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백종인 객원기자] LG 트윈스 고우석(25)에 대한 메이저리그의 포스팅 절차가 진행 중이다. MLB 사무국은 지난달 말 이 같은 내용을 30개 구단에 알렸고, 원하는 팀은 자유롭게 협상을 벌일 수 있다. 포스팅 기간은 공시일로부터 30일 이내로 제한된다. 봅 나이팅게일 기자는 5일(이하 한국시간) 고우석의 포스팅이 공시된다고 전했다.
이 절차는 MLB의 신분조회 요청에서 시작됐다. 당초 LG는 유보적인 입장이었다. 차명석 단장은 “구단주께서 결정할 사안”이라며 조심스러워했고, 결국 그룹의 재가를 얻어 포스팅을 허락했다.
와중에 등장한 것이 ‘조건부 허락’이라는 말이다. 구단은 포스팅 금액을 보고 최종 결정을 내리겠다는 의미다. 충분히 이해는 된다. 헐값으로 보내지는 않겠다는 뜻이다. 그렇다고 이적료 욕심을 부릴 구단은 아니다. 다만, 납득할 만한 계약이 뒷받침돼야 한다는 것으로 이해된다.
이 과정에서 주의 깊게 봐야 할 단어가 있다. 구단이 주체가 되는 ‘허락’ 혹은 ‘최종 결정’이라는 절차다. 과연 타당한 말인가를 따져봐야 한다.
결론부터 얘기하면 ‘그렇지 않다’다.
단순화해 보자. 앞으로 남은 것은 하나다. 만약 고우석이 메이저리그 팀과 합의하고, 계약을 맺으면 그걸로 끝이다. 이 과정에서 원 소속 팀 LG의 허락이나, 동의는 필요하지 않다. 당연히 거부할 권리도 없다.
무슨 얘기냐. LG의 의사는 이미 KBO를 통해 MLB에 제출한 포스팅 신청으로 완결됐다. 풀어서 얘기하면 ‘포스팅 요청’은 이런 의미다. ‘고우석이라는 선수를 MLB 구단에 유효하도록 만들어달라’는 요청, 혹은 의사 표현인 셈이다. 즉, ‘정해진 절차에 따라 이적료를 지불하고 데려가도 좋다’고 동의한 상태라는 뜻이다.
포스팅 금액을 보고 거부한다? 예전 얘기다. 지금은 그럴 수 없다.
한ㆍ미 선수계약 협정에 따른 포스팅 제도는 2018년에 1차 개정되며 크게 달라졌다. 미국측이 내세운 명분은 ‘(한국이나 일본의) 원소속 구단보다 선수의 이익을 우선하는 방식으로 개선한다’는 것이다. 즉, 본래 팀에 줘야 하는 포스팅비(이적료)를 줄이고, 대신 선수에게 더 좋은 조건을 제시하겠다는 말이다.
물론 속사정은 따로 있다. 마쓰자카와 다르빗슈 때 포스팅비가 5000만 달러(약 653억 원)를 넘겼다. 여기에 부담감을 느낀 ML 구단의 요구로 개정이 이뤄졌다고 봐야 한다. 이후 선수에 대한 계약액이 늘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한국과 일본 구단이 받아야 할 이적료가 크게 줄어든 것은 사실이다.
개정되면서 절차도 달라졌다. 예전에는 입찰 방식이었다. ML 30개 구단이 금액을 써내고, 최고가를 제시한 팀이 단독으로 협상권을 갖는다. 계약이 성사될 경우 입찰액은 원 소속팀에게 지불하는 이적료가 된다. 이를테면 소중한 자산인 선수를 내주는 대가로 받는 권리금인 셈이다.
이 과정에서 원 소속팀은 입찰액이 마음에 들지 않을 수 있다. 이럴 때는 수용을 거부할 수 있다. ‘그 정도 액수에는 내놓지 않겠다’는 의사 표현이다. 이상훈(1997년), 진필중, 임창용(이상 2002년), 양현종(2014년)의 케이스가 있다.
반면 개정된 협정에는 이런 절차가 빠졌다. 원소속팀은 포스팅 요청을 하는 것으로 의사 표현이 끝난다. 이후는 선수와 ML 구단간의 일만 남는다. KBO 구단은 협상 결과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할 수 없다. 이적료는 보장 연봉의 일정 비율로 결정된다. 거부하거나, 불복하는 일은 불가능하다.
한ㆍ미 선수계약 협정 11조는 이렇게 규정했다. ‘위에서 명시된 이적료와 관련하여 KBO 사무국이나 KBO 구단이 MLB 구단과 협상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
13조에는 이런 말도 있다. ‘KBO 사무국 또는 MLB 사무국이 MLB 구단과 KBO 구단·선수 간의 소통 협상 또는 거래에서 본 선수계약협정 위반 사항을 인지하게 된 경우 양 사무국은 즉각 그 사실을 상대 사무국에 통보해야 한다.’
즉, 이렇게 달라진 셈이다. 원소속팀이 갖는 권리 하나가 사라졌다.
2018년 개정 이전 = ① 신분조회 ② 포스팅 요청 ③ 비공개 입찰 (팀 선택) ④ 교섭 및 계약
2018년 개정 이후 = ① 신분조회 ② 포스팅 요청 ③ 교섭 및 계약
포스팅이 불발될 수도 있다. 응찰한 ML 팀이 없거나, 계약 협상이 결렬될 경우다. 원소속 팀에 의한 변수는 없다. 계약이 이뤄지고, MLB 사무국이 승인하면, 수용해야 한다는 뜻이다.
물론 규정은 규정일 뿐이다. 해석에 따라서 유연해질 수 있다. ‘거부’를 ‘설득’이라는 단어로 바꿔보자. 협상 내용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럼 트윈스는 거부하지 못하는 대신 고우석을 설득할 수 있다. ‘FA 이후에’ ‘2연패를 이루고’ 같은 달달한 명분도 있다.
전략적 대처도 가능하다. 이미 항간에 떠도는 얘기다. 감당할 수준이라면 ML가 제시한 대우에 준하는 다년 계약을 제안할 수도 있다. 어차피 1년 뒤 FA로 풀리면 준비해야 할 일이다. 조금 일찍 한다고 생각하면 그만이다.
그럼에도 마지막 변수는 있다. 고우석 본인의 의지다. 아직은 ‘반드시’라고 못 박지 않는다. “LG를 대표한다는 마음으로 부끄러운 계약으로는 가지 않겠다”는 마음을 밝힌 바 있다.
그러나 모를 일이다. ‘적당한 수준’이라는 것은 상대적인 개념이다. LG와 고우석의 기준이 다를 수 있다. 만약, 의견 차이가 생겼을 때. 고우석은 ‘그 정도면 도전해볼만 하다’고 생각하고, LG는 ‘조금 부족하다’고 느꼈을 때. 그 때는 묘하게 된다.
‘메이저리그 마운드에 서는 것은 평생의 꿈이다. 이번 기회에 꼭 이루고 싶다.’ 이런 말을 남기고 떠난 선수가 몇몇 있었다. 조금 아쉬운 계약에도 도전이라는 험한 길을 택했다. 만약 고우석도 그렇게 된다면. 의지를 관철시킨다면. LG로서는 현실적으로 막을 방법이 없는 셈이다. 협정이 그렇게 맺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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