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봉의 수십 배 활약을 했다.”
최원호 한화 감독은 시즌 마지막 날 내야수 이도윤(27)을 이야기하며 “연봉이 3000만원보다 조금 더 받는 수준인데 100경기 넘게 나와 팀에 기여했다. 연봉 대비 기여도로 보면 최고가 아닐까 싶다. 연봉의 수십 배 활약을 했다. 이런 선수들이 잘했을 때 연봉을 많이 받아야 동기 부여도 되고, 주변에 희망이 된다”고 내년 연봉 상승도 기대했다.
올해 이도윤의 연봉은 3400만원에 불과했다. 최저 연봉 3000만원보다 조금 많은 박봉이다. 지난 2015년 입단한 프로 9년차이지만 지난해까지 1군 통산 152경기 출장에 그쳤다. 1군보다 2군에 머문 시간이 길었고, 연봉 상승 기회도 거의 없었다. 팀 내에서 4번째 유격수이자 내야 전천후 백업 멤버로 기대치가 높지 않았다.
하지만 올해 이도윤은 어렵게 찾아온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주전 유격수 하주석이 음주운전에 적발돼 70경기 출장정지 징계를 당했고, 먼저 주전 기회를 받은 유망주 박정현은 성장이 더뎠다. 베테랑 오선진이 유격수로 활약했지만 5월 중순 햄스트링 부상을 당하면서 수비가 어려웠고, 그 자리에 이도윤이 들어왔다.
5월20일 1군에 첫 콜업된 이도윤은 안정된 수비로 내야 중심을 잡았다. 타석 기회가 많아지자 방망이도 터지기 시작했다. 8~9번 하위 타선에서 알토란 같은 타격을 펼쳤다. 6월말부터 한화는 18년 만에 8연승을 달렸는데 그 중심에 이도윤이 있었다. 7월 중순 하주석이 징계 해제 후 1군에 돌아왔지만 주전 유격수 자리를 내주지 않은 이도윤은 시즌 끝까지 완주했다.
데뷔 후 가장 많은 106경기에 나서 타율 2할5푼2리(309타수 78안타) 1홈런 13타점 16득점 11도루를 기록했다. 9월2일까지 시즌 타율 2할9푼3리로 3할을 바라봤지만 이후 1할대(.173)에 그치며 시즌 막판 힘이 떨어졌다. 하지만 유격수 자리에서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이도윤의 활약이 없었더라면 한화의 탈꼴찌도 불가능했을 것이다.
시즌 후 일본 미야자키 마무리캠프까지 소화한 이도윤은 “올해 100경기 조금 넘게 나갔다. 아직 스스로 판단하기 쉽지 않은 한 해였다. 잘 될 때는 밑도 끝도 없이 잘 됐지만 안 될 때는 한 번에 확 고꾸라졌다. 잘 되고 있을 때도 ‘떨어지지 않을까’ 하는 불안함이 있었다. 시즌 후반 ‘수비라도 열심히 하자’는 마음으로 오히려 편하게 했다. 스스로 총평을 하자면 ‘아직 한참 멀었구나’였다”고 돌아봤다.
유격수는 수비가 가장 중요한 포지션. 유격수로 97경기(90선발) 746이닝 동안 실책이 8개에 불과했다. 수비율 97.8%로 500이닝 이상 소화한 유격수 10명 중 KT 김상수(98.6%)에 이어 2위였다. 기록으로 정확하게 평가가 쉽지 않은 게 수비인데 이도윤은 안정감은 물론 잡기 어려운 타구들도 잘 잡아냈다.
그는 “난 타격보다 수비에 강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수비 연습을 많이 했다. 여러 포지션을 소화해야 하니 남들보다 펑고도 많이 받았다. 코치님들도 어떤 상황이 일어났을 때 대응 방법에 대해 서가르쳐주셨다. 그걸 토대로 미리 생각하면서 연습을 하다 보니 실제 플레이도 생각한 것 이상으로 나왔다”고 설명했다.
5월 중순부터 1군 주전으로 계속 뛴 것도 처음 경험한 것이다. 그는 “시즌 막판에 지치긴 했지만 핑계라고 생각한다. 1군에서 많은 경기를 뛰어본 적이 없어서 안 좋을 때 대처 방법이 어려웠다. 베테랑 형들한테 많이 물어봤고, 안 좋을 때 어떤 운동을 하고 관리하는지 배웠다”며 “아직 내가 주전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시 경쟁해야 한다. 3년 풀로 나가기 전까지는 주전이 아니다. 내년에도 올해와 같은 마음으로 경쟁할 것이다”고 각오를 다졌다.
올해는 실전 감각 문제로 1군에서 어려움을 겪은 하주석이 내년에는 칼을 갈고 돌아온다. 이도윤도 밀릴 수 없다. 그는 “잠깐 반짝하는 선수가 아니라 계속 좋은 모습을 이어가고 싶다. 내년에는 모든 면에서 올해보다 더 잘해야 하지 않나 싶다. 1군에서 이렇게 야구한 건 1년밖에 안 됐지만 시즌이 끝나니 너무 아쉽더라. (노)시환이도 그렇게 야구를 잘했지만 아쉬워하더라. 시즌이 끝나면 아쉽지 않은 선수가 없다고 한다. 내년에는 그런 아쉬움이 덜한 시즌으로 만들고 싶다”고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