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자 첫해 두산을 가을로 이끌고도 팬들의 야유를 받은 이승엽 감독이 ‘코리안 특급’ 박찬호의 ‘투머치토크’로 마음을 치유했다.
작년 창단 첫 9위 수모를 겪은 두산은 2023시즌 74승 2무 68패 5위에 오르며 2년 만에 포스트시즌을 치렀다. ‘국민타자’ 이승엽 감독의 부임, FA 최대어 양의지와 20승 에이스 라울 알칸타라 복귀 등 스토브리그를 알차게 보내며 1년 만에 9위 충격을 씻는 데 성공했다. 이승엽 감독은 지도자 경험 없이 두산 지휘봉을 잡고 첫해 포스트시즌 진출이라는 의미 있는 성과를 냈다.
다만 두산은 시즌 막바지까지 공동 3위 싸움을 하다가 5위로 떨어지며 와일드카드 결정전부터 포스트시즌을 출발했다. 작년 하위권에서 5위로 도약한 기쁨보다 지금보다 더 높은 순위도 가능했을 거라는 아쉬움이 컸다.
이에 일부 두산 팬들은 이 감독의 첫해 성과에 박수가 아닌 야유를 보냈다. 논란의 장면은 10월 16일 포스트시즌 출정식에서 발생했다. 잠실구장 전광판을 통해 2023시즌 결산 영상을 상영한 두산. 도입부에 ‘새 사령탑 이승엽 감독 취임’이라는 문구와 함께 이 감독의 작년 10월 취임식 영상이 송출됐고, 관중석에서 야유가 쏟아져 나왔다. 가을야구 진출의 기쁨을 만끽하는 포스트시즌 출정식에서 좀처럼 볼 수 없는 장면이었다.
최근 현장에서 만난 이 감독은 “충격을 안 받을 수 있나. 홈 관중한테 그런 야유를 받았고, 한 달 이상이 지났다. 잊을 순 없겠지만 팬들이 그만큼 아쉬웠을 것 같다는 생각이 당연히 든다”라며 “내가 많이 부족했는데 1년차라서 부족했다는 건 용납되지 않는다. 감독이 쉬운 자리가 아니다. 부족함을 느꼈고, 팬들이 그 부족함에 아쉬움을 느끼고 야유를 하신 걸로 판단된다. 이번 비시즌 더욱 철저하게 준비해서 내년에 야유가 나오지 않도록 열심히 해야 한다”라고 힘줘 말했다.
지도자 첫해를 맞아 가장 힘들게 느껴진 부분은 어느 분야에서나 그렇듯 사람의 마음을 헤아리는 일이었다. 이 감독은 “쉽지 않았다. 7~80명 이상의 사람들을 한마음으로 모으는 게 굉장히 힘들었다. 각자 성향과 성격이 너무나 다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기분이 좋지 않아 보이는 선수가 생기면 섣불리 다가가기 힘들었다”라며 “지금도 계속 배우고 있다. 사람 상대하는 게 가장 힘들다. 선수 때는 내 것만 하면 됐는데 감독은 그렇지 않다”라고 되돌아봤다.
두 번째는 패배였다. 이 감독은 “경기를 지면 불을 끄고 전화기를 덮어놓은 상태에서 생각을 했다. 전화기를 보면 기사도 찾게 되고 전화도 온다. TV는 하이라이트가 나와서 안 봤다. 그러다가 아침 드라마에 빠지기도 했다”라며 “해설위원 시절에는 위에서 야구가 잘 보였다. 선수 교체 타이밍이 굉장히 어려운데 위에서 봤을 때는 잘 보였다. 여기 들어와 보니 각종 변수를 미디어 쪽에 일일이 말씀 드릴 수 없었다. 감당하기 어려웠다”라고 털어놨다.
그런 이 감독의 마음을 달랜 이들 중 한 명이 ‘코리안 특급’ 박찬호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특별 고문이었다. 박찬호 고문과 일본프로야구 오릭스 버팔로스에서 한솥밥을 먹었던 이 감독은 “(박)찬호 형이 지도자를 안했을 뿐이지 인생에서는 굉장히 많은 경험을 했다”라며 “난 굉장히 힘들었다. 1경기 지면 ‘나 때문에 졌을까’, ‘내일 어떻게 이기지’ 등 많은 생각이 들었다. 그런 상황에서 찬호 형이 긍정적이고 진취적인 말을 많이 해줬다. 안 좋은 이야기는 안 하더라. 시즌 마치고 의기소침해 있었는데 찬호 형이 많이 힘을 줬다. 기분 좋으라고 하는 소리인 걸 아는데도 마음의 위안이 됐다”라고 감사를 표했다.
다사다난했던 지도자 첫 시즌을 마친 국민타자는 2년차 시즌 목표로 최소 3위를 설정했다. 이 감독은 “스토브리그를 보면 전력이 보강된 팀들이 많다. 내년이 정말 중요하다”라며 “올해 5위를 했으니 내년에는 최소 3위를 목표로 뛰어보겠다. 물론 우리 선수들은 우승을 목표로 할 수 있는 선수들이다”라고 말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LG(2023시즌 상대 전적 5승 11패), KT(5승 1무 10패), SSG(4승 1무 11패) 등 상위권 팀들을 상대로 많은 승수를 쌓아야 한다. 이 감독은 “올해 LG 상대로 너무 못했다. 힘을 써보지 못했다. 그밖에 상위권 팀들에게도 약했다. 하위권 팀들을 이겨서 5위를 했다”라며 “상위팀들과의 맞대결을 깨지 못하면 위로 올라갈 수 없다. 승부에서 지는 건 수치다. 그 수치를 올해 당해봤기에 내년에는 더 많이 웃을 수 있도록 상위팀과 싸워서 이기겠다”라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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