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8일 KBO가 공시한 2024년 FA 신청 선수 19명 중 가장 눈길을 끈 선수는 ‘한국시리즈 MVP’ 오지환(33)이었다. 오지환은 지난 1월19일 소속팀 LG와 6년 최대 124억원에 다년 계약한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에 이번 FA 신청에 많은 팬들이 의아함을 표했다.
1월19일에 LG는 구단 최초 다년 계약이라며 오지환과 계약 소식을 알렸다. 오는 2024년부터 2029년까지 계약 기간 6년에 보장액 100억원, 옵션 24억원으로 구체적인 조건도 명시했다. 그러면서 ‘합의’라는 표현을 썼다.
오지환은 앞서 2019년 12월20일 LG와 4년 총액 40억원(계약금 16억원, 연봉 6억원) 조건으로 1차 FA 계약을 했다. 올해는 4년 계약의 마지막 해였고, 새로운 6년 계약은 내년부터 적용되는 것이었다. 문자 그대로 ‘합의’ 수준으로 정식 계약서가 KBO에 넘어오지 않았다.
KBO 관계자는 “오지환의 계약서가 KBO에 안 들어왔고, 당연히 계약이 공시된 것도 없다”고 밝혔다. 현재로선 LG와 오지환 양측이 합의한 것이 전부. KBO에 계약서가 전달된 뒤 총재의 승인과 공시 과정을 거치지 않았기 때문에 1월19일 발표된 LG와 오지환의 다년 계약은 효력이 없는 상황이다.
규정상 비FA 다년 계약 선수들도 FA 자격 선수로 공시는 됐지만 어디까지나 형식적인 절차였다. FA를 1년 앞두고 장기 계약을 맺은 선수로 박종훈, 문승원, 한유섬(이상 SSG), 구자욱(삼성), 박세웅(롯데), 김태군(KIA) 등이 있는데 이들은 FA 자격을 얻은 뒤 신청하지 않고 자격만 유지했다.
하지만 오지환이 이번에 처음으로 FA 신청을 하면서 이전에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시도를 했다. 당초 비FA 다년 계약으로 알려졌고, 발표도 나왔지만 FA 자격 신청과 함께 6년 124억원의 조건이 다년 계약이 아니라 FA 계약으로 바뀌게 됐다. 선수와 구단이 약속대로 동일한 조건에 FA 계약을 맺으면 KBO 규약상으로 문제될 게 없다.
오지환의 FA 신청은 4년 만에 부활한 KBO 2차 드래프트를 대비한 것이다. 오는 22일 개최되는 2차 드래프트에서 각 구단은 35명의 선수들을 보호 명단에 넣을 수 있는데 입단 1~3년차 선수들과 당해 연도 FA 신청 선수들은 자동으로 제외된다. 오지환이 다년 계약 신분이었다면 필요시 보호선수 명단에 포함해야 한다. 오지환의 FA 신청으로 선수층이 두꺼운 LG는 1명의 선수라도 더 보호해 전력 유출을 막을 수 있게 됐다. 외부 FA 영입시에도 20인 또는 25인 보호선수 명단에 1명의 여유가 생긴다.
LG 입장에선 가능한 규정 내에서 구단 이익을 위해 최선의 결정을 했다. 2차 드래프트가 부활한 시기는 지난 7월12일 3차 이사회 때였고, 오지환과 다년 계약 합의는 6개월 전이었다. 시기상으로도 잘 맞아떨어졌다. 복잡하고 보기 드문 과정이긴 하지만 구단과 선수 사이에 두터운 신뢰가 있기에 가능한 시도이기도 하다. 오지환의 케이스와는 조금 다르지만 2차 드래프트가 있거나 외부 FA 영입이 필요한 해에는 구단과 어느 정도 교감한 뒤 선수가 전략적으로 FA 신청을 하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다만 이를 바라보는 시선이 좋지만은 않다. 이 같은 케이스가 반복되면 리그에 혼동을 줄 수 있고, 질서가 깨질 수 있다. 가능성은 낮지만 다년 계약 합의 선수를 다른 팀에서 기존 팀과 계약을 파기시키며 빼갈 수도 있다. 다년 계약 선수가 FA 신청을 해서 FA 등급을 계산하는 연봉 계산에 포함되지 않으면 팀 내 예비 FA 선수들의 등급이 높아져 구단이 악용할 소지도 있다. 다년 계약이 KBO리그에 본격적으로 허용된 뒤 2년밖에 지나지 않았고, 빈틈이 드러난 규정에는 손질이 필요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