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후(25)가 초특급 대우를 받으며 메이저리그에 입성했다. 고교 선수들에게 다시 미국 직행이 유행을 타기 시작한 가운데 이정후의 초대박 계약이 앞으로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
‘MLB 네트워크’를 비롯해 미국 언론들은 지난 13일(이하 한국시간) 이정후가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와 6년 1억1300만 달러(약 1484억원)에 계약을 합의했다고 일제히 전했다. 지난 2012년 시즌 후 LA 다저스와 6년 3600만 달러에 계약한 투수 류현진을 넘어 포스팅 시스템으로 메이저리그에 진출한 한국인 선수 중 역대 최고액 계약으로 대박을 쳤다. 아시아 야수 중에서도 최고 대우를 받았다.
이로써 이정후는 포스팅 시스템으로 KBO리그에서 메이저리그에 직행한 역대 6번째 선수가 됐다. 류현진을 시작으로 2014년 시즌 후 내야수 강정호(피츠버그 파이어리츠·4+1년 1100만 달러), 2015년 시즌 후 1루수 박병호(미네소타 트윈스·4+1년 1200만 달러), 2019년 시즌 후 투수 김광현(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2년 800만 달러), 2020년 시즌 후 내야수 김하성(4+1년·2800만 달러)에 이어 이정후가 역대 최고 대우로 모두를 놀라게 했다.
이정후가 예상을 뛰어넘는 큰 계약을 할 수 있었던 데에는 아직 25세에 불과한 젊은 나이가 컸다. 이정후는 지난 2017년 1차 지명으로 넥센 히어로즈(현 키움)에 입단한 뒤 해외 진출에 필요한 7시즌 1군 등록일수 자격을 빠르게 충족했다. 2018년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획득하며 병역 혜택으로 군 문제를 일찌감치 해결한 게 결정적이었다.
당시 또 다른 금메달 멤버였던 김하성도 한국에서 7년을 뛰고 난 뒤 25세에 메이저리그 무대로 향했다. 이정후만큼 대박 계약은 아니었지만 젊은 나이와 성장 가능성을 인정받아 4+1년 다년 계약을 따냈다. 내년 시즌을 마치면 FA 자격을 취득하는 김하성은 그때도 나이가 29살밖에 되지 않아 아직 대박 계약에 대한 기대가 높아진다.
김하성에 이어 이정후의 성공은 미래 빅리거를 꿈꾸는 한국의 어린 꿈나무들에게도 큰 동기 부여가 될 것으로 보인다. 미국 직행보다 KBO리그에서 먼저 성공한 뒤 메이저리그로 건너가는 게 정석적인 루트가 될 수 있다. 모험보다 안정성에서 그렇다.
‘한국인 1호 빅리거’ 박찬호의 성공 이후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중반 수많은 아마추어 선수들이 미국으로 향했다. 최고 커리어를 남긴 추신수를 비롯해 김병현, 서재응, 최희섭, 최지만 등 메이저리그에서 풀타임으로 다년간 뛴 선수는 한 손가락에 꼽을 정도로 성공 가능성이 낮았다. 한국 복귀시 2년 유예 규정에 묶여 아까운 시간만 날린 선수들이 대부분이었다.
이후 한동안 잠잠해졌던 고교생 미국 직행이 최근 들어 유행하기 시작했다. 2022년 심준석(피츠버그 파이어리츠), 2023년 장현석(LA 다저스) 등 고교 넘버원 투수들이 연이어 미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이외에도 2018년 투수 최현일(다저스), 2022년 외야수 조원빈(세인트루이스), 포수 엄형찬(캔자스시티 로열스), 2023년 투수 이찬솔(보스턴 레드삭스) 등이 미국으로 건너갔다.
지난해 3월 메이저리그 노사 협정을 통해 마이너리그 처우 및 복지가 대폭 개선되면서 미국 직행 메리트가 상승했다. 선진적인 코칭 시스템으로 마이너리그 육성과 메이저리그 데뷔 시기도 빨라짐에 따라 미국 직행을 택하는 선수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향후 얼마나 성공할지는 봐야 하지만 항저우 아시안게임 금메달 리스트인 장현석을 제외하면 군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선수들이라 리스크가 분명 크다.
지난 2020년 5월 영주권을 따내 37세까지 병역을 미룬 최지만 케이스가 있지만 메이저리그에서 롱런하지 않으면 큰 의미가 없다. 미국 직행 선수 중 30대 후반까지 메이저리그에서 뛴 선수는 박찬호와 추신수, 둘밖에 없다. 현역 빅리거 중에선 최지만이 거의 유일한 성공 사례. 2021~2022년 빅리그 경험한 박효준(오클랜드 애슬레틱스)은 올해 마이너리그에 머물렀고, 배지환(피츠버그 파이어리츠)도 아직 빅리거로 자리잡았다고 보기 어렵다.
포스팅 외에도 FA를 통해 KBO리그에서 메이저리그에 직행한 선수로는 김현수, 황재균, 양현종이 있다. 일본을 거쳐 간 오승환과 이대호도 빼놓을 수 없다. 2018년 7월 한미 포스팅 시스템 개정으로 과거보다 선수가 받는 금액도 커졌다. 초특급 대우로 미국에 입성한 이정후의 성공이 미래 미국을 꿈꾸는 특급 유망주들의 생각을 바꿔놓을 수 있을지도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