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오나 눈이 오나 신생팀의 뒷문을 맡아 묵묵히 세이브를 쌓아온 김재윤(33)이 마침내 FA 자격을 획득했다. 한국시리즈에서 LG의 화력을 견디지 못하고 무너졌지만 그의 가치는 여전히 시장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김재윤은 지난 15일 KBO(한국야구위원회)가 발표한 2024년 FA(자유계약선수) 자격 선수 명단 34인에 신규 B등급으로 이름을 올렸다. B등급은 이적할 경우 보상선수(25명 보호선수 외) 1명과 전년도 연봉 100% 또는 전년도 연봉의 200% 보상 규정이 있다.
2024년 FA 자격 선수는 공시 후 2일 이내인 11월 17일까지 KBO에 FA 권리 행사 승인을 신청해야 한다. KBO는 신청 마감 다음 날인 11월 18일 FA 권리를 행사한 선수들을 FA 승인 선수로 공시한다. 김재윤은 권리를 행사할 예정이며, 19일부터 원소속팀 KT를 비롯한 모든 구단과 계약을 위한 교섭이 가능하다.
김재윤은 사실 처음부터 투수가 아니었다. 휘문고 졸업 후 미국 마이너리그서 포수로 뛰었던 김재윤은 2015년 신인드래프트서 KT 2차 특별 13순위로 입단해 조범현 전 감독의 제안으로 투수 글러브를 끼었다.
투수 전향은 신의 한 수였다. 김재윤은 입단 2년차인 2016년부터 본격적으로 막내 구단의 클로저를 맡아 경험과 세이브를 동시에 쌓았다. 팀의 암흑기 속에서도 꿋꿋이 3년 연속 두 자릿수 세이브를 달성했고, 2020년 데뷔 첫 20세이브에 이어 2021년 30세이브를 통해 개인 통산 100세이브 금자탑을 쌓았다. 이후 2022년 61경기 9승 7패 33세이브 평균자책점 3.26으로 개인 최다 세이브 경신과 함께 2년 연속 30세이브 고지를 밟았다.
김재윤의 고공행진은 올해도 계속됐다. 59경기에 등판해 5승 5패 32세이브 평균자책점 2.60의 안정감을 뽐내며 KT의 기적의 반등 주역으로 거듭났다. 한때 꼴찌까지 떨어졌던 팀 사정 상 각종 수치가 지난해에 못 미칠 것으로 예상됐으나 SSG 서진용(42세이브)에 이어 세이브 부문 2위에 올랐고, WHIP(1.02)는 클로저 전체 1위를 차지했다.
통산 169세이브의 김재윤은 KBO 세이브 순위 단독 8위에 올라 있다. 현역으로는 삼성 오승환(400세이브), 한화 정우람(197세이브)에 이어 3위이며, 7위 진필중(191세이브)을 향해 힘차게 나아가고 있다. 포수로 커리어를 시작한 신생팀 클로저가 KBO리그 대표 클로저들과 함께 언급되는 경지에 올라선 것.
다만 정규시즌과 달리 포스트시즌에서는 몸값을 높이지 못했다. NC와의 플레이오프에서 2경기 2세이브 평균자책점 0(2이닝 무실점)으로 제 몫을 해냈지만 한국시리즈를 맞아 3경기 1패 평균자책점 15.00(3이닝 5실점)의 부진을 겪었다. 10일 3차전에서 오지환 상대 뼈아픈 역전 스리런포를 맞은 뒤 11일 4차전에서 1⅓이닝 2피안타(1피홈런) 1볼넷 2실점 난조로 다시 고개를 숙였다.
그러나 이번 가을의 부진이 급격한 몸값 하락으로 이어지진 않을 전망이다. 물론 큰 경기에 약한 면모가 계약에 득이 될 순 없겠지만 이미 9년의 커리어를 통해 가치를 충분히 인정받은 김재윤이다. 성실함과 묵직한 구위가 강점인 그는 이번 FA 시장의 마무리 최대어이며, 원소속팀 KT를 비롯해 뒷문 보강이 절실한 팀 입장에서는 구미가 당기는 투수다.
이강철 감독 또한 시즌 도중 김재윤의 가치를 높이 평가하며 KT 잔류를 희망한 바 있다. 이 감독은 “(김)재윤이는 FA 계약할 때 세이브 개수가 의미가 없다. 구위만으로도 계약이 가능할 것 같다. 구위가 안정적이면 데려갈 팀은 데려간다”라며 “물론 김재윤은 우리의 프랜차이즈 스타다. 우리가 잡겠죠”라고 희망사항을 밝혔다.
포수에서 투수로 전향해 신생팀에서 마무리 성공신화를 쓴 김재윤이 FA 계약을 통해 그 동안의 헌신과 노력을 보상받을 수 있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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