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는 26일 보류선수 명단 제외 소식을 전했다. 재일교포 안권수, 손아섭의 FA 보상선수 문경찬, 외야수 박형준, 육성선수 투수 정대혁 외야수 엄태호를 보호선수 명단에서 제외한다고 발표했다.
관심이 쏠린 선수는 단연 안권수다. 안권수는 와세다대학을 나와 일본 독립리그에서 활약했다. 할아버지의 나라에서 뛰고 싶었던 일념 하나로 대한해협을 건넜다. 트라이아웃을 거쳐서 2020년 KBO리그 신인드래프트에서 두산에 2차 10라운드로 지명을 받았다. 그러나 재일교포 신분으로 두산의 지명을 받은 순간부터 시한부 선수 생활을 할 수밖에 없었다.
현행 병역법상, 재외교포는 한국 거주(체류) 기간이 3년 이상이 되면 재외국민 자격이 상실, 국외 이주자로 분류됐다. 안권수는 병역 의무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 한국에서의 영리 활동이 제한된다.
2020년 두산에 입단한 뒤 3년 간 231경기 타율 2할8푼6리(318타수 91안타) 27타점 80득점 8도루 OPS .677의 기록을 남겼다. 지난해는 76경기 타율 2할9푼7리(239타수 71안타) 20타점 43득점 OPS .711로 활약했다. 정수빈의 부진 공백을 충실히 채웠다. 시즌 초반 맹렬했던 페이스는 중후반으로 갈수록 떨어졌지만 두산은 안권수를 보류선수 명단에서 제외했다. 세대교체가 필요했던 순간이기도 했고 안권수의 병역법이 걸렸다. 병역법상 3년이 다 되어가는 시점이었기에 방출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안권수의 에너지가 두산 선수단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끼쳤기에 아쉬움은 짙었다.
이때 롯데가 손을 내밀었다. 안권수의 일본 체류 기간을 더하면 1시즌 정도는 더 활약할 수 있다는 계산이 섰다. 일본으로 돌아가서 야구와 관련이 없는 일을 하려고 했던 안권수도 선수 생활에 아직 미련이 남았고 롯데에서 1년을 불태우려고 했다.
실제로 안권수는 롯데에서 모든 에너지를 쏟았다. 덕아웃의 분위기 메이커였다. 안권수의 에너지가 롯데에 스며들면서 선수단에는 활력이 돌았다. 실제로도 안권수는 잘했다. 안권수가 리드오프로 공격 첨병 역할을 하자 타선이 원활하게 돌아갔다. 4월 한 달 동안 22경기 타율 3할1푼8리(85타수 27안타) 2홈런 12타점 10득점 OPS .815로 활약했다.
이 즈음부터 안권수의 시한부 야구인생 연장에 관련된 얘기가 구단 내부에서도 논의가 됐다. 그만큼 안권수를 1년 만 쓰고 내보내기에는 아까울 정도였다. 그러나 안권수의 병역 문제 해결이 선결 조건이었다. 다년 계약으로 안권수의 신분을 보장하고 병역 문제를 해결하는 방향으로 내부적으로 논의가 됐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5월부터 우측 팔꿈치 뼛조각 통증으로 경기를 치르는 게 쉽지 않았다. 4월의 기세는 급격하게 떨어졌다. 결국 6월 팔꿈치 뼛조각 제거 수술을 받았다. 항저우 아시안게임 대표팀 발탁도 물건너 갔다. 예상 복귀 시점은 시즌 막바지인 9월.
괴물 같은 재활 페이스로 1달 가량 빠른 8월에 복귀했다. 구단은 안권수의 존재가 아쉬웠기에 100% 회복이 되지 않은 상태에서 이른 복귀를 추진했다. 물론 안권수도 한국에서 마지막 시즌이 될 수 있는 상황에서 시간을 그대로 허비하는 게 싫었다.
안권수의 팔꿈치는 뒤늦게 회복이 됐지만 시즌은 끝나가고 있었다. 안권수는 95경기 타율 2할6푼9리(268타수 72안타) 2홈런 29타점 42득점 16도루 OPS .662의 성적으로 올 시즌을 마무리 했다.
안권수도 롯데도 이별을 원치 않았다. 안권수는 사직 홈 최종전에서 1년 동안 롯데 팬들이 보내준 응원에 감사 인사를 건넸다. 행복함, 아쉬움이 뒤섞인 감정 속에서 눈물을 흘렸다. 올해 1군에 자리 잡은 윤동희 김민석과는 함께 숙소를 쓰면서 기술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멘토 역할을 했다. ‘큰 형’의 존재감으로 윤동희와 김민석의 성장에 적지 않은 기여를 했다. 안권수의 홈 최종전에서 김민석은 안권수 못지 않게 눈물을 흘린 바 있다.
한 매체의 보도에 의해 안권수가 병역 해결을 위해 신체검사를 받는다고 알려졌다. 안권수가 병역을 해결하고 한국 국적을 취득한 뒤 선수 생활을 이어가는 방안을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다는 방증이었다. 그러나 현실적인 여건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안권수의 가족들은 일본에 머물고 있다. 시즌 중에도 가족들이 머물고 있는 일본에 잠시 다녀오곤 했다. 만약 안권수가 한국 국적을 취득한다면 병역 해결을 위해 1년 6개월 가량을 생이별을 해야 하는데, 이는 혼자서 결정할 수 없는 문제다.
안권수도 정규시즌 홈 최종전을 앞두고 "일본에서 야구를 더 할 생각은 없다. 한국에서 야구를 더 하려면 군대를 가야 한다"라고 말하면서도 "9월 초부터 통증이 없어졌다. 이제 좀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한 번만 기회를 주면 다시 보여줄 수 있을 것 같다. 시즌이 다 끝나가니까 아쉽기도 하다. 또 야구를 계속하고 싶다는 생각도 있다"라고 고민하고 있던 속내를 말하기도 했다.
자신을 제외한 가족들은 모두 일본에 머물고 있는 안권수에게는 현실적인 선택지가 거의 없었다. 그는 "혼자라면 또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가족들이 있다"라며 "시즌이 끝나고 또 가족들과 상의도 해봐야 할 것 같다"라고 했다.
결국 안권수는 한국에서 선수 생활을 이어가는 게 쉽지 않다고 판단했다. 롯데도 보류선수 명단에서 제외하는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다. 안권수가 다시 현역 의지를 갖고 KBO리그 다른 구단에서 활약하기 위해서는 병역 문제부터 해결해야 한다. 현실 앞에서 ‘낭만’은 없었다. /jhrae@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