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자신한테 ‘고생했다’고 칭찬해주고 싶다.”
프로 입단 후 FA 계약까지 15년의 세월이 걸렸다. 불같은 강속구도 없고, 화려한 커리어는 아니지만 묵묵히 팀이 필요로 하는 자리에서 던지고 또 버텼다. 한화 투수 장민재(33)에게 FA 계약은 15년을 프로에서 살아남은 징표이자 영광의 훈장과 같다.
장민재는 지난 21일 원소속팀 한화와 2+1년 최대 8억원에 계약했다. 2024~2025년 연봉 총액 4억원에 옵션 1억원으로 2026년 계약이 실행될 경우 연봉 2억원과 옵션 1억원이 추가되는 조건이다. 확실하게 보장된 금액은 4억원으로 큰 규모의 계약은 아니다.
같은 날 LG 투수 임찬규는 4년 50억원(보장 26억원), 유격수 오지환은 6년 124억원(보장 100억원)에 대형 FA 계약을 체결했다. 이날까지 올 겨울 FA 계약 선수 8명 중 KIA 고종욱(2년 5억원, 보장 4억원)에 이어 두 번째 적은 계약이었다. 옵션 제외 보장액으로만 따지면 고종욱과 같은 최소 금액이다.
하지만 장민재에게 계약 규모는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가장 먼저 한화에 남은 게 중요했다. 광주일고 출신으로 지난 2009년 2차 3라운드 전체 22순위로 입단한 뒤 올해까지 15년간 한 팀에만 몸담은 그는 현재 한화 소속 선수 중 가장 오래 됐다. 화려한 스타는 아니지만 팀 사정과 필요에 따라 선발과 구원을 넘나든 소금 같은 존재였다.
FA를 신청할 때부터 한화를 떠날 마음도 조금도 없었다. 2차 드래프트를 앞두고 선수 1명이라도 더 보호하고 싶었던 구단에서도 장민재에게 FA 신청을 권유했다. FA 신청 선수는 2차 드래프트 지명 대상에서 자동 제외된다. 일찌감치 구단과 잔류에 공감대를 형성하며 FA 시장에 나갔고, 협상 과정에서 감정 상하는 일 없이 서로 합리적인 선에서 세부 사항을 조율했다.
다만 계약에 시간이 조금 걸리다 보니 일각에서 부정적인 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당사자의 귀에도 들어갔다. 장민재는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수도 있는 FA이기 때문에 신중하게 생각하느라 시간이 걸렸다”며 “구단과 협상 과정에서 트러블은 아예 없었다. 그보다 ‘돈 보고 시장 나가서 미아가 되는구나’ 하는 이야기가 나와 마음이 아팠다. 돈을 쫓거나 다른 팀에 가려고 한 게 아니다. 그런 부분에서 마음 고생을 했다”고 속내를 털어놓았다.
선수에게 FA는 일생일대의 기회이고, 돈을 쫓는다고 해서 꼭 나쁜 게 아니다. 선수의 정당한 권리이고, 한화도 협상 과정에서 장민재를 압박하지 않았다. 시장 상황을 둘러보고, 충분히 숙소해서 결정할 수 있게 시간을 주고 배려했다. C등급 FA라서 다른 팀의 관심이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장민재의 마음은 다른 곳을 향하지 않았다.
“내게 1순위는 늘 한화 이글스였다. 어디 갈 생각은 전혀 없었다”고 말한 장민재는 “한화 이글스란 내게 집이다. 가족 같다. 집 나가면 고생이라고 하지 않나. 대전이 편하고 좋다. (태어난 곳은 광주이지만) 이제 대전이 고향이다. 은퇴도 한화에서 하겠다”며 ‘영원한 한화맨’을 다짐했다.
또 하나의 큰 의미는 15년 걸려 따낸 FA 계약이라는 점이다. 광주 화정초 1학년 때부터 야구를 시작한 장민재는 어린 나이에 많은 공을 던졌고, 프로에 입단하기도 전에 두 번이나 팔꿈치 수술을 받았다. 프로에 와서도 2012년 팔꿈치 수술을 한 뒤 군입대했다. 3번의 수술로 공이 느린 투수가 됐지만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 제구를 기르고, 포크볼을 날카롭게 떨어뜨렸다. 피해가지 않는 공격적인 승부로 15년간 프로에 살아남았다.
커리어 내내 오르내림이 있었지만 한결같은 성실함과 묵묵함은 변하지 않았다. 15년의 세월을 버틴 끝에 아무나 못하는 FA 계약을 해낸 장민재는 “제 자신한테 ‘고생했다’고 칭찬해주고 싶다. 금액이 많든 적든 FA까지 야구하는 게 쉽지 않다. 내가 A급 선수는 아니지만 열심히 버텨서 이렇게 FA를 했다는 점에 의미를 두고 싶다”며 “여태까지 뒷바라지를 하시느라 고생하신 부모님과 여동생에게 감사하다”고 가족들에게 고마워했다.
FA 계약을 한 것으로 끝이 아니다. 그만큼 책임감이 커졌다. “우리 팀이 잘할 수 있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친구 (안)치홍이도 오고, 전력 보강이 됐으니 내년 시즌 기대된다. 팀이 잘 돼야 나도 빛을 본다. 내후년에 신구장도 생기는데 그곳에서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리는 걸 상상만 해도 너무 기분이 좋다”는 장민재는 “보직이 어떻게 되든 군말 없이 던지겠다. 어떤 스코어에 나가든 팀을 위해, 이기기 위해 열심히 던질 것이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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