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O리그 키움 히어로즈에서 함께한 김하성(28·샌디에이고 파드리스)가 이정후(25·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가 미국의 메이저리그에선 적으로 만난다. 그것도 같은 내셔널리그(NL) 서부지구 팀으로 내년에 14번이나 맞대결 일정이 기다리고 있다.
이정후는 16일(이하 한국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 오라클파크에서 입단식과 기자회견을 가졌다. 전날(15일) 신체 검사를 통과하면서 6년 1억1300만 달러 계약이 공식 발표됐고, 이날 등번호 51번이 새겨진 샌프란시스코 유니폼과 모자를 착용하며 팬들에게 첫인사를 건넸다.
이날 이정후의 기자회견은 33분가량 진행됐다. 현지 취재 기자들의 질문이 끊이지 않았는데 김하성에 대한 내용이 빠질 수 없었다. 이정후는 2017년 데뷔 후 2020년까지 4년간 히어로즈에서 김하성과 한 팀에서 뛰었다. 3살 터울의 선후배이지만 그라운드 안팎에서 붙어다니는 끈끈한 사이로 발전했다.
김하성이 지난 2021년 메이저리그에 먼저 진출하면서 이정후를 위한 발판을 마련했다. 첫 해 적응기를 보낸 김하성은 2년차가 된 지난해부터 주전으로 발동움했고, 올해는 NL 유틸리티 부문 골드글러브를 수상했다. 타격까지 일취월장하면서 최고 시즌을 보냈고, 빅리그 진출을 앞둔 이정후에게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포지션은 다르지만 같은 나이대 KBO리그 출신 선수로 김하성과 비교됐고, 예상을 뛰어넘는 대형 계약을 따냈다.
먼저 메이저리그를 경험한 김하성의 조언은 야구뿐만 아니라 계약에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김하성은 지난달 20일 서울에서 골드글러브 수상 기념 기자회견에서 이정후 계약 관련 질문에 “마이너리그 거부권은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그보다 옵트 아웃을 계약 조건에 넣는 게 낫다”고 말했는데 실제 이정후는 6년 계약 중 4년 뒤 옵트 아웃 조건을 넣었다. 선수 친화적인 계약으로 4년 뒤 FA 계약의 가능성도 열어놓았다.
이날 이정후의 샌프란시스코 입단 기자회견에서도 김하성의 이름이 나왔다. 김하성과 적으로 만나게 된 것에 대해 이정후는 “하성이형은 한국에서 같은 팀메이트로 뛰었다. 내게 정신적 지주가 된 형이었다. 한국에 있을 때부터 항상 좋은 말씀을 해주셔서 이렇게 큰꿈을 키울 수 있었다”며 “함께 뛴 시절을 뒤로하고 맞대결을 하게 돼 신기하고, 설레기도 한다. 앞으로도 계속 형한테 많이 물어봐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김하성이 속한 샌디에이고도 이정후에게 관심을 가졌고, 유력한 영입 후보로 거론됐지만 샌프란시스코의 조건을 넘지 못했다. 비록 다른 팀으로 떨어지게 된 이정후와 김하성이지만 이제는 같은 한국인 빅리거로서 서로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
이정후의 샌프란시스코행이 확정된 뒤 김하성도 축하 연락을 했다. 이정후는 “하성이형이 소식을 듣고 정말 축하한다고 했다. 제일 많이 해준 말이 ‘좋은 감독님 밑에서 야구를 하게 돼 정말 잘됐다’는 것이었다”며 밥 멜빈 감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고 밝혔다. 멜빈 감독은 샌디에이고를 떠나 지난달 샌프란시스코 새 감독에 선임됐다.
올해의 감독상을 3번이나 수상한 멜빈 감독은 메이저리그 사령탑 경력만 20년이나 되는 베테랑이다. 최근 2년간 샌디에이고를 이끌며 김하성에게 기회를 주고 밀어줬다. 지난해 페르난도 타티스 주니어의 부상 공백 때 김하성을 주전 유격수로 발탁했다. 올해는 2루수로 옮긴 김하성을 내야 전천후로 쓰며 1번타자로 고정해 타격 잠재력까지 이끌어냈다.
온화한 성품으로 소통 능력이 뛰어난 멜빈 감독은 선수들의 신망이 두텁다. 20년이나 감독 생활을 했지만 선수들과 불화설이 나온 적이 없을 정도로 리더십에서 인정받는 베테랑 감독이다. 이른바 ‘믿음의 야구’로 한 번 믿는 선수들에게 쭉 기회를 준다. 김하성의 성공을 바로 옆에서 지켜보며 이끌어낸 멜빈 감독의 존재가 새출발하는 이정후에게도 큰 힘이 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