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많은 관중 앞에서 던지고 쳐본 적이 없었다. 평균 연령 22세의 젊은 선수들로 구성된 2023 아시아프로야구챔피언십(APBC) 야구대표팀 선수들에게 4만명 넘는 도쿄돔 대관중 앞에서 결승은 잊을 수 없는 무대였다.
지난 19일 일본 도쿄돔에서 치러진 APBC 결승 한일전. 이날 입장 관중은 무려 4만1883명으로 도쿄돔을 가득 메웠다. 지난 3월10일 같은 장소에서 치러진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1라운드 한일전(4만1629명)보다 더 많은 관중들이 찾아 한일 양국 유망주들의 열전을 지켜봤다.
대관중 앞에서 명승부가 펼쳐졌다. 9회 정규이닝까지 2-2로 승부를 가리지 못하면서 연장 10회 승부치기로 넘어갔다. 10회초 한국이 1점을 먼저 냈지만 10회말 2점을 허용하며 일본의 4-3 끝내기 역전승으로 마무리됐지만 한국 선수들도 충분히 잘 싸웠다. 류중일 한국대표팀 감독도 경기 후 “역전패는 아쉽지만 양 팀 모두 경기 내용이 정말 좋았다. 선수들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다”고 칭찬했다.
4만명이 넘는 대관중 속에 선수들의 아드레날린도 분출했다. 8회 1사 1,2루 위기에서 구원등판해 실점 없이 막고 포효한 좌완 투수 최지민(KIA)은 경기 후 “잠실 만원 관중(2만3750명)도 경험했지만 4만명 이상 관중 앞에서 야구하는 건 처음이었다. 해볼 수 없었던 색다른 경험이다. 많이 즐거웠다”며 “올해 마지막 경기를 재미있게 끝낼 수 있어 좋았다. 아시안게임부터 이번 대회까지 좋은 성적 내면서 자신감도 차고, 앞으로가 더욱 기대된다”고 자시감을 보였다.
3회 2타점 2루타로 기선 제압을 이끌며 2안타 멀티히트로 활약한 4번타자 노시환(한화)도 “관중 분들이 많아서 재미있었다. 4만 관중 앞에서 하니까 긴장감도 있고, 그 속에서 즐거움이 있었다. 경기 내용도 박빙이었고, 너무 좋은 경험을 했다”며 “올해 항저우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따내고, 이번 대회도 나와서 재미있게 했다. 야구 인생에서 제일 기억에 남는 시즌일 것이다. 이를 바탕으로 더 성장하겠다. 내년에 더 잘하기 위해 준비를 잘해야 한다”고 말했다.
연장 10회말 승부치기에서 2실점하며 끝내기를 허용한 마무리투수 정해영(KIA)에게도 잊지 못할 승부였다. 그는 “마무리를 잘 못했다. 계속 생각이 날 것 같다. 너무 아쉽다”며 4만 관중이 일본을 일방적으로 응원한 것에 대해선 “한국 팬들도 많이 와주셔서 큰 힘이 됐다. 오히려 더 이겨보고 싶어 집중을 했는데 결과가 아쉽게 됐다. 일본 선수들이 진짜 잘하더라. 우리가 더 많이 발전해야 할 것 같다. 우리가 지금보다 더 잘하는 수밖에 없다”고 이야기했다.
이번 대표팀 유일한 와일드카드로 최고참(26세) 선수였던 외야수 최지훈(SSG)도 “힘들지만 눈물은 안 나온다. 선수들 모두 최선을 다한 만큼 후회는 없다. 어린 선수들을 보면서 굉장히 부러우면서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큰 대회가 처음일 텐데 주눅들지 않고 잘해줘서 고맙고 미안했다”고 말했다.
이어 최지훈은 “경기는 졌지만 자신감을 얻고 끝낼 수 있었다. 3월 WBC 때는 몸이 안 올라왔는데 지금은 우리도 일본도 몸이 올라온 상태에서 붙었다. 대표팀에 처음 온 선수들도 있었는데 많은 관중 앞에서 자기 플레이한 게 대단하다”며 대관중 앞에서도 떨지 않고 활약한 후배들을 치켜세웠다.
항저우 아시안게임부터 본격적인 세대 교체에 나선 대표팀에도 이번 APBC가 아주 큰 성장 발판이 될 듯하다. 류중일 감독도 “한일 야구 격차가 벌어졌다고 생각했는데 이번 대회를 계기로 조금만 더 열심히 하고, 기본만 지킨다면 대등한 경쟁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투수와 타자들 모두 한 단계 성숙된 대회였다. 프리미어12 대회가 내년에 있는데 여기 있는 선수들이 거의 다 나올 것 같다”고 다음을 기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