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려 23년간 몸담은 팀을 강제로 떠나야 했다. 선수 생활 말년에 가혹한 상황을 맞이했지만 김강민(41)이 결심을 하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충격의 2차 드래프트 지명 이후 이틀 만에 큰 결심을 했다.
김강민은 지난 24일 대전 한화생명이글스파크에 위치한 한화 구단 사무실을 찾았다. 밤잠을 이루지 못한 듯 꽤나 초췌한 얼굴이었다고 한다. 이 자리에서 손혁 한화 단장을 만난 김강민은 1시간30분가량 대화를 나눈 뒤 선수 생활을 지속하기로 결정했다. 한화는 25일 KBO에 제출할 보류선수 명단에 김강민을 포함시킨다. 이제부터 공식적으로 ‘한화 김강민’이다.
김강민에겐 그야말로 믿기지 않는 충격의 나날이었다. 지난 22일 오후 2시30분을 넘어 KBO 2차 드래프트 결과가 나왔고, 4라운드 전체 22순위로 맨 마지막에 김강민이 한화 지명을 받았다. SSG는 김강민을 35인 보호선수 명단에 넣지 않았고, 별도의 보호 장치도 마련하지 않았다. 안일한 일 처리로 KBO리그 역대 최장 23년 원클럽맨을 한순간에 잃었다.
김강민에겐 결정해야 할 시간이 너무 빠듯했다. 25일까지 은퇴를 선언해야 SSG 소속으로 선수 생활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SSG에서도 상황을 수습하기 위해 뒤늦게 발 벗고 나섰다. 23일 김강민을 만나 은퇴 결정시 충분한 예우를 갖추기로 제안했다. 여러 가지로 머릿속이 복잡했을 김강민이었지만 시간을 오래 끌지 않았다. 애초부터 현역 연장 의지가 있었고, ‘짐승’이란 별명대로 마음 속 본능을 거부하지 않았다.
한화에서도 김강민을 진심으로 원했다. 손혁 단장이 24일 자정 김강민에게 전화를 걸었다. 지명 직후에는 일부러 연락을 하지 않았다. 충격 받았을 김강민이 충분히 생각하고 정리할 시간을 주기 위해 배려를 한 것이었다. 은퇴 결정의 마감시한과 같았던 25일이 다가오면서 늦지 않게 교감을 나눠야 했다.
늦은 밤이었지만 손 단장은 김강민에게 직접 왜 지명을 했는지 차근차근 설명했고, 인천으로 올라가 직접 만나겠다는 의사를 전했다. 마침 24일 고향 대구에 볼 일이 있었던 김강민이 내려가는 길에 대전을 들르기로 했다. 이날 오후 한화 구단 사무실을 찾았고, 일사천리로 현역 연장 및 보류선수 명단 포함에 합의했다. 한화 관계자는 “대전에 올 때부터 이미 결심을 하고 온 것 같다. 그렇지 않았으면 설득하는데 더 오랜 시간이 걸렸을 것이다”며 김강민이 밤 사이에 결심을 굳힌 것으로 봤다. 손 단장뿐만 아니라 박찬혁 대표이사까지 사무실을 찾은 김강민을 환대하며 마음을 사로잡았다.
단 이틀 만에 23년 세월이 쌓인 ‘원클럽맨’ 영예를 포기하는 게 말처럼 쉽진 않았을 것이다. 은퇴라는 선택지도 있었지만 김강민은 새로운 팀에서 24번째 시즌을 결심했다. 자신의 가치를 알아보고 인정해준 팀을 위해 고심 끝에 마지막 불꽃을 태우기로 했다. 내년이면 42세가 되는 리그 최고령 선수이지만 현역으로서 아직 경쟁력을 잃지 않았고, 자신감도 충분히 있기에 가능한 결정이다.
김강민은 한화 구단을 통해 ‘사랑하는 팬 여러분’이라는 제목하에 짧은 글을 전했다. “23년 동안 원클럽맨으로 야구를 하며 많이 행복했습니다. 신세만 지고 떠나는 것 같아 죄송한 마음입니다. 보내주신 조건없는 사랑과 소중한 추억들을 잘 간직하며 새로운 팀에서 다시 힘을 내보려 합니다. 그동안 정말 감사했습니다”라고 절절한 마음을 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