업 연습과 체중 관리를 당부하기도 했다. 괜찮은 자질을 갖고 있기 때문에 스프링캠프 때부터 코칭스태프와 함께 시작한다면 잘 다듬어 발전시킬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보험용’으로 KIA의 보류선수명단에 들었으나 시카고 컵스와 마이너리그 계약을 먼저 결정하며 미국으로 돌아간 토마스 파노니의 사례도 있다. 하지만 산체스는 한화와 재계약을 1순위로 두고 있고, 현재 중남미 윈터리그에도 나서지 않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