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선수들도 하지 못한 것을 김하성(28·샌디에이고 파드리스)이 해냈다. 한국인 최초이자 아시아 내야수로는 최초로 메이저리그 골드글러브를 수상하는 쾌거를 이뤘다.
메이저리그 사무국은 6일(이하 한국시간) ‘ESPN’ 방송을 통해 2023 롤링스 골드글러브 수상자를 공식 발표했다. 포지션별 최고 수비력을 보인 선수에게 주어지는 메이저리그 골드글러브는 유틸리티 부문 포함 양대리그에서 10명씩, 총 20명의 선수들이 수상자로 선정됐다.
김하성은 내셔널리그(NL) 2루수, 유틸리티 2개 부문 최종 후보로 이름을 올렸다. 먼저 발표된 2루수 부문에서는 니코 호너(시카고 컵스)가 수상자로 선정됐지만 마지막 유틸리티 부문에서 무키 베츠(LA 다저스), 토미 에드먼(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을 제치고 김하성이 수상의 영예를 누렸다. 김하성은 2018~2020년 3년간 KBO리그 유격수 부문 골든글러브를 수상했는데 메이저리그 골드글러브까지 손에 넣었다.
메이저리그 골드글러브는 미국야구협회(SABR)가 개발한 수비 통계 지표 SDI(SABR Defensive Index)가 25% 반영되며 75%는 현장 감독과 코치들의 투표로 이뤄진다. 메이저리그 30개 구단 감독과 팀당 최대 6명의 코치들이 소속팀 선수들을 제외하고 투표로 이뤄진다. 현장 평가 비중이 절대적으로 높은데 김하성의 수비력이 인정을 받았다.
지난 1957년 제정된 골드글러브상을 한국인 선수가 받은 건 김하성이 최초. 아시아 선수로는 일본의 레전드 스즈키 이치로에 이어 두 번째 수상자가 됐다. 이치로는 지난 2001~2010년 시애틀 매리너스 시절 외야수로 10년 연속 아메리칸리그(AL) 골드글러브를 수상했다. 더 나아가 아시아 내야수로는 김하성이 최초 수상이다.
미국 ‘디애슬레틱’ 데니스 린 기자는 ‘김하성은 아시아 출신 내야수로는 최초로 골드글러브를 수상한 선수’라고 설명하며 지난 9월말 김하성과 골드글러브에 대해 나눈 이야기를 전했다. 당시 김하성은 “개인적으로도 대단한 성과이겠지만 아시아에 있는 아이들에게 메이저리그에서 내야수로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행복할 것 같다. 아시아 내야수는 빅리그에서 성공할 확률이 낮다는 등 의구심이 많다. 꿈을 잃지 않도록 도와주는 사람이 되는 것, 그것이 내게 가장 중요한 일이다”고 말했다. 그 꿈이 이날 골드글러브 수상으로 이뤄졌다.
2루수 부문 놓쳤지만 유틸리티 있었다, 베츠-에드먼 제쳤다
지난해 NL 유격수 부문 골드글러브 최종 후보에 올랐으나 수상에 실패한 김하성은 FA 유격수 잰더 보가츠가 합류하면서 2루수로 자리를 옮겼다. 올 시즌 2루수로 가장 많은 106경기(98선발) 856⅔이닝을 수비했지만 3루수, 유격수도 넘나들었다. 3루수로 32경기(29선발) 253⅓이닝, 유격수로 20경기(16선발) 153⅓이닝을 맡았다. 3개 포지션에서 총 1263⅓이닝을 수비하면서 실책이 7개에 불과했다. 2루수로 4개, 유격수로 2개, 3루수로 1개의 실책을 기록했다.
2루수 최종 후보 중 김하성은 평균 대비 아웃카운트 처리 지표 OAA(Outs Above Average)가 브라이슨 스탓(필라델피아 필리스·16), 호너(컵스·15)에 이어 3위(10)였다. 수비로 실점을 막아낸 지표인 DRS(Defensive Runs Saved)는 호너(12), 김하성(10), 스탓(6) 순으로 2위. 하지만 수상에 직접 반영되는 SDI 수치는 NL 2루수 1위(9.0)로 호너(8.7), 스탓(8.6)을 제쳤다. 현장 평가에서 호너에게 밀려 2루수 부문 수상이 불발된 것이다.
하지만 김하성에겐 유틸리티 부문이 남아있었다. 메이저리그는 멀티 포지션을 소화하는 선수들이 각광받고 있고, 지난해부터 한 포지션에 구애받지 않는 선수들을 위해 유틸리티 부문을 신설했다. 유틸리티 부문은 SABR와 협력해 기존 후보 선정과 다른 특수한 공식을 적용했다. 김하성은 베츠, 에드먼 등 지명도가 높은 선수들을 제치고 이 부문 수상자로 선정됐다는 점에서 고무적이다.
‘MLB.com’은 ‘올 시즌 김하성은 2루, 3루, 유격수까지 소화하며 다재다능함의 표본을 다시 한 번 보여줬다. 2루에서 10점, 3루와 유격수로 3점씩, 총 16점을 막아냈다’며 ‘2루수로 DRS 10을 기록했는데 해당 포지션에서 NL 공동 선두인 호너와 브라이스 투랑(밀워키 브루어스·이상 12) 다음으로 많은 기록이었다’고 설명했다.
샌디에이고 공식 홈페이지도 ‘김하성의 수비에 대한 물음표는 현저하게 줄었다. 그는 어느 자리에서 뛰든 항상 엘리트 수비수였다. 잰더 보가츠 합류로 올해 2루수로 옮겼지만 보가츠가 손목 통증을 겪자 유격수로 들어갔다. 매니 마차도가 팔꿈치가 안 좋아 지명타자로 들어갔을 때 김하성이 3루를 맡았다’며 ‘3개 포지션에서 모두 의미 있는 활약을 했다. 2023년 이전에는 2루수로 거의 뛴 적이 없었다는 점에서 그가 얼마나 매끄럽게 포지션 전환을 해냈는지가 가장 인상적인 부분이다’고 치켜세웠다.
내로라하는 일본 내야수들도 못한 것을 김하성이 해냈다
김하성의 수상은 한국인 최초라는 점에서도 대단하지만 아시아 내야수로는 최초라는 점에서 그 의미가 상당히 크다. 한국보다 수비력이 한두 수 위로 평가받는 일본인 내야수들도 메이저리그에선 김하성처럼 성공하지 못했다.
일본은 투수 노모 히데오, 마쓰자카 다이스케, 구로다 히로키, 다르빗슈 유, 우에하라 고지, 다나카 마사히로, 센다 고다이 등 특급 투수들이 일본에서 꾸준하게 활약했다. 거포 외야수 마쓰이 히데키, 투타겸업 오타니 쇼헤이까지 투타에서 여러 선수들이 메이저리그에서 족적을 남겼지만 내야수들은 신통치 않았다.
마쓰이 가즈오, 이구치 다다히토, 나카무라 노리히로, 니시오카 쓰요시, 이와무라 아키노리, 가와사키 무네노리 등 일본에서 내로라하는 내야수들이 메이저리그에 도전했다. 이구치, 이와무라 등 타격에선 나름대로 성적을 낸 내야수들도 있지만 하나같이 수비에선 높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일본 대표 유격수 마쓰이, 니시오카는 수비에서 혹평을 받기도 했다.
아시아 내야수들은 메이저리그에서 성공하기 어렵다는 게 편견이 아니라 사실로 굳어진 상황에서 김하성이라는 수비 괴물이 등장했다. 그동안 골드글러브 최종 후보에 오른 일본인 선수들도 없었는데 김하성은 2년 연속 최종 후보에 오르더니 수상까지 해냈다. 아시아 내야수들에 대한 인식을 완전히 바꿔놓은 일대 사건이다. 한국 야구의 경사이자 아시아 내야수들에게도 희망을 준 쾌거다.
김하성 포함 13명 첫 수상 영예…타티스 주니어는 NL 우익수 수상
한편 김하성을 비롯해 NL에선 1루수 크리스티안 워커(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 2루수 호너, 3루수 키브라이언 헤이즈(피츠버그 파이어리츠), 유격수 댄스비 스완슨(컵스), 포수 가브리엘 모레노(애리조나), 투수 잭 휠러(필라델피아 필리스), 좌익수 이안 햅(컵스), 중견수 브렌튼 도일(콜로라도 로키스), 우익수 페르난도 타티스 주니어(샌디에이고)이 수상자로 선정됐다.
아메리칸리그(AL)에선 1루수 나다니엘 로우(텍사스 레인저스), 안드레스 히메네스(클리블랜드 가디언스), 3루수 맷 채프먼(토론토 블루제이스), 유격수 앤서니 볼피(뉴욕 양키스), 포수 조나 하임(텍사스), 투수 호세 베리오스(토론토), 좌익수 스티븐 콴(클리블랜드), 중견수 케빈 키어마이어(토론토), 우익수 아돌리스 가르시아(텍사스), 유틸리티 마우리시오 듀본(휴스턴)이 수상자로 뽑혔다.
채프먼과 키어마이어가 개인 4번째 골드글러브를 수상한 가운데 김하성을 비롯해 로우, 볼피, 하임, 베리오스, 가르시아, 듀본, 호너, 헤이즈, 모레노, 휠러, 도일, 타티스 주니어 등 13명의 선수들이 첫 수상의 영광을 누렸다. 지난해 14명에 이어 역대 두 번째 많은 첫 수상자 기록으로 4년 연속 10명 이상의 새얼굴이 골드글러브를 받았다.