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온 바람의 손자입니다.”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선수가 된 이정후(25)는 공식 입단식에서 자신을 이렇게 영어로 소개했다. 직접 ‘바람의 손자(Grandson of wind)’라는 표현을 쓰며 미소를 지었다. 현역 선수 때 ‘바람의 아들’로 불린 아버지 이종범(53) 전 LG 코치의 아들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붙은 별명이 입단식에서 또 화제가 됐다.
16일(이하 한국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 오라클파크에서 열린 이정후의 샌프란시스코 입단식과 기자회견에는 이종범 코치가 아버지의 자격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아내 정연희 씨와 함께 입단식을 찾았고, 오라클파크에서 기념으로 가족사진도 찍으며 잊을 수 없는 추억을 남겼다.
이정후의 샌프란시스코 입단으로 이종범 코치의 전설적인 선수 커리어도 회자되고 있다. 지난 1994년 해태 시절 타격왕(.393)에 오르며 역대 한 시즌 최다 84도루로 MVP에 등극한 이종범 코치는 KBO리그 역사상 최고의 5툴 플레이어로 한 시대를 풍미했다. 그로부터 28년의 세월이 흘러 2022년 아들 이정후가 대를 이어 MVP를 수상하며 KBO리그 최초 부자 MVP의 역사가 쓰여졌다.
이런 부자 관계가 미국에도 소개됐고, 이날 기자회견에선 이정후에게 아버지 관련 질문도 3개나 나왔다. ‘아버지가 야구하는 것을 보면서 배운 게 있는가?’라는 질문에 이정후는 “야구적으로 배운 건 없다. 인성 면에서 좋은 사람으로 클 수 있는 방법을 배웠다. 선수가 잘할 때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도 배웠다”며 최고 스타였던 아버지에게 야구 외적인 면에서 가르침을 받았다고 답했다. 실제 이정후는 출중한 실력만큼 바른 인성으로 야구계에서 인정받고 있다.
‘바람의 손자’라는 별명에 대한 질문도 이어졌다. 이정후는 “아버지의 선수 시절 별명이 바람의 아들이었다. 태어나니까 난 자연스럽게 바람의 손자가 됐다. 한국에서 뛸 때는 바람의 손자라는 별명이 조금 오글거리기도 했는데 영어로 말하니까 멋있더라”며 웃음을 터뜨렸다.
아버지보다 발이 빠른지에 대한 추가 질문까지 나왔다. 이에 이정후는 “아버지는 정말 빠르셨다. 지금은 내가 이기지만 같은 나이대에 뛰면 내가 절대 이길 수 없을 것이다”며 이종범 코치를 한껏 치켜세웠다.
실제 스피드, 주력에 있어 이정후는 이종범 코치 상대가 되지 못한다. 이종범 코치는 KBO리그에서 16시즌 통산 510도루를 기록했다. 역대 통산 2위 기록으로 지금까지 남아있다. 1993년 데뷔 첫 해부터 73도루를 기록하는 등 50도루만 5시즌을 기록했다. 1루에 나가면 사실상 2루타로 간주될 만큼 나갔다 하면 한 베이스 추가를 보장한 발이었다.
반면 이정후는 KBO리그 7시즌 통산 69도루로 주력에 특화된 선수는 아니다. 2017년 데뷔 후 5년 연속 두 자릿수 도루를 했지만 2019년 13도루가 최다 기록. 스피드에 있어선 바람의 손자라는 별명이 무색하지만 컨택 능력은 아버지를 능가한다. 통산 타율 3할4푼은 3000타석 이상 기준으로 KBO리그 역대 1위에 빛나는 기록이다. 이종범 코치의 통산 타율은 2할9푼7리. 일본 진출 전 최전성기였던 1993~1997년 해태 시절 5년간 기록한 3할3푼2리보다 이정후의 타율이 더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