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마운드 올라가는 게 무서웠다. 이제는 가운데만 보고 시원하게 던지고 싶다."
롯데 자이언츠에는 많은 '아픈 손가락'들이 있다. 열 손가락 모두를 '아픈 손가락'이라고 지칭해도 될 정도로 잠재력을 터뜨리지 못하고 여전히 아쉬움 시간들을 보내고 있는 선수들이 많다. 대표적인 선수는 2017년 1차지명 윤성빈(24)이다.
부산고 시절부터 강속구로 메이저리그도 눈독 들였던 재능이었던 윤성빈은 4억5000만 원의 계약금으로 롯데 유니폼을 입었다.
2017년 입단 이후 1년 간은 어깨 통증 재활을 하면서 보냈고 2018년부터 본격적으로 경기에 등판했다. 2018년 개막 선발 로테이션에 들면서 기대감을 보였지만 이때가 윤성빈에게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주목을 받았던 시간이었다.
매년 투구폼 교정과 부상, 제구 난조의 악순환이 계속됐다. 1군은 커녕 2군에서도 흔들렸다. 그래도 올해, 2020년 이후 3년 만에 1군 스프링캠프에 합류하면서 기대감을 높였다. 그리고 배영수 코치의 불호령을 견뎌내면서 의욕적으로 시즌을 준비했다. 윤성빈도 묵묵하게, 그리고 다부진 각오로 지도를 묵묵히 따랐다. 그런데 또 부상이 걸림돌이 됐다. 3월 2차 스프링캠프지였던 일본 오키나와에서 치른 연습경기 과정에서 햄스트링 부상을 당하며 기세가 꺾였다. 6월에 복귀했지만 몸과 마음처럼 성적은 따라주지 않았다. 8경기 2승 평균자책점 8.76(12⅓이닝 12자책점) 9탈삼진 19볼넷의 성적에 그쳤다.
1차 지명으로 입단해 어느덧 7년차 시즌. 윤성빈은 올해도 재능을 온전히 터뜨리지 못했다. 그렇지만 윤성빈은 여전히 공을 놓지 않고 있다. 더 이상 물러설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스스로 벼랑 끝에 올라섰다. 최근 윤성빈은 팔 각도를 스리쿼터에 가까운 상태로 내려서 던지고 있다. 큰 키와 긴 팔 다리로 다소 부자연스러웠던 밸런스를 온전하게 되돌리기 위해 기나 긴 고민의 시간을 거쳤다.
16일 김해 상동구장에서 만난 윤성빈은 "제가 어릴 때 팔의 높이가 낮은 투수였다. 초등학교 중학교 감독님께서 편하게 던져봐라고 해서 폼을 만든 게 아니라 근본적으로 편안했던 게 팔 높이가 낮았던 폼이었다. 그런데 제가 키가 너무 크다 보니까 나도 모르게 팔이 올라가 있더라"라고 되돌아봤다.
더 이상의 후회와 미련을 남기지 않기 위해 가장 자연스러웠던 폼으로 돌아가려고 한다. "더 이상 물러설 것도 없다. 계속 연구를 하고 만들어서 던지는 것보다는 제 몸이 편안하게 던지는 게 뭔가 후회도 없을 것 같았다. 그동안 팔과 어깨도 불편하긴 했다"라면서 "그래서 주형광 코치님에게 고민을 많이 말씀드렸는데 주 코치님도 흔쾌히 받아주시고 감독님한테도 보고가 되면서 편했던 폼으로 피칭을 해봤는데 제구가 잘 됐고 변화구도 잘 들어갔다. 가다듬을 건 분명히 있겠지만 지금 피칭할 때는 좋은 상태인 것 같다"라고 설명했다.
모두가 탐내는 재능이었고 신이 주신 신체조건이었다. 그렇기에 롯데에 온 모든 지도자들이 윤성빈의 성장에 자신의 생각과 가치관을 주입했다. 어쩌면 당연한 과정이었다. 하지만 이런 과정이 매년, 짧게는 몇개월 만에 다시 반복이 됐다. 그는 "코치님들도 제가 좋은 신체조건에 나쁘지 않은 운동신경을 갖고 있어서 좋은 쪽으로 연구를 많이 하고 조언도 많이 해주셨다"라면서 "그런데 이렇게 바꿀 때마다 저도 스트레스를 정말 많이 받았다"라고 그동안의 심경을 토로했다.
결국 이제는 맞지 않는 옷에 자신을 맞추기 보다는 스스로 맞는 옷을 찾아가겠다는 의지다. "맞지 않는 옷을 계속 맞추는 것보다는 저에게 맞는 것을 찾아서 입는 게 나을 것 같았다. 그래서 좀 더 편안하게 하는 게 맞는 것 같았다"라면서 "팔 높이가 어디 쯤인지 신경쓰지 않고 제구가 잘 되고 편안하고 아프지 않은 폼을 생각하는 것 같다"라고 설명했다.
비록 올해 부상으로 스프링캠프를 완주하지는 못했지만 스프링캠프에서 배영수 코치와 함께 타겟을 잡는 법과 경기 운영 방법 등에 대해 고민했던 것이 흔들리던 윤성빈의 방향성을 다잡았다. 그는 "올해 정말 마음 먹고 누구보다 열심히 해봐야겠다고 했는데 몸이 안 도와줬다"라면서도 "그래도 배영수 코치님과 훈련하면서 세트 부분과 방향성을 잡는 게 확실히 좋아졌다. 배 코치님은 공의 힘과 느낌보다는 세트를 빠르게 하고 스트라이크를 많이 던지는 경기 운영을 강조했다. 그 부분을 말씀해주셔서 많이 좋아졌다"라고 설명했다.
스스로 벼랑 끝에 서서 마지막이라는 각오를 다지고 있다. 그는 "이제 내년이면 8년차다. 그동안 야구에 100% 몰두하지 못한 것도 인정한다. 이제는 제가 야구를 언제 그만둘지 모른다는 생각이다"라며 "감독님도 또 바뀌셨으니까 새로운 기회라고 생각하고 후회없이, 내년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열심히 하려고 한다. 1군 어느 보직에서든지 마운드에서 쫄지 않고 가운데만 보고 시원하게 공을 던지고 싶다"라고 힘주어 말했다.
마지막으로 자신을 기다려주고 있는 팬들을 향해서도 "너무 감사하다.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는데 아직 응원해주시는 붖들이 계서서 하나라도 더 열심히 하려고 한다. 이제 이렇게 철이 들고 있는 것 같다"라며 멋쩍게 웃었다. 과연 윤성빈은 2024년 1군 마운드에서 마음 편히 웃을 수 있는 날을 만들 수 있을까. /jhrae@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