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 선수 최초로 메이저리그 골드글러브를 수상한 김하성(28·샌디에이고 파드리스)에겐 2루수보다 유틸리티 부문이 더 의미 있었다.
메이저리그 사무국은 6일(이하 한국시간) 2023년 롤링스 골드글러브 수상자를 공식 발표했다. 각 포지션별로 최고 수비력을 보인 선수 10명씩, 양대리그 통틀어 20명의 선수들이 선정됐는데 김하성의 이름이 들어갔다. 내셔널리그(NL) 유틸리티 부문 수상자로 한국인 선수 최초, 아시아 내야수 최초 골드글러브 수상 역사를 썼다.
메이저리그 골드글러브는 미국야구협회(SABR)가 개발한 수비 통계 지표 SDI(SABR Defensive Index)가 25% 반영된다. 나머지 75%는 현장 감독, 코치들의 투표로 이뤄진다. 메이저리그 30개 구단 감독과 팀당 최대 6명의 코치들이 소속팀 선수들을 제외하고 투표로 이뤄진다.
김하성은 NL 2루수, 유틸리티 2개 부문 최종 후보에 이름을 올렸다. 그러나 2루수 부문에선 니코 호너(시카고 컵스)가 수상자로 선정됐다. SDI 수치는 김하성이 9.0으로 호너(8.7)를 제치고 NL 2루수 중 1위였다. 하지만 감독, 코치들의 주관적인 평가에서 밀려 2루수 부문 수상은 놓쳤다.
하지만 김하성은 유틸리티 부문 수상으로 아쉬움을 달랬다. 메이저리그는 갈수록 멀티 포지션 선수들이 늘어나고 있는데 지난해부터 특정 포지션에 구애받지 않는 선수들을 위해 유틸리티 부문 골든글러브로도 마련됐다. 김하성은 올해 주 포지션 2루수뿐만 아니라 3루수, 유격수를 넘나들며 수비했다.
유틸리티 부문에서 함께 후보에 오른 무키 베츠(LA 다저스), 토미 에드먼(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을 제쳤다. 베츠는 무려 6번의 골드글러브 경력을 자랑하는 슈퍼스타이고, 에드먼도 2021년 NL 2루수 부문 수상자로 수비에 일가견 있는 선수다. 베츠는 2루수와 우익수, 에드먼은 유격수와 중견수로 내외야를 넘나들었다.
내야에 국한된 김하성이 불리할 것으로 보였다. 베츠가 있어 수상이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됐으나 김하성이 이겼다. SDI 수치에서 김하성이 NL 전체 9위로 25위에 들지 못한 베츠와 에드먼을 앞섰다. 하지만 SDI 수치는 25% 반영으로 나머지 75% 감독, 코치들의 평가에서 인지도가 압도적인 베츠와 에드먼을 제쳤다는 점이 고무적이다.
2관왕을 했다면 최고였겠지만 김하성은 둘 중 유티리티 부문을 조금 더 기대했다. 미국 ‘디애슬레틱’은 이날 김하성의 골드글러브 수상 소식을 전하면서 9월말 김하성과 나눈 대화를 소개했다. 당시 김하성은 “유틸리티로 골드글러브를 수상하는 것이 더욱 값질 것 같다. 골드글러브 수준으로 여러 포지션을 소화할 수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김하성은 올 시즌 2루수로 가장 많은 106경기(98선발) 856⅔이닝을 수비했지만 3루수와 유격수도 커버했다. 3루수로 32경기(29선발) 253⅓이닝, 유격수로 20경기(16선발) 153⅓이닝을 맡았다. 3개 포지션에서 총 1263⅓이닝을 수비하면서 실책이 7개에 불과했다. 2루수로 4개, 유격수로 2개, 3루수로 1개의 실책을 기록했다.
메이저리그 공식 홈페이지 ‘MLB.com’도 ‘김하성은 어느 자리에서든 항상 엘리트 수비수였다. 잰더 보가츠의 왼쪽 손목에 문제가 생기자 유격수로 들어갔고, 매니 마차도가 오른쪽 팔꿈치가 안 좋아 지명타자로 옮겼을 때는 3루수로 갔다’며 ‘샌디에이고는 투수 성향에 따라 김하성의 포지션을 바꾸기 시작했다. 좌측으로 땅볼 유도를 많이 하는 투수가 나오면 김하성을 3루수로 기용했다. 우측으로 땅볼 유도를 많이 하는 투수가 나오면 김하성을 2루에 배치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김하성은 3개 포지션에서 모두 의미 있는 활약을 했다. 그는 2루수로서 10점을, 유격수와 3루수에서 각각 3점씩 막아냈다. 2023년 시즌 전까지 2루수로 거의 뛴 적이 없다는 점에서 그가 얼마나 매끄럽게 포지션 전환을 해냈는지가 올 시즌 가장 인상적인 부분이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