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백종인 객원기자] 뜨거운 일주일이었다. 29년 만의 일이 기어이 일어났다. “나는 왜 서울에서 태어나서…”라고 한탄하던 어느 팬의 염원도 풀렸다. 그들에게는 짧지만, 꿈 같은 시간이었다. “저에게는 2002년 월드컵 못지않았어요.” 그만큼 큰 감격을 누렸다.
2023년 11월. LG 트윈스 때문에 일어난 일들이 많다. SNS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기억에 남는 얘기들을 모아봤다.
“BTS, 임영웅 티켓도 구했는데”
1차전(7일)을 며칠 앞두고다. 예매 전쟁이 일어났다. 잠실과 수원 구장은 당연했다. 야구 중계한다는 극장표까지 모두 동이 났다. 접속 사이트가 정가의 4~5배는 예사다. 그보다 훨씬 비싸게 팔리는 암거래까지 극성을 부렸다.
심지어 구걸(?) 사태까지 벌어진다. “(예매 사이트) 접속도 어렵다” “제발 양도 좀” “어디 취소표 없나요” “줄 서 봅니다” 같은 애타는 마음들이 넘쳐난다. 대기 순서가 10만 번을 넘기기도 했다.
급기야 BTS까지 소환된다. “방탄, 임영웅 콘서트 티켓도 구했는데. 이번 한국시리즈 입장권은 정말 힘들다”는 실패 사례가 등장했다. 이를 두고 “그건 너무 오버다”라는 반응이 있는 반면 “아니다. 아는 사람이 방탄 1번이라고 자랑하더니, 엘지가 더 빡시다고 고개를 젓더라”며 공감 버튼을 누른다.
허탈한 올드팬들…주요 뉴스도 사회 문제로 보도
입장권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가 되자 더욱 소외되는 계층이 나타났다. MBC 청룡 때부터 응원한 올드 팬들이다.
사랑하는 팀의 모습을 현장에서 확인하고 싶지만 진입 장벽은 아찔하다. 모든 절차가 온라인으로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예매 사이트니, QR코드니 이런 것들과 친할 리 없다. 매번 아들, 딸, 손자들 손을 빌려야 그나마도 가능했다.
이런 현상은 TV 뉴스에도 등장했다. JTBC의 ‘밀착 카메라’가 ‘디지털 소외의 현장’이라는 주제로 다뤘다. “인터넷에서만 전부 다 100% (예매) 하니까 나같이 나이 70이 다 된 사람들은 못 사는 거 아니야. MBC 청룡 때부터 팬인데 못 들어가는 거예요. 현장 판매를 하면 새벽부터 줄을 서서라도 구매하고 싶은데.” 이런 애절한 인터뷰도 전해졌다.
극장에서도 한국시리즈 공동 응원
쌍둥이 팬들의 열기는 극장가도 움직였다. CGV가 KBO와 계약을 맺고 한국시리즈 전 경기를 일부 상영관에서 방영하기로 했다. 이곳 티켓도 일찌감치 매진됐고, 역시 암표가 돌아다닐 정도로 성황을 이뤘다.
반응이 뜨거워지자 당초 계획인 상영관 10개에서, 14개 지점의 16개 상영관(1차전 기준)으로 긴급 확대되기도 했다.
유광 점퍼를 입고 응원 도구를 든 열성 팬들의 함성 소리가 잠실 구장 못지않게 뜨거웠다는 참석자들의 후기가 이어졌다. 따뜻하고 안락한 환경에서 색다른 즐거움을 느낄 수 있었다는 얘기다.
9호선 기관사의 축하 멘트
LG가 박동원의 역전 투런홈런으로 2차전을 잡은 날(8일)이다. 밤 늦은 시간에 올라온 영상 하나가 팬들 사이에서 화제였다. 지하철 9호선 열차 안에서 나온 기관사의 방송 멘트였다.
“오늘 LG가 역전승을 했다는 뉴스를 보게 됐습니다. LG 팬 여러분들 한국시리즈 첫 승 축하드리며, 비가 온 뒤 부쩍 추워진 날씨에 감기 조심하시길 바라겠습니다. 오늘 하루도 모두 고생 많으셨습니다. 가시는 목적지까지 안녕히 가십시오.”
마치 (비행기) 기내의 “디스 이즈 캡틴 스피킹(This is Captain speaking)…”과 흡사한 톤이다. 멋진 목소리의 기관사 방송에 팬들은 승리의 감동을 다시 한번 음미할 수 있었다. “기관사 분이 LG 팬인가 보다” “서울 시내를 운행하는 지하철이라서 할 수 있는 멘트” “9호선이 잠실 종합운동장역을 통과하니까” 같은 반응들이다.
스포츠 신문 사러 새벽에 편의점행
우승의 감격에 젖은 몇몇 팬들이 새벽에 편의점을 찾는 일도 생겼다. 방금 배포된 신문을 구매하기 위해서다. 이들은 1면에 LG 우승 소식을 전하는 스포츠 신문을 구해 인증 사진을 올리며 기쁨을 나눴다.
2~3개 매체 신문을 사서 기뻐하는 팬이 있는 반면 “10 군데 들려서 간신히 1부 구했다” “2시간 돌아다녔는데 실패했다”는 후기도 여럿이다. 트윈스 팬들은 정규시즌 우승 뒤에도 이 소식을 1면 통단으로 전한 ‘스포츠서울’을 구매하는 열풍을 일으키기도 했다.
길에서 만나면 모르는 유광점퍼와도 하이 파이브
LG는 “작년 1년간 판매량의 150%가 10월까지 판매됐다. 한국시리즈를 대비해 그만큼의 수량을 추가 제작했는데, 이 물량 역시 불티나게 팔려 나가고 있다. 전년 대비 300%의 매출을 바라보고 있다”고 밝혔다.
SNS와 커뮤니티에도 여기에 대한 의견이 봇물을 이룬다. “겨울용은 없냐” “남은 사이즈가 별로 없다” “어디 가면 많이 팔더라” 같은 구매에 관한 정보들이다.
반면 흥미로운 사용 후기도 많다. “길에서 마주치면 모르는 사람과도 하이 파이브 한다” “엘지 파이팅을 외쳐주시는 분들도 있다” “앞으로 일주일은 더 입고 싶은데 괜찮을지 모르겠다” 등등의 훈훈함을 나눈다.
웃음이 번지는 에피소드도 등장한다. “생전 인사 안 하던 (아파트) 같은 동 아주머니와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쳤다. 똑같은 유광점퍼를 보고 서로 빵 터졌다.”
내일 출근 어쩌나, 이어지는 ‘휴밍 아웃’
시리즈 티켓을 구하는 것도 어렵다. 하지만 구한다고 해도 문제다. 전 경기를 다 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지만, 그게 어디 쉬운가. 운영하는 가게 영업에 직장 출근, 등교 걱정에 한숨이 쌓인다.
“가게에 TV를 켜 놓으면 손님 순환이 안 될까 봐 아예 설치를 안 했네요. 틈틈이 핸드폰으로 보고 있는데, 감질나서 미치겠어요” “계속 하이라이트 영상 보느라 새벽까지도 잠을 못 자네요. 내일 어떻게 출근할 지” 등의 안타까운 심정들이다. 심지어 “수능 3일 남기고 잠실로 갑니다. 응원해 주세요”라는 수험생의 용기에 갈채가 쏟아졌다.
와중에 휴가를 고백하는 네티즌들이 여럿이다. “오늘은 반차 내고, 내일은 월차를 쓰기로 했어요. 눈치가 좀 보이지만 어쩔 수 없네요” “오늘(5차전) 꼭 끝내야 해요. 내일은 중요한 업무 약속이 있어서 정말 안 돼요” 같은 사연들이다. 반면 웃지 못할 후기도 있다. “병가 낸 회사 동료가 야구장에서 TV에 잡혔네요. 이걸 회사에 애기해야 하나요.”
오세훈 서울시장은 우승 축하 행사를 적극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서울 광장에서 거리 환영회를 여는 방안이다. 이미 지난해 허구연 KBO 총재와의 약속도 있었던 사안이다. 29년 만의 숙원이 이뤄졌다. 오래 걸렸다. 그만큼 더 많은 흥미로운 일들이 이어지는 2023년 11월이다.
/ goorada@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