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년 이후 무려 28년 동안 우승을 못한 KBO리그 인기 구단으로부터 감독 제의가 왔다. 가족이 반대했고, 야구계에서도 낙관보다 우려의 시선이 컸다. 그러나 염경엽 감독은 기꺼이 ‘독이 든 성배’를 받아들였고, 부임 첫해 그토록 바라던 우승 감독 타이틀을 따냈다.
작년 11월 6일 LG는 제14대 사령탑으로 염경엽 KBSN스포츠 해설위원을 선임했다. 3년 총액 21억 원(계약금 3억 원, 연봉 5억 원, 옵션 3억 원)의 조건에 29년 만에 우승 도전이라는 막중한 임무를 맡겼다. LG 구단은 “프런트와 현장에서의 풍부한 경험을 갖춘 염경엽 감독이 구단의 궁극적 목표와 미래 방향성을 추구하기에 적임자라고 판단하여 감독으로 선임했다”라고 발표했다.
지난 13일 29년 만에 LG 통합우승을 이끈 염 감독은 사령탑 선임 당시로 시간을 되돌렸다. 염 감독은 “LG 감독 자리를 제안 받았을 때 엄청난 행운이라고 생각했다. 젊은 선수들이 많았고, 내가 맡은 팀 중에 가장 우승에 가까운 전력을 갖고 있었다. 그 행운을 결과로 만들기 위해 열심히 준비했고, 선수들과 프런트가 큰 힘을 줬다”라고 밝혔다.
그러나 동시에 LG 감독 자리는 ‘독이 든 성배’이기도 했다. 두터운 팬층과 모기업의 든든한 지원을 안고도 1994년 이후 30년 가까이 우승과 인연을 맺지 못했기 때문. 그 사이 무려 11명의 감독이 LG를 거쳐 갔고, 시간이 흐를수록 감독의 부담과 팬들의 우승 열망이 함께 커졌다. LG는 김성근 감독 시절이었던 2002년을 끝으로 한국시리즈조차 진출하지 못했다.
염 감독은 “가족이 처음에 LG 감독을 맡는다고 했을 때 기쁨을 표현하지 않고 반대를 했다”라며 “아내의 종교가 불교인데 이번 한국시리즈뿐만 아니라 정규시즌 내내 매일 같이 절에 가서 기도를 했다. 야구장에 오는 걸 좋아하지 않는 우리 딸도 예비사위와 함께 이 추운 날씨에 매일 같이 와서 응원을 해줬다. 딸이 올 때마다 LG가 이겼다. 힘든 상황을 이겨내는 과정에서 가족이 많은 힘이 됐다”라고 뒷이야기를 전했다.
염 감독은 그렇게 LG 지휘봉을 잡는 결단을 내렸고, 정규시즌 1위에 이어 지난 13일 한국시리즈 5차전에서 KT를 6-2로 꺾고 시리즈 4승 1패로 29년 만에 통합우승을 해냈다. 염 감독은 넥센, SK 사령탑 시절 이루지 못한 우승의 꿈을 이루며 마침내 '우승 감독'이라는 타이틀을 달았다.
염갈량이라는 별명에 걸맞게 시즌 내내 특유의 지략으로 팀의 약점을 보완했다. 두터운 불펜 뎁스를 적재적소에 활용하며 취약한 토종 선발진을 커버했고, 공격에서는 9명 모두가 언제든지 뛸 수 있는 ‘작전 야구’를 선보이며 상대 배터리와 수비진을 교란시켰다. 박명근, 유영찬, 백승현, 신민재 등 미래 자원까지 발굴, 성적과 리빌딩을 동시에 잡았다.
염 감독은 “처음에는 엄청 부담스러웠다. 부담을 안고 시작한 시즌이었다. 4, 5월 선발과 승리조가 붕괴됐을 때 솔직히 이야기하면 잠을 못 잤다”라고 털어놓으며 “거기서 죽지 말란 법은 없었다. 우리 선수들이 잘 버텨주더라. 타선이 터져주면서 부족한 부분을 채워줬다. 박명근 유영찬 백승현 함덕주 이 선수들이 버텨주면서 5월을 넘겼던 게 지금의 우승까지 만들어졌다고 생각한다”라고 되돌아봤다.
염갈량의 뛰는 야구가 무모하다는 평가를 들었을 때도 흔들리지 않았다. 그 어떤 외부 평가에도 스프링캠프 때부터 세웠던 플랜을 고수하며 선수들의 혼란을 최소화했고, 오히려 선수들에게 자신감을 불어넣었다.
염 감독은 “내가 공부한 것 중에 하나가 밖에서 하는 말에 흔들리지 말자는 것이었다. 결과는 감독이 책임지고, 내가 생각하는 야구를 하며 선수들에게 신뢰를 얻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다”라며 “뛰는 야구로 말이 많을 때도 엄청 고민을 했다. 결국 뛰는 게 절대적인 목표가 아니었다. 선수들의 망설임과 초조함을 없애고 자신 있는 야구를 할 수 있는 분위기 만드는 게 LG가 성공할 수 있는 첫 번째 길이라고 생각했다. 망설이지 않고 당당한 야구할 수 있는 팀을 만들고 싶었다. 그런 부분을 선수들과 함께 끝까지 꾸준히 노력했던 게 지금의 좋은 결과로 이어졌다”라고 말했다.
29년 만에 LG의 우승 숙원을 푼 염 감독은 LG 왕조 구축으로 시선을 돌렸다. 올해 통합우승에 만족하지 않고 과거 해태, SK, 삼성, 두산이 그랬듯 LG를 지속적으로 한국시리즈에 진출해 대권을 노리는 팀으로 만드는 게 궁극적인 목표다.
염 감독은 “올해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우리가 우승한다면 내년에 더 단단한 힘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신구조화가 잘 돼 있고, 어린 선수를 1~2명 더 키워낸다면 앞으로 더 명문구단으로 갈 수 있는 힘을 받을 것이다. 내년에도 한국시리즈에 올라간다면 더 강해진 LG가 돼있지 않을까 싶다”라며 “이 우승이 마지막이 아니라 시작이라고 생각한다. 엘지가 강팀 명문구단으로 갈 수 있는 첫걸음을 뗐다고 생각한다. 계속해서 좋은 과정 만들다보면 결과는 따라올 거라고 생각한다. 쉬었다가 내년 준비 잘해서 내년에도 또 웃을 수 있도록 잘하겠다”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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