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틀 만에 다시 성사된 아시아프로야구챔피언십(APBC) 한일전. 한국이 아껴놓은 대회 마지막 날 선발투수는 우완 곽빈(24·두산)이다. 이번 대회를 앞두고 문동주(한화), 이의리(KIA), 원태인(삼성), 곽빈 등 4명의 선발투수 카드를 준비한 류중일 한국대표팀 감독은 순서를 놓고 고민한 끝에 곽빈을 결승전 또는 3~4위 결정전이 될 마지막 날에 배치했다.
류중일 감독은 지난 18일 예선 마지막 경기 대만전을 앞두고 “사실 어제(17일) 일본전 선발로 곽빈과 이의리를 놓고 고민 많이 했는데 이의리를 먼저 내고, 마지막에 곽빈을 쓰기로 했다. 오늘 대만전을 이겨야 곽빈이 내일 일본 상대로 던질 수 있다”며 “우리나라 우완 에이스로 문동주도 있지만 곽빈도 좋다. 최고 우완이다”는 표현으로 기대를 표했다.
고교 시절 학교폭력 문제로 태극마크를 달 수 없는 안우진(키움)을 제외하면 국내 우완 선발 중 곽빈이 첫 손가락에 꼽힐 만하다. 5~6월 허리 통증으로 두 차례 1군 엔트리에서 빠져 규정이닝을 넘기지 못했지만 올 시즌 23경기(127⅓이닝) 12승7패 평균자책점 2.90 탈삼진 106개로 활약했다. 80이닝 이상 던진 투수 46명 중 평균자책점 10위로 국내 우완 정통파 중에선 안우진(2.39) 다음 가는 기록이다.
KBO리그 국내 투수 최초로 160km 강속구를 뿌린 2년차 파이어볼러 문동주가 항저우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이끌며 급성장했지만 현재 투수로서 완성도나 안정성을 보면 곽빈을 조금 더 우위로 볼 수 있다. 문동주(150.9km) 만큼 빠르진 않지만 평균 147.1km 직구에 슬라이더, 커브, 체인지업을 고르게 구사하는 곽빈은 제구도 어느 정도 안정된 지난해부터 리그 톱클래스 선발로 올라섰다.
올해 3월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을 통해 첫 성인 국가대표팀에 발탁된 곽빈은 2경기 2이닝 4피안타 3탈삼진 3실점으로 부진했다. 이어 항저우 아시안게임에 발탁돼 에이스로 기대를 모았으나 대회 기간 어깨 담 증세가 회복되지 않으면서 등판하지 못했다. 대표팀 선수 중 유일한 미출장 선수로 마음고생했다.
하지만 이번 APBC에서 만회할 기회가 왔다. 가장 중요한 승부가 된 결승전 일본 상대로 강렬한 인상을 심어줄 기회다. 결승 진출 확정 후 류중일 감독은 공식 인터뷰에서 곽빈을 선발로 예고하며 “우리나라 우완 에이스 투수라고 생각한다. 아시안게임에선 어깨 뭉침으로 공을 1개도 못 던졌지만 내일(19일) 결승전에서 좋은 투구를 하길 바란다”고 기대하며 “빠른 볼을 갖고 있지만 변화구 제구가 얼마나 되는지 봐야할 것 같다”고 말했다.
곽빈에게선 부담감과 설렘이 교차했다. 그는 “팀 분위기가 좋다. 많이 부담이 되긴 하지만 그 또한 내가 이겨내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결과가 어떻게 되든 최선을 다해 던질 생각이다”며 “여기 와서 불펜피칭을 했을 때 컨디션이 정말 좋았다. 느낌이 좋았지만 경기는 별개다. 해봐야 안다”고 말했다.
예선에서 일본에 1-2로 아깝게 패한 한국은 결승전에서 리턴 매치에 대한 의욕을 불태웠다. 18일 대만을 6-1로 꺾으면서 설욕 기회를 잡았다. 곽빈은 “어깨에 짐이 많이 무거운 것 같다”며 웃은 뒤 “혼자 잘한다고 이기는 것은 아니다. 아시안게임에서 다들 좋은 경험했고, 그 기운을 믿고 다시 잘해서 우승했으면 좋겠다”고 기대했다.
일본 타자들에 대한 분석도 했다. 그는 “분석표를 계속 보고 있는데 확실히 잘한다. 1번부터 9번까지 다 잘 치더라”고 인정하면서도 “나의 한계에 부딪쳐보고 싶다. 안 되면 다시 열심히 해서 도전할 수 있고, 잘되면 그 좋은 기억을 갖고 더 열심히 하면 된다. WBC에선 그렇게 잘 던지지 못했다. 이번에는 나도 잘 던져 국제무대에서 통하는 선수로 다른 나라에서도 인정받고 싶다”는 속내를 드러냈다.
한편 일본은 이날 결승전 선발투수로 우완 이마치 타츠야(25·세이부)를 예고했다. 최고 159km 강속구를 뿌리는 파이어볼러로 올 시즌 19경기(133이닝) 10승5패 평균자책점 2.30으로 커리어 하이 시즌을 보냈다. 빠른 공으로 압도적인 구위를 과시하지만 제구가 다소 불안정한 편이다. 대만전에서 3안타 3타점으로 활약한 한국 유격수 김주원은 “영상을 봤는데 정말 좋은 투수더라. 철저하게 잘 준비해서 경기에 임하겠다”고 말했다.
프로 선수들이 참가한 역대 국제대회 일본전에서 51경기 23승28패를 기록 중이다. 하지만 일본이 사회인 야구 선수들로 나가는 아시안게임을 빼면 최근 7연패로 밀리고 있다. 지난 2015년 WBSC 프리미어12 준결승전 4-3 역전승이 마지막 승리. 이후 2017년 APBC 예선과 결승전, 2019년 프리미어12 슈퍼라운드와 결승전, 2021년 도쿄올림픽 제2준결승전, 2023년 WBC 1라운드, 이번 APBC 예선까지 최근 7연패에 빠져있다. 한일 야구 격차가 많이 벌어졌지만 단기전 특성상 한 번쯤 이길 때가 됐다. 대표팀 주장 김혜성은 “아직 내가 나간 경기에서 일본을 이긴 경험이 없다. 이번에는 꼭 이기고 싶다”고 의욕을 불태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