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성원들의 잇단 도덕적 해이로 또 다시 음주파문에 휩싸인 ‘국민스포츠’ 프로야구. 야구 선수들에게 역대 4번째 800만 관중 돌파를 이뤄낸 팬들은 안중에도 없는 것일까.
자타공인 대한민국 1등 프로스포츠 KBO리그는 2023시즌 누적 관중 810만326명을 기록했다. 경기당 평균 관중 1만1250명으로, 지난해보다 35% 대폭 증가한 수치를 보였다. 이는 2016, 2017, 2018시즌에 이은 역대 4번째 800만 관중 돌파였다.
2023 신한은행 SOL KBO리그는 개막에 앞서 대표팀의 WBC(월드베이스볼클래식) 1라운드 탈락 악재를 맞이하며 저조한 흥행이 예상됐다. 시즌 도중 김광현(SSG), 정철원(두산), 이용찬(NC) 등이 WBC 기간 일본 도쿄의 한 유흥주점에 출입해 음주를 한 사실까지 드러나며 국민적 공분을 사기도 했다.
그러나 인기 구단 LG 트윈스, 롯데 자이언츠가 약진하며 팬들을 다시 야구장으로 끌어 모았고, 시즌 막바지까지 역대급 순위 싸움이 전개되며 무려 5시즌 만에 800만 관중을 돌파했다. 프로야구가 일부 선수들의 일탈, 국제대회 부진, 코로나19 등 각종 악재를 딛고 국민스포츠의 위용을 되찾은 한해였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성공적인 시즌 종료 후 야구팬들이 접한 뉴스는 음주 운전이었다. 심지어 구단에 이를 은폐하며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고 했다. 1년 내내 아낌없는 응원을 보낸 팬들을 향해 감사 인사는커녕 물의를 일으키며 810만 관중이라는 대단한 성과의 의미를 퇴색시켰다.
시작은 2023 롯데 육성선수로 힘겹게 프로에 입성한 2000년생 내야수 배영빈이었다. 배영빈은 지난 10월 말 음주 운전으로 면허취소 처분을 받았지만 이를 구단에 알리지 않았다. 롯데는 11월 중순이 돼서야 배영빈이 만취 상태로 운전대를 잡은 사실을 알게 됐고, 방출 철퇴를 내렸다. 이와 별도로 KBO는 1년 실격 처분 및 미신고 부분에 대한 가중으로 사회 봉사활동 80시간 징계를 명령했다.
그로부터 불과 3주 뒤 배영빈과 흡사한 사건이 또 한 번 야구팬들을 실망시켰다. 두산 포수 유망주 박유연(25)이 3개월 전 음주 운전에 적발된 사실을 구단에 숨긴 게 뒤늦게 발각된 것.
본지 단독 보도에 따르면 박유연은 2023 KBO리그 정규시즌 순위싸움이 한창이던 지난 9월 말 음주 운전을 하다가 경찰에 적발됐다. 술을 마신 직후 운전대를 잡은 건 아니었다. 음주 이튿날 오전 차를 몰다가 경찰의 음주 단속에 걸려 숙취로 인한 면허정지 처분을 받았다.
더 큰 문제는 박유연이 음주 운전에 적발된 사실을 구단에 즉각 알리지 않았다는 점이다. 두산은 이번 주 한 익명 제보자의 연락을 통해 박유연의 음주 운전 적발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됐다. 두산은 박유연에게 연락을 취해 사실관계를 파악했고, 박유연이 이를 시인했다. 두산은 KBO 클린베이스볼센터에 신고 조처를 한 상태다.
동산고 출신의 박유연은 2017년 신인드래프트에서 두산 2차 6라운드 60순위로 프로의 꿈을 이뤘다. 데뷔 첫해 3경기 3타수 1안타를 남긴 뒤 현역 입대해 병역 의무를 이행했고, 커리어 내내 수비보다 타격에 강점이 있는 공격형 포수로 주목을 받았다.
박유연은 이승엽 감독의 부임 첫 스프링캠프에서 장승현, 안승한 등과 함께 제2의 포수 자리를 두고 경쟁했다. 그러나 기대만큼 기량이 올라오지 않아 이천 생활을 전전했고, 8월 첫 콜업 이후 10경기 타율 2할6푼7리 1타점으로 오름세를 타다가 무릎 부상을 당해 다시 2군행을 통보받았다. 박유연은 9월 초 좌측 무릎 수술을 받았는데 재활 과정에서 음주 운전이라는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저질렀다.
허구연 KBO 총재는 작년 3월 취임과 함께 "지난 몇 년간 우리는 팬들에게 희망과 즐거움을 주기보다 각종 사건, 사고, 국제대회 성적 부진 등으로 팬들을 실망시키고, 급기야 이탈시키는 빌미를 제공했던 점을 여러분도 잘 알고 있으리라 믿는다. 절대해서는 안 되는 4불(음주운전, 승부조작, 성 범죄, 약물복용)을 금지 사항으로 특별히 지켜주길 바란다. 일부 선수의 일탈이 야구계 전체에 엄청난 타격을 준다는 것을 우리는 뼈저리게 체험했다“라고 당부했다.
그러나 총재의 강력한 메시지에도 불미스러운 일이 끊이질 않고 있는 KBO리그다. 음주운전도 모자라 적발된 사실을 구단에 숨기는 일이 1년에 2건이나 발생했다. 일부 구성원들의 도덕적 해이가 부활한 야구 인기에 먹칠을 제대로 한 셈이다.
KBO리그의 음주 운전 처벌 규정은 면허정지 최초 적발은 70경기 출장 정지, 면허취소 최초 적발은 1년 실격 처분이다.
KBO 징계와 더불어 두산 구단은 박유연에게 음주 운전으로 팀의 품위를 실추시키고, 이를 보고하지 않은 것에 대한 책임을 다음주 초 징계위원회를 통해 물을 예정이다.
1군은 물론 교통편이 열악한 퓨처스리그 경기장까지 찾아 응원을 보낸 KBO리그 팬들을 무시한 선수가 어떤 결말을 맞이할지 주목된다. 재발 방지를 위해서라도 중징계가 요구되는 상황이다.
/backlight@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