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가 지난 2021년 12월 FA 외야수 박해민(33)을 4년 60억원에 영입한 것은 다소 의외로 여겨졌다. 김현수, 홍창기, 채은성, 이형종, 이천웅 그리고 유망주 문성주와 이재원까지 외야 자원이 워낙 풍부한 팀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LG는 공수주 삼박자를 다 갖춘 박해민의 가세가 팀에 부족한 기동력과 작전, 외야 수비력, 나아가 근성을 불어넣어줄 것으로 기대했다. 우승을 위한 승부수였다. 이적 후 2년 연속 144경기 모두 출장한 박해민은 1번 홍창기와 리그 최강 테이블 세터를 구축하며 모범 FA로 자리잡았다.
올해 KT와의 한국시리즈에서도 박해민의 진가가 발휘되고 있다. 1차전에서 3타수 1안타 1사구로 멀티 출루에 성공한 박해민은 2차전에서도 3타수 2안타 1볼넷 3출루 활약으로 공격 첨병 역할을 했다. 특히 2차전에서 2-4로 뒤진 7회 2사 후 풀카운트 승부 끝에 볼넷을 골라낸 뒤 김현수의 우익선상 2루타 때 홈을 밟아 5-4 역전승에 발판을 마련했다.
2002년 이후 무려 21년을 기다린 한국시리즈에서 LG는 1차전을 2-3으로 졌다. 충격이 꽤 큰 패배였지만 박해민은 “삼성에 있을 때 2014년 1차전을 패하고 우승했다. 2015년에는 1차전을 이기고 준우승했다. 선수들에게 장난식으로 ‘우승하려면 1차전 져야 한다’는 말을 했다. 경기장에 오신 팬분들께는 죄송스러웠지만 아직 경기가 많이 남아있다. 29년 만에 우승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여유와 자신감을 잃지 않았다. 박해민 말대로 2차전에서 LG는 5-4로 역전승을 거두며 1승1패 균형을 맞췄다.
박해민은 삼성 왕조의 끝자락을 경험한 선수다. 삼성은 2011~2014년 통합 우승 4연패 위업을 세웠는데 박해민은 2014년 우승 멤버로 함께했다. 당시 삼성은 넥센(현 키움)을 4승2패로 꺾고 우승했다. 2차전에서 도루를 시도하다 왼손 약지가 2루 베이스에 걸려 인대의 50%가 손상되는 부상을 입었지만 벙어리 장갑을 끼고 3차전 대주자로 나서 동점 득점을 올리는 투혼을 보였다.
2021년 열린 도쿄 올림픽에서도 박해민은 7경기 타율 4할4푼(25타수 11안타) 5타점 7득점으로 펄펄 날았다. 큰 무대에서도 떨지 않고 기량을 뽐낸 박해민은 “큰 경기에선 너무 들뜨면 안 된다. 지나치게 의욕이 넘치는 것도 좋지 않으니 조금 더 차분해지려고 노력한다. 팬분들의 어마어마한 응원에 감동하고 뭉클했지만 그런 마음도 많이 억누르기 위해 노력했다”고 말했다. 야수 쪽에서 김현수, 허도환과 함께 몇 안 되는 우승 경험자답게 큰 경기를 하는 법을 잘 알고 있다.
2021년까지 삼성에서 함께 뛴 KT 유격수 김상수와 각자 다른 유니폼을 입고 한국시리즈에서 만난 것도 새롭다. 박해민은 “한 팀에서 우승을 목표로 힘을 합쳤는데 이렇게 상대팀으로 만나니 기분이 묘하더라. 1차전 2회 사구 후 (김)현수형이 땅볼 쳐서 아웃됐을 때 2루에서 (김)상수를 봤다. 서로 손을 잡았는데 말은 하지 않았지만 그런 감정을 느낀 것 같다”고 말했다.
우정은 깊지만 승부는 승부, 일단 이기고 봐야 한다. LG가 이긴다면 박해민은 삼성에서 LG로 넘어와 양 팀에서 모두 한국시리즈 우승을 한 최초의 선수가 된다. 전통의 재계 라이벌로 트레이드도 거의 하지 않아 양 구단을 오간 선수 자체가 많지 않다. 삼성 우승 멤버였던 투수 정현욱과 차우찬이 각각 2013년, 2017년 FA로 이적했지만 LG에선 우승을 하지 못하고 유니폼을 벗어야 했다.
한편 1990년 LG의 한국시리즈 우승 멤버였던 내야수 김동재가 1985년 삼성에서도 우승을 경험한 바 있다. 하지만 당시 삼성의 전후기 통합 우승으로 끝나 한국시리즈가 열리지 않았다. 한국시리즈 우승 기준으로 삼성 출신 LG 이적생의 우승 기록이 아직 없다.
반대로 LG에서 먼저 경험한 뒤 삼성에서도 한국시리즈 우승을 한 선수는 딱 1명 있다. 내야수 박종호가 그 주인공으로 1994년 LG에서 첫 한국시리즈 우승을 경험했다. 이후 시즌 중 트레이드된 현대에서 1998년, 2000년, 2003년 3차례 한국시리즈 우승을 맛본 박종호는 2004년 삼성으로 FA 이적했다. 2005~2006년 삼성에서 2년 연속 한국시리즈 우승을 경험하며 6개의 우승 반지를 손에 넣고 은퇴했다. 3개 팀에서 한국시리즈 우승을 한 선수는 박종호 외에 최훈재(1994년 LG, 1997년 해태, 2001년 두산), 심정수(1995년 OB, 2003~2004년 현대, 2005년 삼성) 등 3명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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