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백종인 객원기자] 지난달 28일(이하 한국시간) 열린 월드시리즈 1차전 때다. 9회 말을 남기고, 스코어는 3-5로 홈 팀 레인저스의 패색이 짙다. 게다가 원정 팀 D백스의 마무리 폴 시월드는 이번 포스트시즌 들어 철벽이다. 와일드카드부터 챔피언십 시리즈까지 8경기 동안 무실점(8이닝)으로 완벽했다.
그러나 1사 1루에서 사건이 벌어진다. 캐스터가 “스윙 하나면 동점이 될 수도 있습니다”라는 말이 채 끝나기도 전이다. 타자가 초구를 벼락같이 받아쳤다. 까마득히 솟은 타구는 우측 관중석으로 사라졌다. 5-5를 만드는 극적인 투런 홈런이다.
글로브 라이프 필드가 4만이 넘는 관중의 어마어마한 함성에 휩싸였다. 패배 직전에 팀을 구한 영웅은 유유히 베이스를 돈다. 2번 타자, 유격수 코리 시거다. 생명 연장의 꿈을 이룬 레인저스는 결국 11회 아돌리스 가르시아의 끝내기 홈런으로 1차전을 점령했다.
코리 시거의 활약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3차전에도 결정적인 한 방을 터트린다. 3회 초 레인저스의 공격. 2사 3루서 마커스 시미언의 적시타로 0-0의 균형을 깨트렸다. 계속된 2사 1루다. 시거의 강렬한 스윙이 다시 한번 폭발했다. 3-0으로 점수 차이를 벌리는 투런포였다(최종 스코어 3-1). 이 타구는 시속이 무려 114.5마일(184㎞)이었다. 2015년 이후 포스트시즌 최고 기록이다.
4차전도 텍사스가 먼저 터졌다. 2회 초 집중타를 퍼부으며 3-0의 우세를 만들었다. 계속된 2사 3루에서 또 다시 시거의 타석이 돌아온다. 이번에는 2구째 슬라이더를 받아쳐 체이스필드의 명물인 수영장 근처에 떨어트렸다. D백스 팬들을 절망에 빠트린 순간이다. 시리즈 들어 세 번째 홈런이다(최종 스코어 11-7).
이번 가을의 고전에는 심상치 않은 키워드가 등장한다. ‘숙원(宿願)’이다. 한미일 3국 리그에 공통으로 적용된 단어다. 텍사스 레인저스가 창단 62년 만에 첫 월드시리즈 우승을 차지했다. NPB도 한신 타이거스가 38년 만에 일본시리즈 정상에 올랐다. 이제 남은 것은 LG 트윈스다. 29년 만의 염원을 이룰 수 있느냐가 관심거리다.
현재까지는 순항 중이다. 시리즈 전적 3승 1패로 앞서고 있다. 일진일퇴를 거듭하며 7차전까지 간 일본시리즈보다는 월드시리즈의 시나리오에 가깝다. 게임 내용도 그렇다. 결정적인 순간 장타력을 폭발시키며 드라마 같은 승리를 만들어 내고 있다.
특히 오버랩 되는 주연 배우가 있다. 대형 유격수 코리 시거(29)와 오지환(33)이다. 텍사스는 시거의 활약이 눈부셨다. 시리즈 내내 공수에서 중심을 잡아줬다. 물론 파괴력 있는 KO 펀치가 압권이었다. 5경기에서 3개의 중요한 홈런을 터트렸다. 21타수 6안타(타율 0.286), 출루율 0.375, OPS 1.137을 기록했다.
오지환도 비슷하다. 아니 현재까지는 그보다 낫다. 홈런 숫자(3개)는 같다. 하지만 나머지 기록은 더 뛰어나다. 4게임에서 15타수 6안타로 4할을 쳤다. 6안타 중 4개가 장타다. 출루율이 0.500, OPS는 무려 1.567이다.
무엇보다 3차전 드라마의 주역이었다. 트윈스는 8회 말 박병호에게 치명타를 맞고, 위독한 상태였다. 그렇게 5-7로 뒤진 채 9회 초로 끌려간다. 그리고 마지막 아웃 카운트 1개를 남긴 상황이었다. 여기서 오지환의 스윙 하나가 모든 것을 뒤바꿔 놓는다. 극적인 역전 3점포였다. 2차전 박동원의 홈런과 함께 이번 시리즈의 흐름을 바꾼 결정적인 한 방이었다.
코리 시거는 텍사스에 창단 첫 우승을 안겨주며 월드시리즈 MVP에 선정됐다. 2020년 다저스 시절을 포함해 2번째다. 샌디 쿠팩스, 밥 깁슨, 레지 잭슨에 견줄 만한 기록이다. 셋은 모두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인물들이다. 이 중 팀을 바꿔 양대 리그 소속으로 번갈아 수상한 것은 시거가 처음이다.
한국시리즈에서는 현재까지 오지환과 박동원의 활약이 가장 뛰어나다. 둘 모두 드라마 같은 홈런을 쳐냈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특히 오지환의 경우는 몇 가지 프리미엄이 작용한다. 프랜차이즈 스타이며, 굴곡이 많은 선수 생활을 했고, 현재는 주장을 맡아 팀을 이끌고 있다는 점이다.
LG 팬들을 설레게 하는 것이 평행이론이다. MLB, NPB처럼 KBO도 오랜 염원이 이뤄질 것이라는 기대감이다. 아마도 그 연장선상에는 오지환이 코리 시거처럼 가장 높은 자리까지 올라갔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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