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백종인 객원기자] 10월 말이다. 플레이오프가 한창이다. 일진일퇴의 치열한 접전 양상이다. 결국 최종전까지 필요했다. NC와 KT, 양쪽 모두 피가 마른다. 온몸의 힘을 쥐어 짜내고 있었다. 피곤한 선수들의 눈에 다래끼가 나고, 여기저기에 부항 자국이다.
베테랑 손아섭도 후들거릴 정도다. 4차전을 앞두고 했던 말이 여러 매체에 보도됐다. “3차전 끝나고 식사하는데 젓가락 든 손가락에 힘이 들어가지 않더라. 그래도 괜찮다. 응급실에 실려 가는 한이 있어도 남은 힘을 다 쓰겠다.”
그 무렵이다. 1위 팀은 여유롭다. 물론 보장된 권리다. 충분한 휴식과 준비 기간을 가졌다. 처음에는 이천에서, 그리고 잠실로 옮겨 합숙 훈련을 거쳤다. 그 와중이다. 이런저런 멘트가 미디어를 통해 흘러나온다.
스피커는 주로 감독이다. 팀에 관련된 것이 대부분이다. 누구 상태가 어떻고, 엔트리가 어떻고 하는 것들이다. 하지만 그 외의 것도 있다. 진행 중인 플레이오프에 대한 것이다. 어찌 보면 당연한 화제다. 상대가 정해지는 시리즈 아닌가.
염경엽 감독의 신통한 예측이 화제였다. 다이노스가 1, 2차전을 이겼을 때다. 포스트 시즌 6연승의 무서운 상승세였다. 그러자 예언하듯 이런 전망을 내놨다. “11월이 되면 상황이 바뀔 것이다.” 빨리 끝나면 안 된다는 바람이 가득한 예상이었다.
과연 그 말이 맞았다. 연승이 멈추고 3, 4차전을 연패했다. 그리고 새로운 예측이 등장한다. 대략 이런 요지의 말이다. “5차전은 KT가 유리하다. 그런데 비가 와서 하루 연기되면 NC에게 도움이 될 것이다. 페디가 등판하면 상황이 달라질 것이다.”
물론 이해가 간다. 상대가 지치는 것을 바라는 마음은 당연하다. 그래야 조금 더 유리한 상황이 된다. 고생해서 얻은 1위 자리다. 제대로 누리고 싶은 게 인지상정이다.
하지만 듣는 당사자(팬들)에게는 별로였던 것 같다. 각종 커뮤니티에 비판이 적지 않았다. 완곡하게 표현하면 이런 반응들이다. ‘이쪽 승부는 신경 쓰지 마시고, KS 준비나 잘 하시라.’ 출처가 분명치 않은 펌글도 떠돌았다. ‘5차전에서는 투수 ***가 털릴 것’이라는 발언이다. 그 사실을 믿는 팬들은 날카로워졌다.
한국시리즈 1차전이 끝났다. 예상 밖으로 1위 팀이 패했다. 경기후 인터뷰 때다. 패장의 안타까운 마음이 절절하다. “많은 팬들이 찾아오셨는데 이기는 경기를 못 보여드려서 죄송하다. 내일은 웃으며 돌아가실 수 있도록 잘하겠다.”
다만 마지막 문답이 조금 걸린다. 마무리 고우석에 대한 답변이다.
“몸 상태는 괜찮다. 실투 하나를 문상철이 잘 쳤다. 아쉬운 건 직구 구위가 나쁘지 않은데, 실투가 나왔다. 그래도 괜찮을 것 같다. 부상 걱정을 많이 했는데, 계속 우리 마무리로 다음 경기 잘해줄 것으로 생각한다.”
번역기를 돌리면 얼핏 이런 말로 들린다. ‘직구가 좋았는데, 변화구를 던지다가 실투를 범했다’는 해석이다. 결승 2루타를 허용한 것은 133㎞짜리 커브였다. 카운트 2-2에서 던진 결정구였지만, 안쪽으로 몰려 장타로 연결된 것이다.
즉, 패장의 분석은 틀린 말이 아니다. 다만 이 말에서 괜한 기억이 떠오를 뿐이다. 9월 초에 벌어졌던 ‘슬라이더 논쟁’이다. 당시 염 감독은 “변화구보다는 포심 위주로 던지라”고 조언했다. 반면 고우석 본인은 “나도 고집이 있는 편이다. 아예 계속 슬라이더만 던질까도 생각했다”는 발언으로 시끌시끌했다.
사실 누구나 겪는 시행착오다. 볼배합에는 정답이 있을 리 없다. 경기 뒤의 얘기는 결과에 치중한 것일 뿐이다. 정작 이로 인한 문제는 따로 있다. 고우석과 변화구 사이의 인과 관계가 계속 고정 관념으로 자리 잡게 된다는 것이다.
어쩌면 모범 답안은 이런 것일지 모른다. ‘고우석의 빠른 볼이 자꾸 커트 되는 상황이었다. 좋은 공을 던졌는데, 문상철이 잘 받아쳤다. 잘 준비한 상대 타자를 칭찬하고 싶다.’
상대적으로 이강철 감독이 눈길을 끈다. 많은 팬들은 문상철의 번트 실패에 대한 멘트를 떠올릴지 모른다. “(실제는 타자의 선택이지만) 우리가 졌다면 내가 시켰다고 하려고 했다”는 얘기 말이다.
하지만 진짜는 따로 있다. 9회에 김재윤 대신 박영현을 올린 이유에 대한 답변이다. “오늘은 연장까지 생각해야 했다. 12회까지 생각해 김재윤을 남겼다. 박영현도 팔을 풀었기 때문에 그냥 간 것이다.”
물론 이 말은 진심이 아닐 것이다. 그렇게 추측한다. 당연히 정규시즌 마무리가 등판해야 할 대목이었다. 특별한 이상이 없는 한 배역 교체는 상상하기 어렵다. 더구나 이제 1차전 아닌가. 오랜 투수코치 출신인 그가 이 점을 모를 리 없다.
아마도 큰 고심 끝에 내려진 결정일 것이다. 구위가 더 뛰어난 투수에게 9회를 맡긴다는 상식에 집중한 마음이리라. 이 파격은 정확했다. 승리의 중요한 요인 중 하나다. 놀라울 정도로 냉철하고, 단호한 결단이었다. ‘회심의 승부수’로 자부심을 가질 만하다.
그럼에도 굳이 말을 돌린다. 직접적인 언급을 피한다. “연장까지 갈 것을 예상해서” 혹은 “팔을 풀었으니 그냥 간 것”이라고 둘러댄다. 선수단 전체를 아우르는 마음이다.
감독은 절대 승리투수가 될 수 없다. 세이브도 올릴 수 없다. 아니, 스트라이크 하나조차 던질 수 없다. 그의 입 역시 마찬가지다. 실제 전력이 되지 못한다. 그게 앞 열에 나와서는 곤란하다. 치열하고, 숨이 가쁠수록. 조심스럽고, 묵직해야 한다. 늘 선수들의 그늘을 살피고, 그 뒤에 머물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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