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의 손자' 이정후(25·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가 성대한 메이저리그 입단식을 마치고 금의환향했다.
이정후는 19일 저녁 인천국제공항 제2터미널을 통해 귀국했다. 항공편이 당초 예정보다 약 2시간 지연 도착했지만 이정후는 피곤한 기색 없이 환한 미소를 지으며 취재진 앞에 섰다.
2023시즌을 마치고 포스팅 시스템을 통해 빅리그 문을 두드린 이정후는 지난 13일(이하 한국시간) 내셔널리그 서부지구 전통의 강호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와 6년 1억 1300만 달러(약 1476억 원) 계약에 합의했다. 4년 뒤 옵트아웃 조항까지 포함된 초대형 계약을 체결했다.
이정후는 잭팟을 터트리며 지난해 보스턴 레드삭스에 입단한 일본 천재타자 요시다 마사타카의 5년 9000만 달러를 넘어 메이저리그 아시아 야수 최고액을 경신했다. 투수와 야수 통틀어 1위는 2014년 뉴욕 양키스와 7년 1억5500만 달러에 계약한 다나카 마사히로다. 메이저리그, 일본프로야구보다 몇 수 아래로 평가받는 KBO리그 간판타자가 단숨에 아시아 계약 규모 2위를 차지했다.
2017년 신인드래프트서 넥센 1차 지명된 이정후는 KBO리그에서 통산 884경기 타율 3할4푼 65홈런 515타점 69도루 581득점을 기록했다. 2022시즌 142경기 타율 3할4푼9리 193안타 23홈런 113타점 OPS .996을 기록하며 타격 5관왕(타율, 출루율, 장타율, 타점, 최다안타)과 정규시즌 MVP를 석권했다.
이정후는 2017년 APBC(아시아프로야구챔피언십), 2018년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2019년 프리미어12, 2021년과 2023년 WBC(월드베이스볼클래식) 등 각종 국제대회에서도 경쟁력을 입증했다. 올해는 부상으로 인해 86경기 타율 3할1푼8리 6홈런 45타점에 그쳤지만 이미 이정후의 실력을 확인한 메이저리그 복수 구단이 영입에 관심을 보였고, 고척돔에 단장을 파견할 정도로 정성을 쏟아 부은 샌프란시스코가 영입전의 최종 승자가 됐다.
이정후는 지난 16일 샌프란시스코 홈구장인 오라클파크에서 성대한 입단식을 가졌다. 등번호 51번에 ‘J H LEE’가 새겨진 자이언츠 유니폼을 입은 이정후는“안녕하세요, 자이언츠. 내 이름은 이정후다. 한국에서 온 바람의 손자다. 나를 영입한 샌프란시스코 존슨 구단주 가문과 래리 베어 CEO, 자이디 사장, 에이전트 스캇 보라스에게 특히 감사하다. 어머니, 아버지에게도 감사하다”라며 “어릴 때부터 메이저리그에서 뛰는 게 꿈이었다. 항상 베이에어리어를 좋아했다. 이곳에 이기기 위해 왔다. 동료들과 팬들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 레츠고 자이언츠”라고 영어로 직접 각오를 밝혔다.
이정후는 귀국 후 휴식과 훈련을 병행하며 메이저리그 데뷔 시즌을 준비할 계획이다. 이후 내년 2월 샌프란시스코 스프링캠프에 참가해 본격적인 주전 경쟁에 돌입하게 된다.
다음은 인천국제공항 입국장에서 만난 이정후와의 일문일답이다.
-입국 소감은
추우신데 나와주셔서 감사드린다. 샌프란시스코 입단 기자회견 때보다 지금이 더 떨린다.
-메이저리그 진출의 꿈이 이뤄졌다
초등학교 때 처음 메이저리그 꿈을 꿨는데 그러고 나서 잠시 접어놨다가 다시 꾸게 된 건 베이징 올림픽을 봤을 때다. 1차적인 목표를 이룬 것 같고 이제 가서 잘하는 게 두 번째 목표다.
-엄청난 계약을 체결했다
이게 첫 오퍼였다. 처음 듣고 다리가 풀렸다. 자세한 협상 내용은 밝힐 수 없지만 샌프란시스코라는 명문 구단에 갈 수 있어서 영광이다. 구단에서 나한테 투자해주신 만큼 기대에 걸맞은 플레이로 보답해야 한다. 일찍 마무리가 돼서 여러 감정이 교차했다.
-오라클파크를 처음 밟은 느낌은
키움 때 견학간 것 말고 메이저리그 구장 밟은 게 처음인데 너무 좋았다. 운동장 자체가 들어서는 순간 메이저리그 구장다웠다. 미국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야구장으로 손꼽히는 곳이라서 들어서자마자 거대하고 웅장하다는 생각밖에 안 들었다.
-입단식 마치고 NBA 경기장도 찾았다
구단에서 농구 보고 싶다고 하니까 자리 마련해주셨다. 입단식 전에는 운동하고 싶다고 하니까 운동도 시켜줬다. 내가 원하는대로 해줘서 감사했다.
-기자회견에서 환호가 엄청 나더라
처음에 나를 향한 환호인 줄 몰랐다. 얼떨떨했다. 환호해주시고 반겨주셔서 감사했다.
-입단식 영어 기자회견이 화제가 됐다
준비했는데 준비했을 때만큼 잘 안 나왔다. 한국에서 우리가 외국인선수들에게 한국어를 잘하길 기대하지 않는다. 우리가 느꼈을 때 잘 못하더라고 한국어 하려는 모습이 멋져서 나도 기회가 되면 영어를 하는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었다. 생각만큼 잘 되진 않았다. 더 노력해야 한다.
-영어 외에 적응을 위해 노력하는 부분은
이제 슬슬 준비해야 한다. 음식은 전혀 문제될 게 없다. 야구와 관련한 준비를 해야 한다.
-현지에서 큰 계약에 대한 기대감을 실감했나
큰 금액에 대한 기대감보다 에이전트가 해준 말이 가장 기억에 남았다. 처음에 오퍼 받고 부담이 됐던 것도 사실인데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야구한 거에 대한 보상 받은 거니까 부담 갖지 말라고 했다. 부담보다 기대가 크다.
-반려견까지 현지 주목을 받고 있는데
많이 챙겨주시는 것 같아서 감사하다. 준비 잘해서 좋은 모습 보여드려야 한다. 구단에서 1년에 두 번 반려견의 날이 있다고 하더라. 그래서 나도 강아지 키운다고 하니까 소개를 해준 것 같다. 오타니 선수도 반려견이 있는데 비교는 말이 안 된다. 나는 내가 할 것만 열심히 하면 된다. 나는 오타니 선수와 견줄 수 있는 선수가 아니다. 부담은 안 된다.
-샌프란시스코를 최종 행선지로 결정하기까지 과정이 궁금하다
많은 구단이 있었지만 샌프란시스코는 단장님이 한국에 와주셨다. 협상 과정에서도 날 원하시는 느낌이 들었다. 자세한 건 말씀 못 드려도 역사 깊은 팀에서 뛸 수 있게 돼서 너무 영광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빠르게 결정했다.
-오타니 쇼헤이와 라이벌팀에서 뛴다는 게 동기부여가 될 것 같다
견줄 수 없다. 오타니 선수는 워낙 전 세계적으로 야구를 제일 잘한다. 난 이제 시작하는 단계다. 사실 비교도 안 된다. 계약 금액도 그렇다. 너무 비교해주시지 말았으면 좋겠다.
-빠른 공에 대한 적응은 어떻게 할 계획인가
올해 타격폼도 바꿨는데 미국에서 그 부분에서 날 높이 평가해주셨다. 나도 올해 더 잘하고 싶어서 한 것도 있었지만 최고로 잘할 때 그런 변화를 주면서 하려고 했던 모습도 높게 평가해주셨다. 우선 내가 부딪쳐 볼 생각이다. 몸이 거기에 맞게끔 변화가 될 것이다. 또 아직 나는 어리다. 빨리 적응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현장에서 아버지 이종범이 부럽다고 했다
아버지도 감사하지만 어머니 헌신이 없었더라면 이렇게 클 수 없었다. 물론 아버지 도움도 많이 있었지만 아버지가 현역 시절 나한테 해주지 못한 걸 어머니가 다 해주셨다. 어머니께 감사하다. 아버지도 지금까지 날 믿어주셨다. 내가 어떤 선택을 할 때 한 번도 나한테 반대 의견을 내신 적이 없었다. 감사하다.
-이번 계약에서 가장 만족스러운 부분은
다 감사한데 중간중간 기부할 수 있는 조항이 있었다. 미국은 연고지 선수가 잘 되면 지역 사회에 기부하는 문화가 있다고 들었다. 나도 기부할 수 있게 돼서 뿌듯했다.
-내년 시즌 목표는
이제 슬슬 생각해봐야 한다. 이 계약했다는 게 실감나지 않고 아직도 미국에 운동하러 갔다온 기분이다. 조금씩 실감이 나면서 그 때부터 목표를 잡아야하지 않나 싶다.
-포스팅을 통해 친정 키움도 이적료 이득을 봤다
좋지 않을까. 선수들을 위해서 많이 써주셨으면 좋겠다.
-이번 계약이 메이저리그를 꿈꾸는 KBO리그 선수들에게도 큰 동기부여가 될 것 같다
내가 이런 계약 따내면서 나랑 비슷한 친구들이나 후배들이 꿈을 키울 수 있다고 본다. 나보다 재능이 좋고 뛰어난 선수들이 많기 때문에 더 열심히 지금에 안주하지 않고 해야 한다는 말을 해주고 싶다. 열심히 하면 기회는 온다. 목표를 크게 가졌으면 좋겠다. 나 같은 경우 (김)하성이 형이 작년부터 너무 잘해주셔서 덕을 봤다. 형이 잘 해놓은 걸 내가 망칠 수 없다. 나도 열심히 해서 한국야구 선수들에 대한 인식을 좋게 만들고 싶다. 그래야 많은 선수들이 도전할 수 있다. 책임감 갖고 열심히 하겠다.
-김하성과 같은 지구에서 맞붙게 된 소감은
상대팀으로 처음 만나게 되는 건데 설레기도 하고 기대도 된다.
-샌프란시스코에서 원하는 1호 기록은
스플래시 히트다. 그게 유명하다고 들었다. 왼손타자니까 한 번 도전해보고 싶다.
-오라클파크가 대표적인 투수 친화적인 구장이다. 어떻게 준비할 계획인가
가보니까 확실히 우측은 짧은 대신 엄청 높더라. 우중간은 넓다. 내 장점 잘 살리면 나한테 잘 맞는 홈구장이 될 것 같다. 나는 홈런타자가 아니고 좌우중간 갈라서 칠 수 있는 타자다.
-중견수 수비 플랜은
좌중간은 괜찮은데 우중간이 조금 힘들 것 같다. 좌중간까지는 라이온즈파크 느낌이고 우중간은 조금 더 깊고 펜스가 벽돌로 돼 있다. 우중간 쪽으로 타구가 오면 맞고 어디로 튈지 몰라서 신경써야 한다.
-부모님께 해드리고 싶은 선물이 있나
해달라는 건 다해드리고 싶다. 그러나 부모님 성격 상 그러실 분들이 아니다. 내가 센스있게 준비해서 잘해드리고 싶다.
-메이저리그 진출을 노리는 매부 고우석과도 이야기를 나눈 게 있나
우석이가 축하 연락을 해줬다. 계약 이야기는 안 나눴고 조카 이야기만 나눴다.
-김하성과 나눈 이야기도 궁금하다
계약 확정 나고 (김)하성이 형한테 가장 먼저 연락드렸다. 좋은 감독님 밑에서 야구하게 돼서 잘 됐다고 말해줬다. 이제 내 야구만 잘하면 된다는 등 좋은 말을 많이 해줬다.
-또 다른 메이저리그 도전자 김혜성에게도 조언을 해줬나
김혜성이 준비하고 있다는 걸 기사를 통해 접했다. 김혜성도 워낙 욕심이 많고 준비도 잘하고 야구를 잘하는 친구라서 겨울 내내 준비 잘하면 내년에 충분히 포스팅 신청해서 좋은 계약할 수 있는 친구라고 생각한다. 다치지 말고 하던 대로 잘 준비해서 좋은 계약 체결했으면 좋겠다.
-향후 일정은
비자를 발급받아야 한다. 미국 들어가기 전까지 계속 훈련하면서 지낼 것이다.
-샌프란시스코에서 이루고 싶은 목표는
우승을 한 번도 못해봐서 우승을 해보고 싶다. 신인 때 생각해보면 신인왕 탈 거라고 생각하지 못한 상태서 시즌 치렀는데 하루하루 최선 다하다보면 좋은 결과 나오고 그 때 가서 생각해보면 된다. 팀 승리에 도움이 됐으면 한다.
-키움 팬들에게 한마디
7년 동안 너무 감사했다. 미국에서도 시간 날 때 우리 홈경기 마지막 타석 때 팬들이 함성 보내주시는 걸 항상 봤다. 너무 감사했다. 그 응원과 함성 항상 잊지 않고 가슴 속에 새기면서 미국에서도 열심히 하겠다. 히어로즈 출신답게 잘할 테니 많은 응원 부탁드린다.
-대한민국 야구 팬들에게도 인사 부탁드린다
응원하는 소속 팀이 달라서 날 응원해주시지 않은 팬들이 계셨을 텐데 이제 한국 떠나서 미국 무대에 도전하게 됐다. 많은 응원 부탁드리고 팬들이 아침에 응원해주시는 거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멋진 플레이로 잘 보답해드릴 수 있도록 열심히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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