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O리그 역대 최고 수준의 성적을 기록한 투수에게 역대 최고 대우를 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하지만 이 최고 대우로도 역부족일 가능성이 높다. NC 다이노스와 에릭 페디의 재결합 가능성은 점점 희박해지고 있다.
올해 30경기(180⅓이닝) 20승6패 평균자책점 2.00, 209탈삼진으로 트리플크라운(다승 평균자책점 탈삼진 1위)이라는 대업을 달성한 페디. 선수로는 선동열 류현진 윤석민 이후 역대 4번째, 횟수로는 역대 7번째(선동열 4회 류현진 1회 윤석민 1회)의 대업이었다. 아울러 20승과 200탈삼진을 동시에 기록한 것은 1986년 선동열 이후 37년 만이었다. 두 기록 모두 외국인 선수 최초다.
역대 최고의 외국인 선수라고 불려도 무방한 기록을 남겼고 ‘꼴찌 후보’ NC를 정규시즌 4위로 당당히 이끌었다. 그러나 정규시즌 최종전에서 오른팔에 타구를 맞은 여파가 있었다. 또 정규시즌부터 이어진 피로누적의 영향으로 포스트시즌 무대에서는 사실상 개점휴업이었다.
마지막 순간 눈물을 펑펑 흘렸던 페디였다. 팀에 도움이 되지 못한 자신의 상황을 비관하면서 선수단에 미안함 감정을 전했다. 그리고 이 눈물은 작별의 눈물이 될 가능성이 높다.
KBO리그에서 압도적인 퍼포먼스를 선보인 페디를 메이저리그가 가만히 놔둘리 없다. 이미 NC에 올 때부터 화제였던 페디였다. 2022년까지 메이저리그 워싱턴 내셔널스에서 5선발 한 자리를 차지했던 풀타임 메이저리거였다. 이런 투수가 스텝업을 위해 한국을 택했고 모험과 도박은 제대로 성공했다.
이미 KBO리그 출신으로 메이저리그에 역수출한 뒤 성공한 사례가 이제는 적지 않아진 상황. 페디는 다시 한 번 역수출 신화의 주인공이 되기를 기다리고 있고 또 기대하고 있다. 미국 현지에서는 페디가 비교적 큰 규모의 계약을 맺을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다.
미국 ‘뉴욕포스트’는 지난 10일(이하 한국시간) ‘메이저리그 FA 시장에서 부자가 될 선발 투수들’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페디를 언급했다. 매체는 ‘지난 겨울 단 두 팀으로부터 제안을 받은 페디는 한국에서 최고의 투수가 되면서 FA 시장에서 탐나는 선수가 됐다. 페디에게 계약을 제안한 팀 중 하나는 즉시 전력감으로 분류한 뉴욕 양키스였다’라고 설명했다.
지난 4일 ‘MLB.com’은 ‘KBO에서 성장해 미국으로 복귀한 메릴 켈리는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의 월드시리즈 진출에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업계 일각에선 페디가 메이저리그로 넘어와 선발진의 한 축으로 자리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며 ‘지난해 워싱턴을 떠난 뒤 갈고닦은 스위퍼로 이닝당 1개의 삼진을 잡았다’고 전했다.
8일 ‘MLB 트레이드 루머스’도 ‘페디는 한때 많은 관심을 받은 유망주였지만 빅리그에서 큰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하지만 한국에 가서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시즌을 보냈다. 이번 FA 시장에서 흥미로운 와일드카드가 됐다’라고 언급했다.
KBO리그 출신으로 메이저리그 계약을 따낸 메릴 켈리(2019년 애리조나, 2+2년 최대 1450만 달러), 조쉬 린드블럼(2020년 밀워키 브루어스, 3년 912만5000달러), 크리스 플렉센(2021년 시애틀 매리너스, 2년 475만 달러)보다 좋은 조건의 계약을 할 것으로 예상이 되고 있는 상황.
올해 NC와 계약을 하면서 1년차 외국인 선수가 받을 수 있는 최대 금액인 100만 달러를 받은 페디다. NC로서는 페디를 붙잡고 싶은 게 당연하다. 그러나 메이저리그의 관심이 실재하고 있는 이상 재계약 총액을 높인다고 하더라도 현실적으로 페디를 붙잡기에는 역부족이다. 개인에게 줄 수 있는 총액 제한은 사라지지만 외국인 선수 샐러리캡을 무시할 수 없다. 재계약을 하게 되면 400만 달러의 샐러리캡 한도에서 10만 달러가 더 늘어나지만 턱없이 부족하다.
역대 외국인 선수 최고 연봉은 2017년 두산 더스틴 니퍼트, 2022년 NC 드류 루친스키가 받은 200만 달러(약 26억 원)다. 모두 역대 최고 외국인 선수 반열에 오른 선수들이다. 페디를 200만 달러에 묶어놓기에는 현실적인 벽이 너무 높다.
메이저리그 유턴으로 돈방석이 기다리고 있는 상황에서 KBO리그와 NC는 최고 에이스의 이탈을 지켜만 볼 수밖에 없다. 페디는 실력 뿐만 아니라 라커룸 적응도 오나벽했다. 현역 메이저리거였지만 거들먹 거리지 않고 선수단에 일찌감치 융화됐고 자신의 노하우를 동료 투수들에게 전하는 것에 언제나 열려 있었다. 에이전시의 주선으로 현재 최고 유망주 투수인 문동주(한화)와의 만남을 갖기도 했다.
구단 컨텐츠 촬영에서도 사투리를 완벽(?)하게 구사하면서 즐거움을 줬다. 시즌 중에는 폴라로이도 사진기로 홈런 친 선수들을 찍어서 덕아웃 내의 화이트보드에 전시해 놓자는 아이디어를 제시하며 새로운 홈런 세리머니를 주도하기도 했다. 페디가 직접 사진을 찍으면서 덕아웃 분위기를 끌어올리기도 했다.
여러 방면에서 페디는 많은 추억을 남겼다. 그러나 페디는 이제 한국에서의 추억을 묻어두고 더 큰 무대로 떠날 확률이 높아졌다. 페디는 NC 구단 직원들과 영원한 이별을 암시한 듯 인사를 하고 떠났다. /jhrae@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