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후(25·샌프란시스코)는 1억 달러가 넘는 잭팟을 터트리고도 왜 부담보다 기대가 크다고 했을까.
이정후는 19일 저녁 인천국제공항 제2터미널을 통해 귀국했다. 항공편이 당초 예정보다 약 2시간 지연 도착했지만 피곤한 기색 없이 환한 미소를 지으며 취재진 앞에 섰다.
2023시즌을 마치고 포스팅 시스템을 통해 빅리그 문을 두드린 이정후는 지난 13일(이하 한국시간) 내셔널리그 서부지구 전통의 강호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와 6년 1억 1300만 달러(약 1476억 원) 계약에 합의했다. 4년 뒤 옵트아웃 조항까지 포함된 초대형 계약을 체결했다.
당초 미국 ESPN, MLB트레이드루머스, 디 애슬레틱 등 복수 야구 전문 매체는 이정후의 몸값을 4년 5000만~6000만 달러 선으로 예측했다. 미국 CBS스포츠가 최근 6년 9000만 달러의 파격 전망을 내기도 했지만 이 또한 1억 달러 미만이었다. 포스팅 비용이 수반되는 이정후 영입에 1억 달러 이상을 베팅할 것으로 예상한 전문가는 사실상 없었다.
그러나 이정후는 모든 예상을 뒤엎었다. 그야말로 잭팟을 터트리며 지난해 보스턴 레드삭스에 입단한 일본 천재타자 요시다 마사타카의 5년 9000만 달러를 넘어 메이저리그 아시아 야수 최고액을 경신했다. 투수와 야수 통틀어 1위는 2014년 뉴욕 양키스와 7년 1억5500만 달러에 계약한 다나카 마사히로다. 메이저리그, 일본프로야구보다 몇 수 아래로 평가받는 KBO리그 간판타자가 단숨에 아시아 계약 규모 2위를 차지했다.
이정후의 초대형 계약 뒤에는 ‘악마의 에이전트’라 불리는 스캇 보라스의 뛰어난 협상력이 있었다. 보라스는 메이저리그를 대표하는 슈퍼 에이전트로, 2019년 메이저리그 에이전트 사상 최초로 계약 총액 10억 달러 시대를 열었다. 대형 스타플레이어를 여럿 보유했고, 선수에게 유리한 협상을 따내며 악마의 에이전트라는 악명 높은 별명을 얻었다.
코리안 메이저리거 또한 보라스의 협상력을 가장 신뢰한다. 코리안특급 박찬호의 2001년 텍사스 레인저스와의 5년 6500만 달러 계약을 시작으로 2013년 7년 1억 3000만 달러에 텍사스 레인저스로 향한 추신수, 2019년 4년 8000만 달러에 토론토 블루제이스와 계약한 류현진 모두 보라스의 작품이었다.
슈퍼 에이전트는 조언도 특급이었다. 이정후는 이날 귀국인터뷰에서 1억 달러가 넘는 금액이 부담되지 않냐는 질문에 보라스의 조언을 언급했다.
이정후는 “에이전트(스캇 보라스)가 해준 말이 가장 기억에 남았다. 처음에 오퍼를 받고 부담이 됐던 것도 사실인데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야구한 거에 대한 보상을 받은 거니까 부담 갖지 말라’는 말을 해줬다. 부담보다 기대가 크다”라고 밝혔다.
이정후가 언급한 ‘기대’는 ‘책임감’이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었다. 이정후는 “샌프란시스코의 오퍼를 처음 듣고 다리가 풀렸다. 자세한 협상에 대한 내용은 밝힐 수 없지만 샌프란시스코라는 명문 구단에 갈 수 있어서 영광이다. 구단에서 나한테 투자해주신 만큼 기대에 걸맞은 플레이로 보답해야 한다”라고 힘줘 말했다.
이정후는 이와 더불어 히어로즈 및 메이저리그 선배 김하성(샌디에이고 파드리스)과 나눈 이야기 또한 향후 메이저리그 전망을 밝히는 요인으로 꼽았다.
이정후는 “계약 확정이 나고 (김)하성이 형한테 가장 먼저 연락드렸다. 좋은 감독님 밑에서 야구하게 돼서 잘 됐고, 이제 내 야구만 잘하면 된다면서 좋은 말 많이 해줬다”라고 감사를 표했다.
/backlight@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