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의 손자’라는 별명으로 미국 팬들에게 존재를 알린 이정후(25·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의 야구 혈통이 주목받고 있다. 자연스럽게 아버지 이종범(53) 전 LG 코치도 계속 화제가 되고 있다.
메이저리그 공식 홈페이지 MLB.com은 지난 18일(이하 한국시간) ‘2024년 올 MLB(ALL-MLB Team)팀에 뽑힐 10명의 잠재적 후보’를 꼽으며 중견수 부문에서 이정후를 선정했다. 올 MLB 팀은 2019년 제정된 상으로 양대리그 통틀어 각 포지션별 최고 선수에게 주어진다. 팬 투표 50%와 전문가 투표 50%를 합산해 최종 명단이 발표되며 최고의 선수들이 모인 퍼스트 팀과 차점자들로 구성된 세컨드 팀으로 나뉜다.
아직 메이저리그에 데뷔하지도 않았는데 이정후는 잠재적인 올 MLB 팀 후보로 주목받았다는 점에서 그에 대한 기대치가 얼마나 큰지 알 수 있다. MLB.com은 ‘이정후는 매우 뛰어난 컨택 능력과 스피드를 보유하고 있다. 여기에 바람의 손자라는 야구 혈통의 보유자’라며 아버지 이종범 코치의 아들이라는 점을 강조한 뒤 ‘이정후의 모든 방향으로 타구를 보낼 수 있는데 외야가 깊은 오라클파크(샌프란시스코 홈구장)에서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 이정후의 나이는 이제 25살에 불과하고, 훌륭한 수비력을 갖춘 중견수’라고 설명했다.
이정후가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로부터 6년 1억1300만 달러로 예상을 뛰어넘는 대박 계약을 따낼 수 있었던 데에는 ‘적은 삼진’이 결정적이었다. 이정후는 KBO리그 7시즌 통산 역대 최고 타율(.343)을 치며 383볼넷 304삼진을 기록했다. 삼진보다 볼넷이 훨씬 많았다. 특히 2022년 MVP를 차지한 시즌에는 홈런 23개를 터뜨리며 삼진을 32개밖에 당하지 않았다.
파르한 자이디 샌프란시스코 야구운영사장은 이정후 입단식 때 “볼넷과 삼진 비율을 빼고 봐도 홈런과 삼진 숫자가 비슷한 것은 어느 리그에서나 정말 인상적인 기록”이라며 “우리 스카우트들은 단순히 기록만 보지 않았다. 이정후의 투구 인식 능력이 아주 뛰어난 것을 봤다. 그는 투수의 공을 빨리 알아차린다. 그 기술이 빅리그에서도 통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갖고 있다”고 자신했다.
이정후의 아버지 이종범 코치도 현역 시절 삼진을 잘 당하지 않는 타자였다. KBO리그 16시즌 통산 634볼넷 622삼진을 기록했다. 통산 삼진율 9.0%에 불과했다. 아버지의 피를 그대로 물려받은 이정후는 그보다 더 낮은 삼진율 7.7%를 기록했다. 통산 3000타석 이상 들어선 타자 중 역대 6위에 해당한다. 이종범은 14위.
미국 ‘디애슬레틱’은 지난 17일 샌프란시스코의 이정후 영입 소식을 전하면서 이종범 코치도 다뤘다. 매체는 ‘이종범은 선수 시절 삼진을 당하는 게 가장 싫었다고 말했다. 아들에게도 같은 마음을 심어줬다’고 전한 뒤 ‘이종범은 한 시대를 풍미한 KBO 최고의 선수로 당시 한국 최고 선수가 꿈꿀 수 있는 무대는 일본프로야구였다. 이정후가 태어난 1998년 이종범은 주니치 드래건스에서 뛰고 있었다. 이제 그는 아들이 최고 레벨에서 성공하는 모습에 대리 만족하며 살 수 있게 됐다’고 전했다.
디애슬레틱은 이종범 코치의 코멘트도 실었다. “3년 전 아들이 여러 팀들과 에이전트 스캇 보라스로부터 많은 관심을 받을 때 ‘아들이 메이저리그에 진출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떠올린 이종범 코치는 “아들은 젊고, 두려움이 없다. 자신의 능력에 자신감이 넘치고, 그 자신감 덕분에 어떠한 어려움도 극복할 수 있다”며 아들의 성공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이종범 코치는 아내 정연희 씨와 함께 지난 16일 오라클파크에서 열린 아들 샌프란시스코 입단식도 참석했다. 오라클파크에서 가족 기념 사진을 찍었고, 기자회견 때 아들의 모습을 휴대폰 카메라로 담는 모습이 포착되기도 했다. 현지 취재진도 이정후에게 이종범 코치 관련 질문을 3개나 할 정도로 부자 관계에 높은 관심을 보였다.
‘아버지가 야구하는 것을 보면서 배운 게 있는가?’라는 질문에 이정후는 “야구적으로 배운 건 없다”며 웃은 뒤 “인성 면에서 좋은 사람으로 클 수 있는 방법을 배웠다. 선수가 잘할 때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도 배웠다”며 한 시대를 풍미한 슈퍼스타 출신 아버지에게 올바른 인성 교육을 받았다고 답했다.
‘바람의 손자’라는 별명이 어디서 유래됐는지에 대한 질문에도 이정후는 “아버지 선수 시절 별명이 바람의 아들이었다. 태어나니까 자연스럽게 바람의 손자가 됐다. 한국에서 뛸 때는 조금 오글거리기도 했는데 영어로 말하니까 멋있다”며 웃었다. 기자회견에 앞서 이정후는 영어로 자기소개를 하며 “한국에서 온 바람의 손자”라고 말하기도 했다.
‘아버지보다 발이 빠른가’라는 추가 질문도 이어졌다. 이에 이정후는 “아버지는 정말 빨랐다. 지금은 내가 이기지만 같은 나이대에 뛰면 내가 절대 이길 수 없을 것이다”고 답했다. 이종범 코치는 KBO리그 역대 통산 도루 2위(510개)로 1994년 역대 한 시즌 최다 84도루 기록을 갖고 있다. 7시즌 통산 도루 69개를 기록한 이정후는 한 시즌 최다 13개로 아버지의 발에는 미치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