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년 10월 23일. LG는 한국시리즈 4차전에서 태평양을 3-2로 꺾고 4전승,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했다. 그로부터 29년, 날짜로는 1만 613일이 지났다.
2023년 11월 13일, 드디어 LG가 숙원을 풀었다. LG는 13일 서울 잠실구장에서 열린 2023 KBO 한국시리즈 5차전에서 KT를 6-2로 꺾고, 4승1패로 한국시리즈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29년 만에. 염경엽 감독이 LG 감독의 잔혹사에 종지부를 찍었다.
염 감독은 우승 후 공식 인터뷰에서 LG의 29년 우승 숙원을 푼 기분을 묻자 "엄청 부담스러웠다. 부담을 안고 시작한 시즌이었다. 4~5월에 선발이 붕괴되고 승리조가 부진했을 때, 솔직히 이야기하면 잠을 못 잤다. 거기서 죽지 말란 법은 없었다. 우리 선수들이 잘 버텨주더라. 타선이 터져주면서 부족한 부분을 채워줬다. 박명근 유영찬 백승현 함덕주 새로운 필승조들이 버텨주면서 5월을 넘겼던 게 지금의 우승까지 만들어졌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한국시리즈 1~5차전을 돌아본 염 감독은 가장 큰 고비로 "(2차전 선발 투수) 최원태가 1회가 못 버텼을 때였다. 투수를 교체해서 나머지 이닝에서 1점이라도 주게 되면 2차전도 넘겨주게 될 것 같았고, 2차전까지 패한다면 이번 시리즈는 정말 아무리 절실함과 열정이 있어도 힘들어질 수밖에 없었다. 또 우리는 지금까지 뒤진 상태에서 이겨내는 힘이 가장 약한 팀이었다. 그런 불안이 가장 심했던 게 2차전 최원태 내렸을 때였다"고 말했다.
29년 만에 한국시리즈 우승을 이뤄내기까지, 11명의 감독이 LG를 거쳐갔다. 인기라면 어느 팀에 뒤지지 않은 열성팬층을 보유한 LG의 감독은 독이 든 성배였다. 1994년 한국시리즈 우승 이후 성적의 부침이 심하면서, 감독 자리도 자주 바뀌었다.
1990년 MBC 청룡을 인수해 KBO리그에 참가한 LG는 초대 백인천 감독을 시작으로 염경엽 감독이 14대 감독이다. 전임 13명의 감독 중에서 재계약에 성공했던 감독은 2대 감독 이광환 감독과 3대 감독 천보성 감독 2명 뿐이었다. 그런데 그들도 재계약 이후 감독 자리에 오래 머물지 못했다. 두 감독은 재계약 첫 시즌에 성적 부진을 이유로 경질됐다.
1994년 LG의 한국시리즈 우승을 이끈 이광환 감독은 시즌이 끝나고 3년 재계약에 성공했다. 그러나 1996시즌 도중 7위로 추락하자 7월 중순 경질됐다. 계약 기간 절반을 남겨둔 시점이었다. 1996년 11월 LG 사령탑에 오른 천보성 감독은 1997년과 1998년 2년 연속 한국시리즈에 진출했다. 시즌 후 2년 재계약에 성공했지만 천보성 감독은 재계약 첫 해인 1999시즌 6위로 부진하자 시즌 후 경질됐다.
2000년 이광은 감독(1999년 12월~2001년 5월)을 시작으로 김성근 감독(2001년 5월~2002년 11월), 이광환 감독(2002년 12월~2003년 10월), 이순철 감독(2003년 10월~2006년 6월), 양승호 감독대행, 김재박 감독(2006년 10월~2009년 9월), 박종훈 감독(2009년 10월~2011년 10월), 김기태 감독(2011년 10월~2014년 4월), 조계현 감독대행, 양상문 감독(2014년 5월~2017년 10월), 류중일 감독(2017년 10월~2020년 11월), 류지현 감독(2020년 11월~2022년 11월)이 LG를 지휘했다.
2000년 이후로는 어느 누구도 재계약에 성공하지 못했고, 이광은 감독, 김성근 감독, 이순철 감독, 박종훈 감독, 김기태 감독은 계약 기간 도중에 물러났다. 과거 13명의 감독들 중에서 절반이 넘는 7명의 감독은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중도에 물러났다. 계약 기간을 채운 감독은 6명이었다.
류지현 감독은 2021시즌 3위, 2022시즌 87승2무55패(승률 .613)로 정규시즌 2위와 함께 LG 구단 역대 최다승 신기록을 세웠지만 '가을야구'에서 2년 연속 업셋 탈락을 하면서 재계약이 무산됐다.
1994년 이후 한국시리즈 우승에 목마른 LG 구단 최고위층은 지난해 11월 심사숙고 끝에 염경엽 감독을 영입했다. 염 감독은 2008년 LG에서 프런트로 처음 몸 담았고, 2010~2011년 1군 수비코치를 지냈다. 2012년 넥센(현 키움) 코치로 떠난 뒤 11년 만에 감독으로 돌아왔다.
LG 구단은 염 감독에게 감독 제안을 하면서 "우리의 목표는 한국시리즈, 그리고 우승"이라고 확실하게 밝혔다. 염 감독은 1994년 이후 LG를 정규시즌 우승으로 이끌었고, 29년 만에 한국시리즈 우승까지 통합 우승을 달성하며 '우승 청부사'가 됐다.
선수 은퇴 후 현대에서 프런트와 코치를 지낸 염 감독은 2008년 LG로 옮겼다. 스카우트로 시작해 운영팀장, 수비코치를 지내다 2011시즌을 마치고 LG를 떠났다. 돌고 돌아 LG 감독으로 복귀해 29년 우승 한풀이를 해냈다.
염 감독은 "감회가 남다르다. (LG를 떠날 때) LG에서 엄청 욕을 먹었다. 그 때는 누군가가 책임져야하는 상황이었다. 그 대상이 내가 됐기 때문에... 내가 나가야 조용해질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 때 구단주님에게도 말씀 드렸다. 나중에 성공해서 돌아오겠다고 했다. 우연치 않게 LG 감독 자리를 제의 받았을 때 엄청난 행운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맡은 팀 중에 가장 우승에 가까운 전력을 갖고 있었다. 행운을 결과로 만들기 위해 열심히 준비했다. 부담 컸지만 선수들이 힘을 줬다. 프런트도 내게 믿음을 줬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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