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 자이언츠의 2024년 외국인 선수 한 축을 구성할 애런 윌커슨(34)은 올해 후반기 최고의 투수 중 한 명이었다.
구위가 떨어진 댄 스트레일리(35)의 대체 외국인 선수로 롯데 유니폼을 입은 윌커슨은 후반기 롯데에 반등의 동력을 제공한 선수였다. 후반기부터 본격적으로 활약한 윌커슨은 13경기 7승2패 평균자책점 2.26(79⅔이닝 20자책점), 81탈삼진, 이닝 당 출루 허용(WHIP) 1.09의 성적을 남기며 KBO리그에 연착륙했다.
13경기 모두 5이닝 이상을 소화했고 11경기에서 퀄리티스타트(6이닝 이상 3자책점 이하), 3차례의 퀄리티스타트 플러스(7이닝 이상 3자책점 이하)의 기록을 남겼다. 롯데는 대체 외국인 선수에게 많은 돈을 쏟아 부을 수 없는 상황에서 윌커슨이 옵트아웃으로 완전한 프리에이전트 선수로 풀리기를 기다렸던 상황이라 7월 말에서야 합류했지만, ‘더 빨리 합류했으면 어땠을까’라는 아쉬움이 들 정도로 에이스의 면모를 과시했다.
이러한 성적을 바탕으로 윌커슨은 롯데와 재결합 했다. 롯데는 지난 16일 윌커슨과 총액 95만 달러(계약금 15만 달러, 연봉 60만 달러, 인센티브 20만 달러)에 재계약을 맺었다고 발표했다. 어쩌면 재계약이 당연했던 윌커슨의 성적이었다.
스트레일리와 나이 차이가 1살 밖에 나지 않기에 윌커슨의 구위 저하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하지만 스트레일리는 다소 불안정한 제구력을 구위로 압도하고 회심의 위닝샷인 슬라이더로 리그 타자들을 압도하는 스타일이었다. 2020년 KBO리그 첫 시즌 당시만 하더라도 스트레일리는 단조로운 패턴으로도 한국 무대를 휘어잡으며 205탈삼진을 뽑아낼 수 있었다.
하지만 스트레일리의 노쇠화는 생각보다 빠르게 찾아왔다. 구속이 떨어졌고 구위도 2020년에 미치지 못했다. 구위가 떨어졌는데 제구는 여전히 불안정 했다. 결국 한계를 드러내면서 KBO리그 무대를 떠나야 했다.
윌커슨도 스트레일리 못지 않은 구위를 갖고 있다. 대신 제구력이 뛰어나다. 스포츠투아이 기준, 평균 구속은 144.1km였지만 26.1cm의 상하무브먼트를 갖춘 패스트볼로 KBO리그 타자들을 자신있게 상대했다. 특히 패스트볼과 커터, 체인지업, 슬라이더의 조합에 제구력이 동반되면서 후반기 위력적인 선발 투수로 자리내김했다. 9이닝 당 탈삼진은 9.15개로 이닝 당 1개가 넘는 탈삼진을 뽑아냈고 볼넷은 9이닝 당 2.26개에 불과할 정도로 안정적인 제구력을 보여줬다.
공격적인 승부와 보더라인을 폭넓게 활용하는 피칭 스타일은 KBO리그 연착륙의 이유였다. 또한 올해 트리플A에서 성적이 나빴지만 한국에서 반등에 성공한 이유이기도 했다. 윌커슨은 트리플A 라스베가스 에비에이터스(오클랜드 애슬레틱스 산하)에서 14경기(6선발) 3승2패 평균자책점 6.51(47이닝 34자책점)로 고전했다. 53탈삼진 14볼넷 12피홈런을 기록했다. 타고투저의 퍼시픽코스트리그라고 하더라도 윌커슨의 성적은 낙제에 가까웠다.
윌커슨은 롯데 입단 이후 기자회견 자리에서 “트리플A에서 로봇 심판, 피치 클락 등 새로운 룰에 적응하는데 어려움을 겪었다. 한국에서 ‘리얼 베이스볼’을 할 수 있게 돼서 너무 좋고 이 곳에서 경쟁하고 승리하고 싶다”라는 각오를 전했다.
그런데 윌커슨에게 ‘리얼 베이스볼’이 아닌 환경이 다시 만들어졌다. KBO리그는 2024시즌부터 로봇 심판으로 불리는 자동 볼 판정 시스템(ABS 시스템)을 도입하기로 결정했다. 아울러 피치 클락 제도도 도입할 예정이다.
ABS 시스템은 2020년부터 4년 동안 퓨처스리그에서 시스템 고도화를 진행해 오면서 볼 스트라이크 판정의 정교함과 일관성 유지, 판정 결과가 심판에게 전달되는 시간을 단축하는 성과를 가져왔다고 KBO는 분석하고 있다. 고교야구 무대에서도 ABS 시스템이 정착되고 있다. ABS시스템으로 타자와 투수 동일한 스트라이크 판정을 적용 받을 수 있기에 판정 논란에 누그러질 수 있다. 최근 들어 부쩍 늘어난 현장의 스트라이크 판정과 관련된 불만을 누그러뜨릴 수 있는 KBO의 한 수다.
피치클락 역시 올해 메이저리그에 본격적으로 도입됐다. 주자가 없을 때 15초, 주자가 있으면 20초의 제한 시간을 두고 투구를 펼쳐야 하는 규정으로 메이저리그의 스피드업에 긍정적인 영향을 줬다. 이 제대로 메이저리그는 2022년 3시간 4분(9이닝 기준)이었던 경기 시간을 올해 2시간 40분으로 줄였다. 무려 24분이 단축된 결과다.
KBO리그 역시 스피드업이라는 과업을 완수하기 위해 피치클락을 도입하기로 결정했다. 다만 메이저리그 방식의 피치클락이 도입될지, 아니면 KBO리그에 적합한 새로운 피치클락 규정이 만들어질 지는 치열하게 고민 중이다.
윌커슨 입장에서는 트리플A에서 고전했던 제약들을 피해, ’리얼 베이스볼’을 찾아서 한국에 왔는데 다시 불편한 규정의 지배 아래 공을 던져야 한다. 윌커슨의 보더라인을 정교하게 파고드는 피칭은 ABS시스템 하에서는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 또한 투구 인터벌 자체가 짧은 편은 아니었던 윌커슨 입장에서는 투구 리듬 자체에 영향을 받을 수 있다.
윌커슨 자체의 역량에는 의심이 없지만 주위의 환경의 우려스럽게 변했다. 과연 윌커슨은 우려스러운 상황들을 딛고 2년차 외국인 선수로서 기세를 이어갈 수 있을까.
윌커슨은 롯데와 재계약 직후 구단을 통해 "2024시즌에도 롯데 자이언츠라는 팀에서 커리어를 이어 갈 수 있게 되어 기쁘다. 새로 부임하신 김태형 감독님을 도와 팀 우승이라는 목표를 향해 달려가고 싶다. 하루 빨리 사직구장에 돌아가 팬들과 호흡하며 마운드에 오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상대보다 더 강해질 수 있도록 남은 시간 잘 준비하겠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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