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백종인 객원기자] 참 기이한 일이다. 어찌 보면 그렇다. 은퇴한 야구 선수가 여고생들을 상대로 온 힘을 짜낸다. 현역 때보다도 더 혼신을 다하는 모습이다. 그 결과 완봉승을 거뒀다. 9이닝 동안 안타 5개를 맞고, 삼진은 9개를 빼냈다. 무려 116개를 던지며, 최고 구속은 138㎞를 찍었다. (22일, 일본 도쿄돔)
처음이 아니다. 벌써 3년째 연례행사다. 첫해(2021년)는 9이닝 무실점, 이듬해는 9이닝 1실점이었다. 교체는 없다. 모두 끝까지 던졌다. 3연속 완투승인 셈이다. 각각 147개, 131개의 공을 던져야 했다. 얼마 전에 50세가 된, 살아있는 전설 스즈키 이치로의 기행(?)이다.
모자를 벗으면 반백의 머리가 드러난다. 굳이 여고생들을 상대로 이런 게임을 하는 게 얼핏 납득하기 어렵다. ‘손목 비틀기’ ‘무자비’ 같은 수식어도 등장한다. 무려 도쿄돔을 빌려서, 공중파로 전국에 TV 생중계를 하면서.
도대체 왜 이러는 걸까. 무슨 의미가 있는 걸까. 자신의 건재를 과시하기 위해서? 여자 야구의 붐 업을 위해서?
이 질문에 답을 얻기 위해서는 조금 멀리 돌아봐야 한다. 어쩌면 뜬금없을지 모를 얘기부터 시작해야 한다.
45년 동안 경주로 수학여행 온 일본의 어느 고등학교
벌써 14년이나 된 일이다. 2009년 봄이었다. 서울 롯데 호텔에서 조촐한 환영 만찬이 열렸다. 검은 정장 차림의 주빈은 감개무량한 표정이다. 그런데 조금 이상하다. 건강한 모습은 아니다. 휠체어를 타고 있다. 산소 호흡기도 달았다.
“며칠 전까지 폐렴으로 사경을 헤매면서도 한국에는 꼭 가야 한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지금 이 자리는 35년간 꿈꿔왔던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건강을 되찾아 한국에 올 수 있게 돼 눈물이 날 정도로 기쁩니다.”
그의 이름은 후지타 테루키요. 일본 간사이 지역에서 학교 몇 개를 운영하는 재단의 이사장이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소회를 이어간다.
“소학교(초등학교) 5학년 때 선생님이 처음 한국이라는 나라에 대해 가르침을 주셨습니다. 우리 일본의 원류이며, 형님과도 같은 훌륭한 나라라고 알려주셨습니다. 그 선생님이 아니었다면 올바른 역사를 알지 못했을 겁니다. 일본이 똑같은 잘못을 저지르지 않기 위해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이 교육자의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치벤(智辯) 학원. 그가 1964년 설립한 사학 재단이다. 와카야마, 나라 등 지역에서 8개 초중고교를 운영한다. 이곳 고교생들은 매년 수학여행을 한국으로 온다. 1975년부터 계속된 일이다.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다. 한일 관계가 심각한 갈등을 겪었을 때, 북한의 미사일 발사로 위기감이 고조됐을 때…. 학부모들의 반대가 빗발쳤다. 그래도 설득하고, 또 설득해서 강행했다. 코로나 팬데믹 때까지 45년간 멈추지 않았다. 2만 명 넘는 일본 고교생이 서울과 경주를 다녀갔다.
“일본의 한국 식민지 통치 35년을 속죄하는 마음으로, 일본 문화의 원류는 신라와 백제라는 것을 가르치기 위해.” 이사장의 뜻은 변함이 없었다. 그가 타계한 뒤에도, 2대 이사장에 취임한 아들(후지타 기요시)이 선친의 유지를 받들었다.
은퇴를 고민하던 이치로가 감동한 장면
5년 전(2018년) 11월이다. 이치로(당시 45세)가 생각이 많을 때였다. 현역 속행과 은퇴의 갈림길에서 고민하던 시기다. 그래도 훈련은 멈추지 않는다. 연고지(고베, 오릭스) 인근에서 한참 땀을 흘릴 때다. 바로 옆 그라운드에 함성이 가득하다. 고시엔(고교야구) 대회 지역 예선이 벌어지고 있었다.
얼핏 전광판이 보인다. 스코어가 형편없다. 12-0이다. ‘저런, 콜드게임인가?’ 짐작은 틀리지 않았다. 5회를 넘기기 어렵다. 이제 아웃 1~2개면 끝이다.
그때였다. 그의 눈과 귀가 한 곳을 향한다. 외야 스탠드에 있는 패한 팀의 응원단이다. 수백 명의 재학생과 밴드, 치어리더들의 모습이다. 1회와 똑같은 모습이다.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다. 패배 따위는 개의치 않는다. 열정을 다해 박수치고, 목이 터져라 외친다. 마지막 아웃 카운트까지 선수들과 함께했다.
바로 그 학교였다. 남다른 전통과 교육 철학을 가진 (와카야마) 치벤 학원의 전교생이다.
은퇴를 앞둔 전설은 큰 깨달음을 얻었다. 자신만의 야구팀을 결성한다. 주변 인물들을 불러 모았다. 트레이너, 통역, 지인들이다. 팀 이름은 ‘고베 치벤’으로 정했다. 하지만 ‘치벤’의 한자 표기는 감히 결례라고 생각했다. 가급적 영어(CHIBEN)로만 부르기로 했다.
1년 뒤. 와카야마 치벤 학원에 도전장을 냈다. 자신에게 큰 감명을 줬던 그 학교다. 그곳 교직원으로 구성된 팀과 일전이 벌어졌다. 이치로의 팀 ‘고베 치벤’의 첫 번째 공식 경기였다. 결과는 뻔하다. 14-0의 대승으로 끝났다. 이때도 선발 투수 이치로는 완투했다. 9회까지 16K를 잡아냈다.
이치로 “WBC 이후로 처음 느껴보는 긴장감”
이듬해부터 상대가 바뀐다. 여자 고교 선발팀이 파트너다. 그리고 3년째 이어진다.
적당히 즐기는 것? 그런 것 없다. 나이가 벌써 50줄 아닌가. 한계 투구수를 넘어서면 온몸에 통증이 찾아온다. 종아리, 허벅지, 허리, 어깨, 팔꿈치. 안 아픈 곳이 없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는다. 주저 앉았다가 일어나서 또 던진다. 절뚝거리면서도 마운드에 오른다.
이벤트의 창설자이자 고베 치벤의 구단주, 감독 겸 코치, 에이스 투수인 이치로의 소감이다.
“매번 느끼는 긴장감은 상상 이상입니다. 아마도 WBC 이후로는 처음인 것 같군요. 선수 때도 잘 못 겪어본 감정이에요. 내 자신의 한계를 느끼며 플레이합니다. 무척 의미 있는 시간입니다.”
그런 투수를 상대해 본 타자들의 감회도 남다르다. 와카야마 치벤 학원의 이사장, 그러니까 한국에 대한 사죄를 강조한 초대 이사장의 아들 후지타 기요시의 얘기다. 자신도 14-0으로 패한 경기의 지명타자로 출전했다.
“이치로 상의 공은 내가 칠 수 있는 게 아니죠. 경기를 했다는 것만으로도 영광이죠. 무엇보다 감사한 것은 끝까지 전력을 다해 우리를 상대해 준다는 점입니다.”
여고 선발팀의 나카지마 리사 감독도 비슷한 말을 한다. “이치로 선생께서 온 힘을 다해 던져주셨습니다. 정말 감사한 일입니다. 이런 귀중한 경험은 우리 선수들에게 큰 힘이 될 것입니다.”
일본은 쿠사야큐(草野球)라고 부른다. 동네야구, 풀뿌리야구 정도의 의미일 것이다.
열심히 준비하는 것. 최선을 다하는 것. 그라운드에 서면 모든 것을 다 바치는 것. 그것이 상대에 대한 존중이라는 것. 그가 평생을 해 온 일이다. 그걸 풀뿌리부터 지켜야 한다는 것. 그것이 그의 메시지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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