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은 지명 순이 아니다. 17년 전 8라운드에서 뽑힌 무명 포수가 한국프로야구 안방마님의 새 역사를 썼으니 말이다.
두산 포수 양의지(36)는 지난 11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 오디토리움에서 열린 2023 신한은행 SOL KBO 골든글러브 시상식에서 포수 부문 골든글러브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총 291표 가운데 무려 214표(득표율 73.5%)의 지지를 받으며 LG 우승을 이끈 박동원(63표)을 제치고 황금장갑을 품에 안았다.
양의지는 개인 통산 9번째(2014, 2015, 2016, 2018, 2019, 2020, 2021, 2022, 2023) 골든글러브를 차지했다. 두산 이승엽 감독(10차례)에 이은 역대 최다 수상 2위다.
양의지는 포수 부문에서 통산 8번째 골든글러브를 수상하며 레전드 포수 김동수(7차례)를 제치고 포수 골든글러브 최다 수상자로 우뚝 섰다. 양의지는 만 36세 6개월 6일에 골든글러버가 되며 2021년 강민호(만 36세 3개월 22일)를 제치고 포수 골든글러브 최고령 수상자 타이틀까지 얻었다. 아울러 6년 연속 수상은 역대 최다 공동 2위다.
양의지는 수상 후 취재진과 만나 “최다 수상을 할 수 있게 첫 골든글러브 시상식 때부터 지금까지 투표해주신 관계자분들과 기자분들에게 감사 인사를 드린다. 그 다음 가족에게 감사하다고 말씀드리고 싶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양의지는 진흥고를 나와 2006년 신인드래프트에서 두산 2차 8라운드 59순위 지명된 무명 선수였다. 그러나 행복은 지명 순이 아니었다. 2010년 127경기에 출전하며 신인상을 차지하더니 내친 김에 포수왕국 두산의 주전 포수 자리를 꿰찼다. 이후 2015년부터 시작된 두산 왕조의 안방을 든든히 지켰고, 이에 힘입어 2019년 NC와 4년 총액 125억 원 FA 대박을 쳤다.
양의지는 NC에서도 강렬한 존재감을 뽐내며 공룡군단의 창단 첫 통합우승 주역으로 우뚝 섰다. 이후 2023시즌에 앞서 4+2년 152억 원 FA 계약이라는 또 한 번의 잭팟을 터트리며 친정 두산으로 복귀했고, 올해 노련한 투수 리드와 함께 129경기 타율 3할5리 17홈런 68타점 활약으로 대한민국 최고 포수 타이틀을 또 달았다.
8라운드로 입단해 김동수, 강민호를 넘어 이승엽을 넘보는 반전 스토리를 써낸 양의지. 그리고 이날 포수 골든글러브를 김동수로부터 받으며 의미를 더했다. 양의지는 “레전드 선배님한테 상을 받아서 너무 영광이다. 내가 2차 8라운드 지명 받으면서 1군 데뷔나 할 수 있을까 싶었는데 제일 큰 상을 8번이나 받았다. 부모님께 가장 많이 감사드린다”라고 감격했다.
이승엽을 넘본다는 평가에는 동의하지 않았다. 양의지는 “내가 이승엽 감독님께 비빌 레벨은 아닌 것 같다”라고 웃으며 “야구를 그만 둘 때까지 열심히 하는 게 우선이다. 은퇴할 때까지 열심히 하고 야구선수답게 마무리 잘했으면 좋겠다”라는 바람을 남겼다.
양의지는 끝으로 내년 시즌 FA 계약 2년차를 맞아 더 나은 활약을 약속했다. 그는 “올해 감독님과 코치님이 포수로 많이 내보내주셨는데 중간에 옆구리를 안 다쳤으면 더 많은 경기에 출전할 수 있었을 것”이라며 “내년에는 준비를 오래할 수 있어서 잘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긴다. 지금부터 잘 준비하고 있다. 지금까지 몇 년간 해왔던 시즌 중에 올해가 많이 떨어졌다. 더 노력해서 성적을 올리겠다”라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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