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O는 지난해부터 퓨처스리그에서 시행 중인 연장 승부치기를 내년부터 1군에 도입할 방침이다. 메이저리그는 2020년 코로나19 때 선수 보호를 위해 임시 도입한 연장 승부치기를 올해 영구 도입했다.
연장 10회부터 무사 2루에서 이닝을 시작하는 메이저리그식 승부치기는 득점 확률을 높여 경기 시간 줄이고, 승부를 가리는 데 목적이 있다. 대부분 국제대회에도 승부치기 규정이 적용되고 있어 리그 경쟁력 강화를 위해 더 이상 늦추지 않고 도입하기로 했다.
그러나 마무리투수들에겐 힘든 미션이다. 주자를 득점권에 두고 이닝을 시작하면 심리적인 압박감이 훨씬 크다. 주자를 2루에 두고 시작할지, 아니면 1,2루에 두고 시작할지 세부 사항은 아직 결정되지 않았지만 어느 쪽으로 결정되든 승부치기는 KBO 마무리투수들이 극복해야 할 새로운 과제다.
프로 입단 4년차에 통산 90세이브를 쌓은 KIA의 소방수 정해영(22)은 지난 16일 도쿄돔에서 벌어진 2023 아시아프로야구챔피언십(APBC) 예선 첫 경기 호주전에서 승부치기를 경험했다.
2-2 동점으로 맞선 9회초 2사 1,2루에 등판한 정해영은 알렉스 홀을 주무기 포크볼로 헛스윙 삼진 처리했다. 그러나 9회말 한국이 점수를 내지 못하면서 연장에 들어갔고, 10회초 무사 1,2루 상황에서 이닝을 시작했다.
안타 하나면 바로 실점이 되는 상황에서 탈삼진이 가장 필요했다. 첫 타자 클레이튼 캠벨에게 4연속 바깥쪽 슬라이더를 던져 헛스윙 삼진을 뺏어낸 정해영은 크리스 버크를 3루 직선타로 유도했다. 여기서 돌발 상황이 발생했다. 3루수 김도영의 글러브를 맞고 튄 공이 그의 얼굴을 맞힌 것이다. 통증도 있고, 당황할 법도 했지만 김도영은 떨어진 공을 주워 빠르게 3루를 밟은 뒤 2루로 송구하며 더블 플레이를 엮어냈다.
수비 도움 속에 승부치기 상황을 실점 없이 깔끔하게 정리한 정해영이지만 심적으로 쉽지 않았던 모양이다. 경기 후 그는 승부치기에 대해 “긴장됩니다”라고 말하며 웃은 뒤 내년부터 KBO리그에 도입되는 것에 대해 “잘 막는 수밖에 없다”고 답했다.
호주는 무사 1,2루 승부치기에서 번트 대신 강공으로 갔다. 데이비드 닐슨 호주 감독은 “우리가 선공이고, 1점으로 부족하다고 생각했다. 번트보다 안타를 노리는 게 좋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안타깝게도 결과로 이어지지 않았다”고 밝혔다.
정해영은 “이닝에 들어가기 전 코치님, 포수 (김)형준이형과 얘기했는데 번트를 안 댈 수도 있으니 조심하자고 했다. 상대가 번트를 대지 않아서 더 집중했던 것 같다. 첫 타자만 막으면 이닝을 잘 막을 수 있을 것 같아 가장 집중을 했다. 형준이형이 낮게 가자고 해서 낮게 던졌더니 좋은 결과가 있었다”고 말했다.
김형준은 “빠른 공을 잘 치는 타자들이 나와서 변화구 위주로 사인을 냈다. 해영이가 믿고 따라와줬다”며 자신의 투수 리드를 믿고 따라준 정해영에게 고마워했다. 류중일 대표팀 감독도 “마무리 정해영이 잘 막았다”는 칭찬을 빼놓지 않았다. 정해영이 1⅓이닝을 2탈삼진 무실점 퍼펙트로 막은 데 힘입어 한국도 호주를 3-2로 꺾었다.
한편 정해영은 이날 1⅓이닝을 던졌지만 투구수가 11개로 많지 않았다. 17일 일본전에도 충분히 등판 가능하다. 그는 “지금 몸 상태가 좋다. 나가면 열심히 던지겠다”며 “첫 단추를 잘 끼웠으니 마지막에 웃으면서 한국에 돌아갈 수 있도록 열심히 하겠다”고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