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주운전 삼진아웃 중범죄를 저지르며 불명예 은퇴한 강정호(36)가 타격 지도자로 변신해 성공 조짐을 보이고 있다. NC 손아섭의 생애 첫 타격왕을 도우며 주가를 확 끌어올린 모습이다.
손아섭은 올해 프로 17번째 시즌을 맞아 140경기 타율 3할3푼9리 187안타 5홈런 65타점 맹타를 휘두르며 타율과 안타 부문 1위에 올랐다. 타율은 삼성 구자욱(3할3푼6리)을 근소하게 따돌렸고, 안타 또한 키움 김혜성(186개)에 1개 앞선 극적인 1위를 차지했다. 그 동안 타율 2위만 두 차례 경험했던 손아섭은 생애 첫 타격왕 및 통산 4번째 안타왕을 거머쥐며 아쉬움을 털어냈다. 골든글러브 지명타자 부문 역시 그의 차지였다.
최근 골든글러브 시상식에서 만난 손아섭은 “절박한 마음으로 준비했다. 어릴 때는 한 시즌 부진해도 또 기회가 있었지만 나이 들어서 한 시즌 부진하면 위기감이 온다. 에이징커브 이야기도 많이 나왔다. 조금 더 정신 차리고 다시 보여줘야겠다는 생각을 했다”라며 “(강)정호 형과 함께 절박한 마음으로 준비했다. 형과 로스앤젤레스에서 정말 고생을 많이 했다”라고 강정호 아카데미 방문을 타격왕 등극 비결로 꼽았다.
손아섭은 2023년 스프링캠프를 앞두고 미국 로스앤젤레스로 향해 강정호가 은퇴 후 차린 야구 아카데미에서 타격 레슨을 받았다. KBO리그 최고의 유격수로 군림하며 메이저리그 무대까지 밟은 강정호와 함께 타격폼 교정 작업을 진행했고, 이는 프로 17년차에 첫 타격왕을 차지하는 값진 성과로 이어졌다.
손아섭은 “(강)정호 형의 레슨이 엄청 특별하진 않다. 다만 디테일하다. 훈련의 방향성과 스윙 매커니즘 교정 이유를 정확하게 팩트로 설명해준다. 받아들이기 쉽게 방향성을 제시해준다”라며 “형이 지름길을 알려준다고 보면 될 것 같다. 돌아가지 않는 빠른 길을 가르쳐준다. 잊고 있었던 나만의 매커니즘을 찾는 계기가 됐다”라고 강정호 스쿨의 장점을 설명했다.
이어 “형도 미국에서 좋은 투수들을 만나면서 스스로 많이 느낀 부분이 있었다고 하더라. 한국에서 했던 것처럼 하면 미국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는 판단을 했다. 형도 숨은 고수를 찾아다니면서 타격 공부를 했다”라며 “그 중 가장 맞다고 생각하는 이론을 나한테 말해줬다. 물론 형의 만족도에는 내가 많이 못 미친다. 형의 훈련을 내가 다 소화하지 못한다”라고 뒷이야기를 덧붙였다.
손아섭은 내년 시즌 또한 스프링캠프에 앞서 강정호 스쿨로 향해 올해 좋았던 감을 그대로 이을 계획이다. 1월 15일 출국해서 약 2주 동안 레슨을 받은 뒤 30일 애리조나 투손의 NC 스프링캠프로 합류하는 일정이다.
올해와 달리 내년에는 팀 동료 박세혁이 강정호 아카데미에 동행하기로 했다. 박세혁은 작년 11월 NC와 4년 최대 46억 원에 FA 계약했지만 88경기 타율 2할1푼1리 6홈런 32타점 슬럼프에 빠지며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다.
손아섭은 “원래는 박세혁, 김주원과 함께 셋이 가려고 했는데 얼마 전에 (김)주원이가 전화 와서 개인적인 일이 생겨 가기 힘들다고 했다. 그래서 (박)세혁이랑 둘이 가기로 했다”라며 “세혁이도 더 늦기 전에 마지막으로 발버둥을 치는 것 같다. 정호 형한테 배워보고 싶다고 해서 같이 가기로 했다. 나보다 세혁이가 더 빨리 출국한다”라고 설명했다.
강정호에게 SOS를 요청한 선수는 손아섭, 박세혁 뿐만이 아니다. 4년 115억 원 FA 계약 후 2년 동안 거포 본능을 잃은 두산 4번타자 김재환이 지난달 말 미국으로 출국해 강정호에게 수업을 받고 있다. 김재환은 “마무리캠프 때 느낀 부분을 12월과 1월에도 잘 기억한 상태에서 2월 스프링캠프에 합류하고 싶다”라며 강정호와 함께 재기를 노려보기로 했다.
강정호는 광주일고를 나와 2006년 신인드래프트서 현대 2차 1라운드 8순위 지명을 받았다. 히어로즈 시절이었던 2014년 117경기 타율 3할5푼6리 40홈런 117타점 103득점 활약에 힘입어 메이저리그 피츠버그 유니폼을 입었고, 2015년 15홈런, 2016년 21홈런을 때려내며 해적군단의 중심타자로 도약했다. 2019시즌을 끝으로 은퇴한 강정호의 메이저리그 통산 성적은 297경기 타율 2할5푼4리 46홈런 144타점 120득점 OPS .796다.
빼어난 실력과 별개로 강정호는 3차례의 음주운전이 적발된 중범죄자다. 2009년, 2011년에 이어 2016년 12월 단순 음주운전이 아닌 음주 뺑소니 사고를 내며 징역 8개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당시 음주 상태서 가드레일을 받고 호텔로 도주해 숨었고, 조사 과정에서 동승자가 자신이 운전했다고 거짓 진술을 했다. 법적, 윤리적으로 모두 치명타를 입은 사건이었다.
2022년 키움 히어로즈 복귀가 KBO의 불허로 무산된 강정호는 유니폼을 벗고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야구 아카데미를 차렸다. 이후 KBO리그 소속 1호 고객 손아섭이 강정호의 레슨으로 효과를 봤다는 소문이 퍼지며 아카데미에 시선이 쏠렸고, 이는 김재환, 박세혁이라는 새로운 고객 유치로 이어졌다. 강정호가 불명예 은퇴 이후 지도자로서 다시 KBO리그 팬들의 주목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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