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개월 만에 오른 도쿄돔 마운드에서 이의리(21·KIA)의 존재감이 빛났다. 3월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 제구 난조를 보였던 도쿄돔에서 퀄리티 스타트로 만회했다. 일본 야구에도 강한 이미지를 남겼다.
이의리는 지난 17일 일본 도쿄돔에서 벌어진 2023 아시아프로야구챔피언십(APBC) 예선 일본전에 선발등판, 6이닝 6피안타(1피홈런) 3볼넷 3탈삼진 2실점 퀄리티 스타트로 막았다. 지난 3월10일 같은 장소에서 치러진 WBC 예선 일본전에서 7회 구원등판해 실점은 없었지만 ⅓이닝 3볼넷 1탈삼진으로 제구 난조를 보인 이의리였지만 이날은 달랐다.
일본 좌완 선발 스미다 치히로가 최고 149km 직구에 체인지업, 스플리터, 커브 등 여러 변화구를 마음껏 제구하면서 7이닝 3피안타 1사구 7탈삼진 무실점으로 한국 타선을 압도한 경기였지만 이의리의 호투도 충분히 빛났다. 최고 153km 강속구와 날카로운 슬라이더로 좌타자 중심의 일본 타선을 눌렀다.
한국에서처럼 기복이 있긴 했다. 1회 1사 후 3연속 안타를 맞아 만루 위기에 몰렸지만 삼진과 뜬공으로 실점 없이 극복한 뒤 3회 볼넷 2개와 안타로 다시 무사 만루 위기에 처했다. 여기서 일본 4번 마키 슈고에게 5구째 몸쪽 높은 152km 직구를 던져 유격수 먹힌 땅볼을 유도했다. 6-4-3 병살타로 1점은 줬지만 추가 실점 없이 위기를 극복했다.
4회 만나미 츄세이에게 던진 2구째 146km 직구가 한가운데 몰려 중월 솔로 홈런을 맞긴 했지만 흔들리지 않고 6회까지 쭉 이어갔다. 6회 마지막 이닝을 11개의 공으로 삼자범퇴 정리하며 기분 좋게 마운드를 내려왔다. 9회 2사 후 대타로 나온 김휘집의 솔로 홈런이 터지기 전까지 한국 타선이 무득점으로 침묵했고, 이의리는 한국의 1-2 패배와 함께 패전 멍에를 썼다.
국제대회 첫 승을 다음 기회로 미뤘지만 일본에는 위협적인 이미지를 남긴 호투였다. 경기 후 공식 인터뷰에서 이바타 히로카즈 일본 대표팀 감독은 “상대 선발(이의리)을 비롯해 한국의 투수들이 강력했다. 영상으로 보던 것보다 상당히 어려웠다”고 인정했다.
18일 일본 ‘스포츠닛폰’도 이날 경기 소식을 전하며 4회 솔로 홈런을 터뜨린 만나미와 함께 이의리를 조명했다. 매체는 ‘한국의 동년배 선수들을 상대하며 가슴과 가슴을 맞대고 붙었다. 1-0으로 앞선 4회 만나미는 ‘진짜 강하네’라는 생각으로 타석 들어섰다’며 ‘상대 투수 이의리는 지난 3월 WBC 일본전에도 등판했다. 당시 오타니 쇼헤이 상대로 몸쪽 날카로운 공을 던져 시선을 받은 21세 강심장 왼팔이었다’고 전했다.
당시 일본전에서 이의리는 오타니에게 던진 몸쪽 깊숙한 공이 잠시 화제가 됐다. 7회 1사 1,2루에 등판한 이의리는 볼넷과 폭투로 승계 주자 1명을 홈에 보냈다. 계속된 1사 2,3루에서 오타니 상대로 풀카운트 승부를 했는데 6구째 직구가 완전히 벗어나면서 몸쪽 깊게 향했다. 가까스로 공을 피한 오타니가 1루로 걸어가며 이의리를 노려봤고, 불편한 감정을 표시했다. 어떤 의도가 있었다기보다 제구가 안 된 그 공이 일본의 기억에 박혔는데 이번 APBC전 호투로 또 다른 인상을 남겼다.
경기 후 이의리는 “일본 상대로 (선발로는) 처음 던졌는데 재미있게 잘 던졌다. 일본 대표팀이 WBC 때와 선수 구성이 다르긴 하지만 자신만의 존을 설정해서 나왔는지 잘 친 것 같다. 그래도 큰 위기들을 벗어나면서 점수를 많이 주지 않았다”며 “이번 대회 첫 등판이라 긴장을 많이 했다. 나름 잘 막으면서 긴장이 풀렸다. 최일언 투수코치님과 밸런스 얘기를 하면서 잘 풀어나갈 수 있었다. 앞으로 열릴 국제대회가 많이 기대된다. 일본과 서로 많이 발전해서 만났으면 좋겠다”고 다음 대결을 기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