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 선수 최초로 메이저리그 골드글러브를 수상한 김하성(28·샌디에이고 파드리스)은 시즌 후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로 이적한 밥 멜빈(62) 감독에게 축하 연락을 받았다. 이에 김하성은 고마운 마음을 표현하기 위해 직접 장문의 편지를 써서 전달했다. “당신이 나를 2년간 지켜줬다”는 감사 메시지를 담아 팀을 떠난 감독에게 진심을 전했다.
‘한국인 1호 빅리거’ 박찬호(50) 샌디에이고 특별 고문이 이 사연을 들려줬다. 지난 8일 KT와 LG의 한국시리즈 2차전이 열린 잠실구장을 찾은 박찬호 고문은 “감독에게 먼저 연락이 오자 하성이가 고마워서 장문의 편지를 써서 보냈다고 한다. 겸손하고, 고마움을 아는 선수”라며 “나도 메이저리그 첫 승을 했을 때 부모님보다 마이너리그 투수코치(버트 후튼)한테 먼저 전화해 고맙다고 했다. 이런 게 우리만이 갖고 있는, 한국적인 정서에서 우러나오는 문화라고 생각한다. 하성이가 그렇게 해서 참 좋다”고 기특해했다.
김하성이 지난 2021년 1월 포스팅을 통해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에 입단할 때부터 박 고문이 직간접적인 역할을 했다. 구단에 김하성 영입을 강력하게 추천했고, 입단 후에도 미국 현지에서 만나거나 전화 통화로 이야기를 나누며 적응을 돕기도 했다. 첫 해 적응 과정에서 시련을 겪은 김하성은 멜빈 감독이 부임한 지난해 주전 유격수로 도약했고, 올해는 2루수로 옮겨 자리를 옮겨 리그 정상급 내야수로 급성장했다. 내셔널리그(NL) 유틸리티 부문 골드글러브를 수상하며 최고 수비력을 확실하게 인정받았다.
샌디에이고 구단주 그룹인 피터 오말리 가문과 LA 다저스 시절 때 맺은 인연으로 2019년부터 구단 특별 고문을 맡고 있는 박 고문은 “하성이의 골드글러브 수상은 한국 야구에 엄청난 역사와 기록을 남긴 것이다. 한국 야구 위상을 올린 큰 영예이지만 샌디에이고 구단에도 의미가 크다. 스즈키 이치로 이후 처음으로 외국에서 온 선수가 골드글러브를 탄 것을 굉장히 크고 값지게 생각하고 있다. 하성이의 성실함과 겸손함, 뭐든지 열심히 하며 포기하지 않는 근성을 구단에서도 인정한다”고 밝혔다.
처음부터 김하성이 잘했던 게 아니다. 2021년 첫 해 백업으로 뛰면서 빅리그의 높은 벽을 실감했다. 극심한 스트레스에 원형 탈모까지 왔고, 한국으로 복귀를 심각하게 고민하기도 했다. 김하성이 주춤하자 샌디에이고 구단에서도 박 고문에게 멘탈 케어를 부탁하기도 했다. 선수 시절 숱한 시련을 딛고 또 일어선 박 고문의 조언은 김하성에게도 큰 울림이 됐다.
박 고문은 지난해 시즌을 마친 뒤에도 김하성에게 조언을 했다. 성공적인 2년차 시즌을 보낸 김하성이었지만 여전히 위로 올라가야 한다는 압박감이 있었다. 지난해 이맘때 박찬호 야구 장학금 전달식에 참석한 김하성과 티타임을 가진 박 고문은 “위로 올라가려고 하지 마라. 올라가는 게 아니라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내려가는 것도 아니고, 잠깐 멈칫하는 것일 뿐이다. 나아가는 게 성숙이고, 멈칫하는 게 생각할 수 있는 기회다. 너무 부담 갖지 말라”고 이야기했다.
올해 최고 시즌을 보낸 뒤 지난달 11일 귀국한 김하성은 국내에서 박 고문을 여러 차례 만나 식사를 하면서 지난해 들려준 조언에 고마워했다. 박 고문은 “하성이가 올 시즌 내내 나아간다는 생각으로 했다고 하더라. 올라가야 한다는 생각을 할 때는 그렇게 안 될 때 자신감도 잃고 좌절하면서 ‘내가 갈 수 없는 곳이구나’ 이런 생각도 했었다고 한다”며 “나도 그걸 텍사스 레인저스 시절 느꼈다. 나아가는 게 성장하는 것이다. 그 이야기가 도움이 됐다고 하성이가 말해줘 정말 고마웠다”고 말했다.
이어 박 고문은 “하성이가 첫 해 어려움을 겪었지만 그걸 통해 더 성장했다. (A.J. 프렐러) 단장하고도 얘기했지만 나도 처음 미국에 갔을 때 주춤하고 마이너리그에 내려가서 실망한 사람들도 있었지만 구단에서는 ‘걱정할 필요 없다’고 했다. 어려울수록 포기하지 않는 사람들은 그걸 계기로 더 강한 것을 만들어내는 근성이 있다. 샌디에이고 구단에서도 하성이의 그런 면을 보고 스카우트했다. 그런 믿음이 골드글러브를 만들어낸 것이다”고 설명했다.
이제 명실상부한 메이저리그 정상급 선수가 된 김하성. 야구적으로는 더 이상 조언할 게 없다. 그럴수록 박 고문은 더욱 더 겸손을 강조하고 있다. 박 고문은 “하성이한테도 ‘너는 이제부터 겸손하고 싸워야 한다. 겸손을 더 밀접하게, 가까이 두라’는 말을 했다”고 밝혔다. 지금도 인성이 바르고 겸손을 아는 선수이지만 잘 나갈수록 더 자세를 낮추고 계속 정진하길 바라는 대선배의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