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으로부터 4년 전 고우석 등판과 함께 끝내기홈런을 날리며 준플레이오프 1차전을 승리로 이끈 박병호. 7일 한국시리즈 1차전 또한 공교롭게도 박병호 타석에 고우석이 등판했지만 박병호는 그때의 박병호가 아니었다.
지난 2019년 가을로 시간을 돌려보자. 10월 6일 일요일 오후 2시 서울 고척스카이돔에서 키움과 LG가 준플레이오프 1차전을 가졌고, 0-0으로 팽팽히 맞선 9회말 LG 마무리 고우석이 8이닝 무실점 호투한 선발 타일러 윌슨에 이어 마운드에 올랐다. 타석에는 키움의 4번타자이자 2019시즌 홈런왕 박병호가 등장했고, 고우석의 초구 153km 직구를 통타해 가운데 담장을 넘기며 경기를 끝냈다.
지난 7일 서울 잠실구장에서 열린 LG와 KT의 한국시리즈 1차전에서 비슷한 장면이 연출됐다. 2-2 동점이던 9회초 LG가 함덕주에 이어 마무리 고우석을 올린 가운데 선두타자로 KT의 4번타자 박병호가 등장한 것. 4년 전 준플레이오프 1차전 9회와 너무나도 비슷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박병호는 4년 전의 박병호가 아니었다. 고우석 상대로 2B-1S의 유리한 볼카운트를 선점했지만 4구째 슬라이더를 받아쳐 유격수 땅볼로 맥없이 물러났다. 고우석은 2019년의 쓴맛을 4년이 흘러 설욕했다.
박병호의 이번 가을 침묵이 길어지고 있다. NC와의 플레이오프 5경기 모두 4번타자로 선발 출전했지만 20타수 4안타 1타점 타율 2할로 흐름을 끊었다. 20타석에 들어선 가운데 삼진 7개에 병살타 2개를 기록했고, 적시타는 3일 4차전이 유일했다. 5일 5차전에서 2-2로 맞선 6회 무사 만루에서 병살타를 치며 아쉬움을 삼키기도 했다.
7일 한국시리즈 1차전도 반전은 없었다. 이강철 감독의 믿음 속 다시 4번타자를 맡았지만 1회와 4회 헛스윙 삼진, 7회 투수 땅볼, 9회 유격수 땅볼로 침묵했다. 4회 무사 1, 2루 기회를 놓친 3구 헛스윙 삼진이 가장 아쉬웠다. 박병호의 이번 포스트시즌 성적은 6경기 24타수 4안타 타율 1할6푼7리에 머물러 있다.
박병호는 KBO리그 홈런 부문의 살아있는 역사다. 2005년 LG 1차 지명 후 올해까지 19년 동안 무려 380홈런을 쏘아 올렸고, 에이징커브가 의심되던 2022년 KT와 3년 30억 원 FA 계약 후 35홈런을 치며 통산 6번째(2012, 2013, 2014, 2015, 2019, 2022) 홈런왕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박병호는 당시 래리 서튼 전 롯데 감독의 2005년 최고령(만 35세) 홈런왕 기록을 갈아치웠다. 두산 이승엽 감독(5회)을 넘어 역대 최다인 홈런왕 6회 수상의 새 역사도 썼다.
그러나 박병호의 수많은 홈런은 우승과 인연을 맺지 못했다. 히어로즈 시절이었던 2014년과 2019년 한국시리즈 무대를 밟았지만 삼성과 두산에 막혀 두 번 모두 준우승에 그쳤다. 지난해 KT에서의 우승 도전 또한 준플레이오프를 끝으로 좌절됐다.
올해는 박병호가 데뷔 첫 우승반지를 거머쥘 수 있는 적기다. KT가 정규시즌 2위에 올라 플레이오프를 통과했고, 기세를 이어 한국시리즈 1차전까지 따내며 우승 확률 74.4%를 가져왔다.
박병호는 계속된 부진에도 8일 2차전 또한 4번타자 선발 출전이 예상된다. 또 박병호 외에 4번타자를 맡을 마땅한 타자도 없는 게 현실이다. 이강철 감독은 "박병호가 타석에 있는 것과 없는 것은 천지 차이다"라며 계속 신뢰를 보내고 있다.
결국 큰 경기 공식은 항상 같다. 부진한 4번타자를 계속 믿을 수밖에 없고, 4번타자가 이를 이겨내고 자신의 몫을 다해야 한다.
이는 KT 4번타자 박병호에게도 해당되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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